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퇴직을 기념하며...
가끔 가족의 전화는 섬뜩한 느낌을 준다.
전화가 걸려올 시간대가 아닐땐 더욱 말이다.
오늘 어머니께 그런 전화를 받았다.
'아버지 이 번달 까지만 근무하신댄다.'
'짤린거에요?'
'나이가 많아서 회사에서 그만 나오래.'
'알았어요. 퇴근 후에 전화드릴께요.'
아버지는 1951년 생이다.
평생 180만원 이상을 받아본 적이 없다.
이 번 설에 아버지가 한 말이 떠올랐다.
'나이가 많다고 회사에서 사람들이 걱정하더라.
사다리 오를 때 후들거려도 더 힘내서 걷고 있어.'
그 날 저녁 아버지의 월급명세서를 보고싶어졌다.
기본급 118만원
아버지의 월급이 최저임금도 못되는 것이었다는걸 35년만에 처음 알았다.
내가 기억하는 아버지의 퇴직은 이 번이 3번째다.
중학생, 대학생, 그리고 지금...
중학생 시절에는 어머니가 걱정하셨고
대학생 시절에는 나도 걱정했다.
또 원망도 했다.
대기업 다니다 퇴사한 사람들은 중소기업 간부로도 가던대 아버진 뭐하는 사람이냐고...
아버지는 화를 내지 않고 일어나 집 밖으로 나가셨다.
몇 일이 지나 아버지 잠바 주머니에서 봉투 하나를 발견했다.
그건 꾸겨진 이력서였다.
XX국민학교 졸업
XX방직 사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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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땐 나도 이력서를 쓸때라 토익이니 어학연수니 스펙을 고민할 때였다.
이력서에 적을 게 없어 고민하는 아버지...
찍어놓은 점이 눈물처럼 느껴졌다.
아버지는 왜 배우지 못했나...
할아버지가 원망스러웠고
할아버지를 일본군으로 앞세워 정신 이상자로 만들어 버린 시대에 가슴이 아렸다.
다행스럽게도 몇 달이 지나 아버지는 재취업을 하셨다.
최근에 교사나 대기업 근무하다 퇴사한 고향친구들보다 지금은 내가 더 많이 번다고 뿌듯해하시던 아버지가 떠올라 가슴이 아프다.
이 번에는 14년 전 처럼 그러진 말아야겠다.
불쌍한 아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