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해도 괜찮잖아요?
혼자 하는 걸 좋아한다.
혼자 밥 먹기, 혼자 영화보기, 혼자 공연 보기, 혼자 여행 가기, 혼자 노래방 가기, 혼자 걷기, 혼자 운동하기, 혼자 음악 듣기, 혼자 게임하기.
그렇다고 누군가와 뭔가 함께 하길 꺼려하는 건 아니다. 그건 그거대로 좋고, 이건 이것대로 좋다. 그냥, 혼자 있는 게 편하다.
25살이 될 때까지 나는 내 방을 가져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16살까지는 누나와 같은 한 방을 썼고, 고등학교에 입학하면서는 기숙사 생활을 하며 4인실, 2인실을 번갈아가며 썼다. 말이 4인실, 2인실이지 기숙사라는 게 늘 그렇듯 매일같이 열 명 가까이 모여 시끌벅적 떠들었기에 4+a인실이나 마찬가지였다. 대학에 입학해서도 잠깐 기숙사 생활(4인실)을 하다 자취를 시작했는데 월세를 다 감당하기 부담스러워 친구와 같이 살았다. 거기까지가 23살의 생활환경. 24살엔 같이 살 친구가 없어 (외로운 복학생이여) 필연적으로 혼자 살게 되었다. 아니 그런데 그게, 와, 신세계였다.
24년간 내 방은커녕 온전한 내 공간마저 가져본 적이 없는 나였는데, (비록 원룸이지만) 나만의 집이 생긴 것이다. 솔직히 말해 누군가와 같이 살지 않으면 밑도 끝도 없이 게을러 질거라 생각했는데, 아니 이게 웬걸. 내가 이렇게 부지런한 놈인지 처음 알았다. 내 꺼, 내 공간이 생기니까 가급적 더럽히고 싶지 않아 청소를 하고, 친구 놈이 깨워줄 거라 믿고 긴장을 완전히 놓고 잠들지도 않아 수업에 지각하는 일도 없었다. 수업이 다 끝나고 돌아와 혼자 있는 시간은 또 어떻고. 냉동실에 넣어둔 맥주잔을 꺼내 맥주 한잔 하며 리포트를 쓰면 내 글이 마치 헤밍웨이 글 같았다지.(물론 알코올의 효과입니다.) 결과적으로—혼자 사는 것의 영향이었는진 몰라도—우려와는 다르게 그 학기에 한 과목을 제외한 모든 과목에서 성적 A+라는 쾌거를 이뤄냈다.(한 과목은 내가 제일 취약한 춤 수업이었다. 성적은 A.) 심지어 21학점을 채워 들었는데도 말이다. 다음 해에도 혼자 살아서 전과목에서 A+를 받았다. 난 이 모든 영광을 원룸에게로 돌렸다. 진심으로, 혼자 살지 않았으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리고 25살이 되던 해, 누나가 결혼을 함과 동시에 집에 빈 방이 생겼다. 나는 고등학교 때부터 거의 나와서 살다시피 하는 바람에 집엔 누나 방 밖에 없었다. 그래서 방학 때나 휴학했을 때 집에 가면 난 홈리스처럼 아빠 엄마방, 거실, 누나 방을 돌아다니며 새우잠을 잤다. 잠은 그렇다 쳐도, 노트북을 펴고 작업할 내 장소가 없는 게 너무 큰 스트레스였다.(방학이나 휴학 때 삽화나 기업 로고 디자인 외주를 했었다.) 좁은 식탁에 앉아 노트북을 펴고 있으면 식사하려는 아빠에게 자리를 비켜줘야 하고, 티브이 앞 소파에 쭈그려 앉아 작업하면 어깨랑 허리가 부서질 것 같았다. 그러던 어느 날, 여느 때처럼 식탁 위에 작업하던 노트북을 두고 잠깐 나갔다 왔는데, 노트북 액정이 부서지고 모서리가 깨져 있었다. 원인은 엄마가 청소기를 돌리다 노트북과 연결된 충전기에 청소기가 걸린 것이었다. 노트북은 바닥으로 곤두박질쳤겠지.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이건 엄마에 대한 원망도 아니요, 단순히 내 공간의 결여에 대한 분노였다. 내 공간만 있었다면! 그냥 책상 위에 노트북을 올려놔도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았을 텐데! 구멍이 숭숭 뚫린 모니터 액정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내 방이 필요해. 그래서 누나의 결혼을 기다렸다. 누나가 쓰던 저 방은 곧 내방이 되리라 생각하며.
누나는 결혼식이 끝나자마자 하와이로 신혼여행을 갔다. 그리고 난 집에 오자마자 누나 방에 있는 짐을 다 빼버렸다. 한 마디 상의도 없었지만, 어차피 누나도 이삿짐 싸줘서 고맙다고 생각할 거야 라고 중얼거리며 예쁘게 짐을 싸서 다 빼버렸다.(그리고 친절하게 누나가 이사할 집으로 다 옮겨놓았다.) 그리고 오랫동안 쌓여있던 한을 풀기 시작했다. 장판을 벗겨내고 벽에 페인트를 칠하고, 이케아에서 가구를 새로 사서 조립해서 집어넣고. 혼자 하다 안 되겠어서 아빠의 힘까지 빌렸다. 그리하여 내 방 탄생.
내 방이 생기고 나니 인생이 달라졌다.라고 까지 말하고 싶진 않지만, 진짜 인생이 풍요로워지긴 했다. 특히 가장 행복한 순간은 샤워를 마치고, 수면등 하나만 틀어놓고 술을 마시며 영화 한 편 보거나 책을 읽는 시간이었다. 온전한 나만의 공간이 생기니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었다.
여기까지가 내가 혼자 하는 걸 좋아하는 이유의 가장 단편적인 예시였습니다.
혼자 해야 능률이 오르는 사람, 같이해야 능률이 오르는 사람. 세상에 두 타입의 인간이 존재한다면 당연히 난 전자에 해당한다. 혼자 하면 마음이 편안해져 능률이 오르는 것 같다. 혼자만의 공간을 그토록 갈구했던 것도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 싶었기 때문이다.
한때는 혼자 있는 걸 즐긴다는 생각이, 복잡한 관계에 얽히고 싶지 않아서,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게 피곤하고 어색해서 선택하는 회피 수단처럼 느껴져 죄책감으로 느껴질 때가 있었다. 내가 사교성이 없는 이유를 '난 혼자 있는 걸 좋아하니까'라는 이유로 합리화시키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키지도 않는데 억지로 누군가와 함께 하려는 노력도 많이 했다. 가끔 혼자 무언가를 할 때면 지나치게 다른 사람의 시선을 신경 썼다. 내 삶을 이름도 모르는 사람들의 시선에 가둬둘 이유는 1도 없었는데 말이다.
왜, 대부분의 사람들은 모든 일을 꼭 '같이'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나.(나의 학창 시절 내 주변 사람의 99퍼센트는 그러했다.) 배가 고파도 혼자 밥 먹어야 하면 밥을 굶기 일쑤고,—요즘은 조금 시선이 너그러워졌지만—10년 전만 해도 혼자 영화나 공연을 보러 간다고 하면 좀 별난 사람 취급받기 딱 좋았다. 나 또한 그런 시선들이 달갑지 않기에, 혼자 하고 싶어도 무엇하나 맘 편히 하지 못했다.
그런데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어가다 보니 자연스럽게 남의 눈치를 보지 않게 되었고, 그동안 혼자 하기엔 눈치 보였던—때로는 억지로 누군가와 함께 했던—리스트들을 하나씩 해 나갔다. 그 리스트 중 일부를 적어보고자 한다.
혼자 밥 먹기. 어색한 사람과 밥 먹는 건 진짜 고문이다. 또한 난 밥 먹는 속도가 느려지는 시즌 같은 게 있어서(배고플 땐 빨리 먹는다) 상대방 먹는 속도에 맞추기가 너무 힘들다. 상대방은 다 먹었는데, 아무 말 없이 앞에서 날 쳐다보며 기다리고 있다면? 밥이 입으로 넘어가는지 코로 넘어가는지 모르겠다. 혼자 밥을 먹으면 온전히 밥 맛을, 반찬 맛을 음미하면서 먹을 수 있다. 물론 아직까지 혼자 고깃집 가서 고기를 구워 먹거나, 혼자 아웃백 가서 스테이크를 썰어 보진 못했으나 웬만한 식당은 혼자서 다 가본 것 같다. (고깃집이나 패밀리 레스토랑 같은 곳이 정복해야 할 리스트는 아니니까 굳이 그런 곳까지 가서 꿋꿋이 식사해 볼 생각은 없다.)
혼자 영화 혹은 공연(연극/뮤지컬) 보기. 난 웬만해서 약속을 잡은 경우가 아니라면, 꼭 보고 싶은 영화, 공연은 혼자서 본다. 그 편이 작품에 집중하는 데 훨씬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누군가와 함께 보는 영화, 공연도 좋지만, 혼자서 보는 공연도 그에 못지않게 정말 정말 좋다. 무엇보다 혼자 보면 느껴지는 대로 감정을 마구 쏟아부어도 좋다. 슬픈 장면이 나오면 눈물 흘려도 되고, 웃긴 장면이 나오면 미친 듯이 웃어도 된다. 아무리 친한 지인이라도 보여주고 싶지 않은 부끄럽고 솔직한 내 모습이 있는 법이니까. 그런 건 혼자 있을 때 마음껏 토해도 된다.
혼자 여행 가기. 솔직히 말해 여행을 하는 기간이 한 달 반 정도 넘어가면 처절하게 외로워진다. 마치 세상에 나 혼자 떨어진 것 같고, 인간을 왜 사회적 동물이라고 하는지 뼈저리게 이해가 될 정도. 하지만 혼자 하는 여행은 그 점만 제외하면 장점이 너무 많다. 일단, 여행은 자유롭자고 하는 거다. '혼자' 떠났다는 거 자체가 자유의 전부다. 내가 무얼 하든 뭐라 하는 사람 아무도 없다. 내가 가고 싶은 곳, 먹고 싶은 것, 하고 싶은 일, 다 내 마음대로 하면 된다. 의견 충돌로 인해 십수 년간 쌓아온 우정을 무너뜨릴 일도, 사소한 갈등으로 인해 뜨거웠던 애정의 온도를 서늘하게 얼릴 필요도 없다.(누군가와 함께 여행을 해본 사람은 알겠지만, 진짜 사소한 걸로 진짜 크게 싸우게 된다.) 하고 싶은 걸 하면 된다. 누군가와 같이 가지 않아도 충분히 본인 마음속에서 수많은 갈등과 충돌이 일어나는 걸 느낄 것이다. 그동안 내가 무엇을 좋아했는지,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다시금 깨닫게 될 것이다. 그런 점에서 혼자 여행은 또 다른 자신과 여행하는, 자신과 친구가 되는 과정이다. 나도 몰랐던 나를 만나는 일, 흥미롭지 않은가.
혼자 걷기. 생각이 많아질 땐 걸었다. 거기가 우리 동네든, 학교 앞이든, 공원이든, 강가든, 마냥 걸었다. 누군가와 함께 걸으며 서로의 생각을 자연스레 털어놓는 자리도 좋지만, 생각이 많을 땐 무조건 혼자 걸어야 한다. 그렇다고 해결되는 건 하나도 없지만 생각이 정리된다는 게 큰 위안이 된다. 그 정리된 생각을 집에 돌아와 글로 정리해봐도 좋다. 그럼 전보다 기분이 한결 나아져 있을 것이다.
그 외에도 혼자 운동, 게임하기, 혼자 노래방 가기, 혼자 서점가기, 혼자 카페 가기 등등... 둘이 해도 좋지만, 때론 혼자 하면 더 좋은 일들이 많다. 언젠가부터 난 혼자 있는 걸 즐기는 내 모습을 인정하기로 했다. 부족한 사교성 때문이라며 나 자신을 목 조르는 것보다, 그냥 혼자 있는 시간을 즐기는 편이 훨씬 나은 것 같았기 때문이다.
누군가 그랬다. 혼자 있는 시간을 견디지 못하면 그건 외로움이고, 즐긴다면 그건 고독이라고. 나는 외로운 게 아니다. 고독을 즐기고 있을 뿐...
혼자 밥 먹는 게 어때서요. 먹어봐요. 밥 잘 넘어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