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급 공무원이 되기로 결심하다.
고향에 내려온 후 어떤 계획도 생각할 틈이 없었다.
신림동 생활에서 지게 된 카드빚을 갚아야 했기 때문이다.
지금도 그렇지만 카드 명세서는 오전에 사용한 것을 당일 오후에 청구받는 기분이다.
편의점, 주유소, 택배 분류 등 어떤 것이라도 하겠다고 마음먹었다.
그중 동네 주유소 알바 자리를 알게 되었고 곧바로 전화를 걸었다.
급여는 나쁘지 않았다.
다만, 공부하면서 일하기는 어려운 근무조건이었다.
오늘 안으로 다시 연락드린다 하고 전화를 끊었다.
전화를 끊는 동시에 거실에서 어머니가 나를 부르셨다.
‘곧 졸업인데 학점 잘 받아야지. 학과 공부에 집중하렴.’
어머니의 표정은 역시 어두웠다.
‘제가 알아서 할게요. 걱정 마세요.’
방 문을 닫았다.
나도 주유소 알바를 하며 공부하는 것이 자신 없었다.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다 한 선배가 생각났다.
관공서나 공공기관에서만 알바를 하는 학과 선배였다.
나는 바로 전화를 걸었다.
‘어, 오랜만이네. 무슨 일이야?’
‘형, 알바 자리 구하고 있어서요. 혹시 소개해주실 수 있어요?’
‘그래? 도서관에서 숙직하시던 할아버지가 최근 그만두셨거든. 너 해볼래?’
‘네, 할게요!’
선배가 알려준 사무실에 가서 면접을 봤다.
그리곤 그 날 저녁부터 바로 근무를 하게 되었다.
내가 일하던 도서관은 교육청이 운영하는 공립도서관이었다.
내 신분은 파견직 근로자(용역), 월 급여는 64만 원 이였다.
이 급여로 40만 원의 카드빚을 갚았다.
그리고 나머지 돈으로 생활을 했다.
적은 월급이지만 카드빚이라는 급한 불을 끌 수 있었다.
그리고 취직 공부와 일을 병행할 수 있어 다행이었다.
이제야 밤에 깊이 잠들 수 있을 것 같았다.
내 업무는 저녁 6시 출근해서 다음 날 아침 9시까지 숙직을 하는 것이었다.
도서관이 문을 닫는 월요일은 하루 종일 도서관에 묶여 있어야 했다.
쉬는 날은 없었다.
선배에게 도서관에서 교체를 요구하면 언제든 잘릴 수 있다는 말을 들었다.
그때도 근로기준법이 있었다.
그 기준에 따르면 말도 안 되는 근무조건이었다.
하지만 잘리면 죽음이라는 생각에 매일 1시간 일찍 출근했다.
눈이 내리면 도서관 정문에서 현관문까지 혼자서 눈을 쓸어두웠다.
그렇게 겨울이 지나 봄이 될 때쯤 도서관 직원들의 마음에 들기 시작했다.
‘자네는 무슨 공부하나?’
월요일에 갑자기 출근하신 관장님이 내게 물어본 첫 질문이었다.
‘수자원공사나 한국철도공사 입사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렇군. 자네 9급 공무원은 어떤가?
24살로 알고 있는데 2년 안에 합격한다면
9급이나 공기업이나 전체 급여에서 큰 차이는 없네.’
썩어도 준치라는 말이 있다.
제대로 공부하지 못했지만 행정고시를 준비하던 내게 9급 이라니...
또 공사와 공무원의 급여 차이는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처음에는 불쾌한 마음이 들었다.
한 편으로 내게 관심을 가져주셔서 감사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나도 그분께 진지한 자세로 답변을 드렸다.
‘공기업 직원과 공무원은 급여 차이가 큰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그렇긴 하지. 하지만 젊은 나이에는 들어온 만큼 쓰게 된다네.
젊은 시절에는 절약하고 나이 들면서 소득이 늘어가는 게 더 좋을 수도 있어.
내 경험상으로는 9급 공무원으로 시작하면 아이 2명은 키울 수 있네.’
그분은 20대 중반에 9급으로 시작해서 퇴직을 4년 앞둔 5급 기관장이셨다.
그래서 생계를 위해서 공사나 공기업을 생각한다면
9급 공무원도 좋다는 그분의 말씀에 믿음이 갔다.
또한 당시 도서관 직장 분위기도 아주 마음에 들었다.
주민들을 위해 어떤 프로그램을 하면 반응이 좋을지에 대한 고민하는 것
어떤 절차를 밟으면 빨리 주민들이 신청한 도서를 서고에 비치할 수 있는지 등
공익을 위해서 고민하고 서로 협력하는 모습이 마음에 들었다.
‘네, 고민해보겠습니다. 관심 가져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날 밤 책상 앞에서 토익 책을 덮어두고 고민을 했다.
‘난 큰 돈이 필요한데 9급 공무원 월급으로 생활이 가능할까,
공기업에 입사하려면 토익 880점 이상 받아야 하는데 이건 2달 안에 가능할까...’
2003년에도 공기업에 입사하려면 880점 이상의 토익점수가 필요했다.
원래 IMF이 전에 공기업은 지방 국립대 출신들이 많이 취직하던 곳이었다.
IMF가 터지자 정년이 보장된다는 장점으로 경쟁률이 높아지고
덩달아 고득점의 어학점수는 입사의 필수 조건이 된 것이다.
입사 시험을 위해 처음 본 토익 시험의 점수는 650점대였다.
공기업의 공채 기간에 맞추기 위해서는 2달 안에 200점 이상을 높여야 하는 실정이었다.
그런데 도서관 알바의 특성 상 학원을 다닐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
결국 먹고살기 위해서 답은 한 가지였다.
‘그래, 9급이다. 박봉 이어도 64만 원 보다야 많겠지!’
2005년 1월 받은 첫 월급은 120만 원 정도였습니다.
남들은 박봉이니 알뜰하게 살라고 저에게 이야기했었지요.
저는 마음속으로 작년보다 2배 인상된 월급이라고 기뻐했습니다.
공무원이 돼서 처음 맡게 된 업무는 공교롭게도 계약과 용역관리 이었습니다.
제가 주어진 권한 내에서 용역직원은 직접 채용으로,
용역직원의 급여는 인상되도록 해왔습니다.
그 과정 속에서 뿌듯한 경험도 난처한 경험도 있었습니다.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용역이라는 것이 대한민국에서 사라지길 바라며 이만 마치겠습니다.
p.s 지난주 금요일 6급으로 승진했습니다.
공직생활 12년 2개월 만이네요.
독자분들께서 축하해주시면 감사하겠다는 마음으로 적어봅니다.
즐거운 주말 마무리하시기 바라겠습니다. 그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