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이상돈 의원이 출연했다.
정확한 촌철살인의 정치판 분석과 고급진 유머를 구사하는 분이라 좋아하는 정치인이다.
그런데 오늘 그분의 정치판 분석과 처음으로 다른 의견을 갖게 되었다.
바로 정당 명부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한 선거법 개정에 대한 그분의 비판이다.
그분 발언의 핵심은 철새 등 문제 있는 정치인이 이 제도로 비례대표 국회의원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도입하지 말아야 할 제도라고 말씀하셨다.
이 분 이야기를 듣고 1950년 5월 30일의 2대 국회의원 선거가 생각났다.
나의 중학생 시절 역사 교과서는 2대 국회의원 선거를 군소 정당과 무소속 후보가 난립한 혼돈의 상황에서 치러진 국회의원 선거로 정의했었다.
나는 이 교과서를 통해 자유당이 여당이 된 3대 선거부터 정치가 안정화되었다고 배웠다.
그렇다면 2대 국회의원 선거의 결과는 어떻게 결정되었을까?
투표율은 91.9%, 국회의원 정원 210명 중 무소속 당선자가 126명(62.9% 득표율)이다.
남한 국민 10명 중 9명이 투표를 했고 이중 약 6명이 무소속 후보에 투표를 한 것이다.
군소 정당은 거의 당선자가 없다.
이승만 대통령을 지지했던 2개 정당도 대한독립촉성국민회 14명, 대한청년단 10명, 총 24명이다.
당시 국회의원만의 투표로 대통령을 선출한 시대임을 감안하면
이승만 대통령의 연임이 불가능했다고 생각된다.
군소 정당이 난립한 혼돈의 정치 상황에서 압도적으로 무소속 후보가 당선되는 일이 벌어졌을까?
이 질문에 대한 나의 생각은 농지개혁법 실패에 따른 당시 국민의 심판이다.
농지개혁법은 1949년 제정되어 1950년부터 유상매입 유상분배 원칙 하에 남한의 소작농민들에게 토지를 분배하였다.
하지만 당시 소작농민은 물론이고 지주들도 농지개혁법에 대한 불만이 상당했다고 한다.
소작농민은 다수이고 지주는 소수이다.
또한 소작농민은 약자이다.
그 당시 소작농민의 편에서 그 들의 권리를 지켜준 사람들이 무소속으로 출마한 정치인 아닐까 추정한다.
(무소속 당선자들이 여운형 선생님과 함께한 건국준비위원회 출신들이 아닌가 하는 추정도 하게 된다.)
소작농민들은 내 권리를 지켜준 사람이 국회의원이 되길 바라는 마음에 92%나 투표장을 찾았으리라.
지금처럼 대중교통이 편리하거나 집 근처에 투표장이 있는 시절도 아닌데 말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한국전쟁 중에 2대 국회의원 상당수는 납북 등 의문사를 당한 사람이 많다.
이상돈 의원님 말씀처럼 비례대표 선거에서 1~2번은 국민을 속일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런 행태가 반복되는 정당이 계속 국민의 선택을 받을 수 있으리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따라서 지역 현안 중심의 지역구 선거를 보완하는 차원에서도 국가발전 전략을 입법안으로 구체화한 전국구 정치인과 그 들이 소속된 정당이 국민들에게 지속적인 선택받을 것이라 생각한다.
아울러 21대 국회의원 총선거를 앞둔 내 바람이기도 하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