3. 물은 99℃에 끓지 않는다.

모든 일에는 적당한 타이밍이 있는 법

by SHUN

할 일이 너무 많다. 학교도 다녀야 하고, 성적도 잘 받아야 하고, 친구들도 만나야 하고, 기념일도 챙겨야 하고, 밥도 먹어야 하고, 설거지도 해야 하고, 똥도 싸야 한다. 그야말로 ‘To do list'의 홍수다. 그 중엔 꼭 해야 하는 것도 있고, 하면 좋은 것도 있고,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것도 있다. 그중 선택을 해야만 한다. 번호를 매겨가며, To do list에 빨간 줄을 하나씩 그어가며.

문제는 선택지는 넘치는데 선택을 못한다. 친구들과 노는 것을 선택하면 과제를 포기해야 할 것 같고, 먹고 싶은 걸 선택하면 올여름 수영복은 포기해야만 할 것 같다. 괜히 선택장애라는 단어까지 생긴 게 아니다.

무슨 메뉴를 먹을까 고민하는 정도의 선택장애라면 다행이지만, 내가 하고 싶은 일, 꿈을 결정하는 데도 선택장애는 어김없이 찾아온다. 아니, 선택지가 아예 없는 경우도 있다. 도무지 무슨 일을 해야 할지 모르겠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나는 참 운이 좋은 놈이었다. 적어도 내가 하고 싶은 일을 결정하는 데 선택 장애가 온 경우는 (아마도 거의)없었기 때문이다. 항상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싶은 때에만 했다. 방법은 간단하다.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싶을 때, 하면 된다.

‘말 참 쉽게 하네’라고 생각 할 수도 있다. 맞다. 말 참 쉽다. 그런데 원래 인생이란 게 쉽게 풀어봤자 어려운 것 아닌가. 단순하게 생각하나 심각하게 생각하나 꼭 정도(正道)로 흐르는 건 아니라는 말이다. 미간을 찌푸려가며 심각하게 내린 선택이어도 예상한 결과만을 낳아주진 않는다.

그러니까 ‘무슨 일을 하고 싶다’라는 생각이 드는 것은 그것만으로도 참 감사한 일이다. 안 그래도 선택장애 때문에 머리 아파 죽겠는데 이미 답을 내려준 것이 아닌가. 나는 그냥 그 일을 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어때요, 참 쉽죠?


‘어떻게 하고 싶은 일만 하고 사느냐’고 물을 수 있다. 당연한 얘기다. 지금까지 너무나 당연하게 그렇게 배워 왔으니까. 누구나 원하는 대로 살 수는 없어, 하기 싫은 일도 해야 성공하는 거야, 꾹 참고 견디면 이겨낼 수 있어.

인내의 고통은 물론 값지다. 문젠 그것이 내가 선택한 고통이었느냐 하는 것이다. 내가 원하지 않았던 선택에 수반되는 인내의 고통은 견딜 수 없을 만큼 괴롭다. 그러나 정말 내가 원한 선택에 수반되는 인내의 고통은 그럭저럭 견딜만하다.

많은 사람들이 남의 선택 속에 갇혀 인내의 고통을 견뎌내고 있다. 그들은 행복할 리 없다. 본인 인생이 아니니까.


물은 100℃에 끓는다. 1도만 낮아져도 끓지 않는다. 100℃가 되기 위해 물은 쉴 새 없이 움직이며 열을 낸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생겼다는 것은 끓고 있는 99℃의 물에게 찾아온 1℃와 같다. 100℃가 되었으니 끓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끓어야만 그 물에 라면을 끓이든 국을 끓이든 할 것이 아닌가. 하고 싶은 일이 생겼다면 그건 해도 되는 일이 아닌, 해야만 하는 일이다. 당연히 끓어야만 하는 100℃의 물처럼 말이다.

왜, 변을 볼 때도 변이 나올 것 같은 타이밍이라는 게 있지 않은가. 폭죽이 터지듯 무아지경 상태에 빠지는 그 순간. 그때 변이 나오지 않으면 똥독이 올라서 죽을 수도 있다. 죽지 않으려면 똥을 눠야만 하는 것처럼, 하고 싶은 일이 생겼다면 그 일을 해야만 한다. 뱃속에서만 폭죽 터뜨리지 말고 인생의 앞길에 폭죽을 터뜨리라는 신호이니, 한시라도 빨리 무아지경의 상태로 그것들을 뱉어내야만 한다.


어차피 불안한 인생이다. 이런 선택을 하든 저런 선택을 하든, 인생이란 한치 앞도 내다 볼 수 없는 것이기에 어차피 불안하다. 그러니까 100℃에 찾아온 1℃를 믿어보려 한다. 적어도 끓기는 하지 않겠는가. 엄청 맛있는 찌개가 될지 죽을 쑤게 될지는 모르지만, 일단 끓어나 보자. 무엇을 만들지는, 끓고 나서 생각해도 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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