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란 약속이란 퍼즐 조각을 맞추며 살아가는 것
빨래를 할 때마다 항상 같은 딜레마에 빠지곤 한다.
'세제를 도대체 얼마나 넣어야 되는 거야?'
21세기를 살아가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손빨래가 아닌 세탁기로 빨래를 하니, 도대체 이 무식하게 커다란 기계가 빨래통 안에서 얼마나 성실하게 빨래를 하는지 알 방법이 없다. 그래서 어느 정도의 세제, 섬유유연제 양을 넣어야 하는지 감이 잡히질 않는다. 물론 세탁기 회사와 세제회사에선 매우 친절하게 매뉴얼을 제공해주고 있지만 여간 의심스러운 게 아니다. 모두가 알다시피, 빨래는 산더미 같이 쌓여있는데 매뉴얼엔 코딱지만큼 세제를 넣으라 하고 있으니 말이다. 과연, 이 정도만 가지고도 잘 해낼 수 있을까 싶다. 그래서 늘 적정량보다 조금 초과된 세제를 부어버리곤 한다. 조금이라도 더 깨끗하게 빨아질까 싶어서.
그런데 여행 중엔 이런 고민은 배부른 생각이 될 뿐이다. 세탁기는커녕 세제도 없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빨래방에 맡기는 것은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 실제로 태국 치앙마이와 라오스 방비엥에서 세탁을 맡겼었는데, 양말 한 짝, 팬티 하나씩이 꼭 사라지곤 했다. 지금쯤 치앙마이에선 잃어버린 내 양말 한 짝을 신은 빨래방 할머니가, 라오스에선 내 팬티를 입은 빨래방 소년이 거리를 활보하고 다닐 것이다.
그래서 내가 선택한 방법은 손빨래, (방법이라고 하기엔 다른 선택지가 전혀 없잖아.) 그리고 세제 대신에 샴푸를 이용하는 것이었다.(세탁기가 있을 땐 세탁기에 샴푸를 넣고 돌렸다.)
세탁기도 못 믿는 주제에 어찌 샴푸로 빨래를 할 생각을 했을까 싶겠지만, 같이 여행을 간 친구의 "샴푸로 빨래해도 괜찮대." 란 말만 듣고 그 이후론 쭉 샴푸로만 빨래를 하게 됐다. (우린 때로 이렇게 "누가 괜찮다고 했어"라는 말 한마디로 결정을 하는 경우가 굉장히 많다. 허무하게도 때로 결정이란 너무나 간단하다. 문제는 그 누구가 누군지는 잘 모른다는 거다.) 사실 냄새도 못 맡기 때문에 샴푸로 빤 옷이 세제보다 못 한지도 잘 모르기에, 오직 친구 말에 대한 믿음만으로 빨래를 한 것이다.
결론적으로 샴푸는 꽤 훌륭한 세제였다. 냄새는 못 맡으니까 그건 제쳐두고, 일단 휴대가 용이하다는 점이 참 좋았다. 빨래를 위해 세제를 들고 다니는 수고 없이 머리 감으려고 미리 챙겨둔 샴푸만 주욱 짜면 됐으니까. 또 빨래와 샤워를 한 큐에 해결할 수 있으니 시간 절약에도 제격이었다.(남는 게 시간이라 굳이 시간을 절약할 필요는 없었다만.) 샤워기 물을 콸콸 틀어놓은 채 그 밑으로 빨래를 던져놓은 후 신나게 빨래를 밟아대며 머리를 감으면 스트레스가 풀리기도 했다. 다른 그 무엇보다도 샴푸로 손빨래를 하게 되면, 빨래하는 과정을 내가 직접 볼 수 있기 때문에 안심이 됐다. 요리 솜씨가 없는 걸 알지만 그래도 내 손으로 해 먹이고 싶은 엄마의 마음이랄까. 이름 모를 식당의 요리사가 주방에서 어떻게 요리하는지 알 수 없듯이, 솔직히 말해 세탁기가 세탁통 안에서 무슨 일을 하고 있을진 아무도 모르는 일이지 않은가. 주인이 안 보는 틈을 타 딴짓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정말로.) 아무튼 뭐, 샴푸로 빨래를 한다는 건 여러모로 괜찮았다. 머리도 감고, 빨래도 하고, 스트레스도 풀리고.(가끔은 더 쌓이기도..)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뒤엔 다시 같은 딜레마에 빠지고야 말았다.
'도대체, 세제를, 얼마나 넣어야 하는 거야!'
그런 걱정 없이 샴푸로 빨래를 하던 여행 시절이 그리워졌다.(그럼 그냥 샴푸로 빨래하면 되잖아.) 그럼 다시 샴푸를 사용하라고 말하는 사람이 분명 있겠지. 그렇다고 다시 샴푸로 빨래를 하기엔, 세제라는, 제 역할을 해야 하는 친구가 있지 않은가.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이라는 노래가 있듯이 그 친구에게도 좀 관심을 가져줘야 한다.(비싼 샴푸 사용한답니다.) 세제가 있으니 굳이 샴푸를 사용할 이유가 없었던 것. 결코 샴푸가 비싸서 그런 건 아니다.
그러던 중, 최근 들어 다시 샴푸로 빨래를 하기 시작했다. 운동을 마치고 나면 온 몸과 옷이 땀으로 흠뻑 젖는데, 이 젖은 옷을 빨래망에 집어넣었다간 곰팡이 실험실을 열게 될 것만 같았다.(빨래망에 빨래가 어느 정도 모이면 그때 빨래를 하기 때문에 며칠간 썩혀야 된다. 냄새는 못 맡아도 이런 점엔 꽤 민감하답니다.) 그래서 어차피 바로 샤워하는 김에 빨래도 같이 하기로 한 것이다. 여행 다닐 때 그랬던 것처럼.
빨래를 하며 샤워를 하면 당연하지만 시간이 더 오래 걸린다.(샤워실에 오랫동안 있으면 가족들에게 오해받기에도 좋다. 참고로 젖은 빨래를 밟을 땐 '퍽퍽' 같은 소리가 난다.) 그 대신 일상에 치여 하지 못했던 여러 가지 생각들을 할 수 있게 된다. 따뜻한 물을 온몸으로 맞으며 빨래를 하고 있자니, 이 샴푸로 빨래를 한다는 행위의 출처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고, 위에 적은 여행의 기억까지 거슬러 오르게 되었다.
샴푸로 빨래를 하게 된 이유는 친구의 "괜찮대" 한마디에서 시작됐었다. 결국 샴푸의 세탁 효과의 유무와는 상관없이 친구의 말에 대한 믿음으로부터 시작한 것이었다. 오호, 그렇게 생각하니 샴푸로 빨래를 한다는 것은 결국 믿음의 문제였다.
샴푸뿐만이 아니다. 내가 사용하는 바디워시나 폼 클렌저, 치약이나 스킨, 로션 따위도 결국 피부에 발라도 괜찮다는, 입 안에 넣어도 괜찮다는 광고나 패키지의 문구에 대한 믿음이었다. 바디워시를 머리 감는데 써서 문제 될게 뭐 있겠는가. 그러나 바디워시로 머리를 감으면 굉장히 찝찝하다.(해봤다.) 바디워시는 몸, 샴푸는 머리. 아주 자연스레 그러한 약속이 되어있기 때문이다.
인생은 그런 약속의 연속이란 생각이 든다. 셰익스피어가 인생은 연극과 같다고 얘기한 데 엄청난 공감을 했던 이유는, 연극은 진짜 약속으로만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셰익스피어는 자주 인생을 연극에 비유하곤 했다. 실제로 <뜻대로 하세요>엔 이런 대사도 나온다. “온 세상은 무대이고 모든 여자와 남자는 배우일 뿐이다. 그들은 등장했다가 퇴장한다. 어떤 이는 일생 동안 7막에 걸쳐 여러 역을 연기한다”) 대사를 칠 타이밍이나, 무대 막이 내려와야 하는 타이밍, 조명이 바뀌어야 할 타이밍, 모든 게 약속이다. 하나만 깨져도 공연을 망칠 수 있다. 샴푸로 빨래를 하는 것쯤이야, 하고 약속을 깨뜨려도 별 일이 일어나지 않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일이다. 약속은 지키지 않아도 큰 문제가 되지 않는 경우도 많지만─내가 샴푸로 빨래를 했듯이─어쩔 땐 심각한 결과를 야기하기도 한다. 치약으로 세수를 하거나 무좀약으로 양치 같은 것을 해버린 다면 꽤 괴로울 것이다.(목숨의 위협을 느낄 수도.)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로, 샴푸와 치약 따위가 그러하듯이 모든 게 약속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당연한 얘기지만 약속은 믿음이 있어야 성립된다. 결국 인생이란 믿음으로 이루어지는 약속이란 퍼즐 조각을 맞추며 살아가는 것이다.
물론 나는 샴푸로 빨래를 했으니까, 약속을 깨뜨린 것이나 마찬가지지만.. 냄새나는 옷 입고 여행하는 것보다는 이 정도 약속은 깨뜨려도 괜찮지 않으려나. 하고 생각해본다. 문제는 세탁기가 있을 땐 아직도 얼마나 세제를 넣어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