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소는 선비가 하는 것이다.
카카오톡 상의 시무 7조를 읽고...
사신은 논한다.
조광조가 귀양 간 지 한 달 남짓 되어도 임금의 노여움은 아직 풀리지 않았으나,
죽이자고 청하는 사람이 없으므로 쾌하게 결단하지 못하였다.
생원 황이옥이 이를 알아차리고 망령된 이내·윤세정 두 사람과 함께 상소하여,
조광조를 극심하게 헐뜯고 사류(士類)를 많이 끌어내어 조아·우익·응견이라 지칭하니,
임금이 소(疏)를 보고 곧 조광조 등에게 사사(賜死)하고,
따라서 이옥 등을 칭찬하여 술을 공궤(供饋)하라고 명하였다.
황이옥이 처음에는 조광조 등이 하옥되었다는 소식을 듣고서
곧 석방을 위한 상소를 기초하여 벗들에게 보였으나 마침내 올리지 못하였는데,
이때에 이르러서는 상소를 고쳐 임금의 뜻에 맞추니,
사람들이 다 ‘본디 성품이 흉악한 자다.’ 하였다.
황이옥과 이내, 윤세정은 서로 친하게 지내는 자들이었다.
위 글은 조선왕조실록 중종 편에 기록된 황이옥의 상소에 대한 사관의 평이다.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다양한 상소를 접할 수 있다.
조선 개국과 동시에 정도전 등 대신들이 태조에게 올린 상소처럼 멋진 글들도 있다.
하지만 중종반정으로 무너진 기강을 다시 세우려 한 조광조를 죽이라고 주장한 생원 황이옥의 상소도 있다.
생원은 과거시험인 소과에 합격한 자를 말한다.
이자는 글공부는 많이 하였으나 선비는 아니었다.
그런 자가 선비 코스프레를 하며 중종에게 조광조 등 개혁세력을 죽이라는 상소를 올린 것이다.
이 자의 행동에 사관은 유교적으로 징벌을 가했다.
역사에 기록함으로써 말이다.
오늘 시무 7조라는 상소가 여론의 주목을 받았다.
황이옥만큼 글공부를 한 사람인지 모르지만 자신을 선비로 생각하는 분 같다.
그러니 상소라는 플랫폼을 차용한 것일 테니 말이다.
평범한 소시민인 내가 이 분의 고견을 평할 수준은 못된다.
다만 이 분의 요구에 맞게 문재인 정부의 사관도 이 상소를 역사에 기록해야 할 것이다.
반드시 이 분의 실명과 함께 말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