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이 내게 말을 걸어올 때

NDT(Nederlands Dans Theater)의 무대를 만나다.

by 이형주 David Lee

춤은 나에게 저 바다 깊숙이 침잠해 있는 검은 보석 같은 존재이다. 바닷속 어딘가에 깊이 들어차 있는 것은 알지만 그 존재는 내가 망각한 채 살아간다면 절대로 스스로 수면 위로 올라오지 않는다. 바닷속 모래를 헤집어 그물에 걸려야만 걷어 올릴 수 있는 그런 보석 같은 존재, 춤은 나를 예술의 세계로 안내한 작은 몸짓이었다.


1990년대 남들은 연인들과 영화관에 갈 때, 난 혼자서 홍대 앞 창무 포스트 극장엘 다녔다. 대학 시절 나에게 있어 화두 중 하나는 춤이 표현하는 언어를 어떻게 해석할까 하는 것이었고, 그 느낌을 굳이 옆사람에게 말로써 이야기할 방도가 없었기에 일부러 혼자서 많은 무용공연들을 보러 다녔다. 지금도 여전히 자리 잡고 있는 창무 포스트 극장은 춤과 음악의 만남, 춤과 미술의 만남, 춤과 연극의 만남 등 다양한 주제로 무용 공연을 개최하는 조그마한 지하 극장이다.


대극장에서 보는 춤과 소극장에서 펼쳐지는 춤을 바라보는 것은 하늘과 땅만큼의 차이가 있다. 악기의 진동이 청중의 가슴을 때려서 전율케 하는 실내악을 들어보지 못하고 클래식의 아름다움을 논할 수 없듯이, 눈 앞에서 몸짓하는 춤을 온몸으로 받아보지 못한 사람은 절대로 춤의 미학에 대해 이야기할 수 없다.


2018년 10월 19일 예술의 전당에서 공연한 네덜란드 댄스 시어터의 무용 공연은, 그간 내가 찾고자 했던 춤의 언어가 무엇인지 본능적으로 깨닫게 해주는 공연이었다.


총 3편의 각각 30분짜리 무용을 통해 그들이 말하고자 했던 것은 '죽음', '전쟁', 그리고 '사랑'이었다. 첫 번째 공연 Safe as Houses는 무대 중간에 커다란 흰 벽체가 끊임없이 시계방향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그 벽 사이사이를 흰 옷을 입은 무용수들과 검은 옷을 입은 무용수들이 교차로 지나가며 춤을 춘다. 실상 춤의 세부 동작 하나하나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전체적으로 무슨 이야기를 하는 것인가가 중요한데, 이 작품은 결국 시간이 흐르면서 다가오는 죽음을 검은 무용수들이 끌고 있고, 흰 무용수들은 삶으로서 그 죽음을 어떻게든 저지하거나 지체시키려는 몸부림을 표현한다. 그러나 그 흰 무리들 중 한 명은 무리에서 벗어나 자기만의 춤으로 추고 사그라든다. 다가오는 죽음을 연기시키려는 헛된 몸짓보다 현재의 삶의 기쁨을 누리는 것이 더 가치 있음을 보여 주려 하듯이 말이다.


두 번째 작품 Walk the Demon은 무용수들이 춤을 추면서 지속적으로 소리를 내지른다. Hello와 Good bye인 듯한 단어를 내뱉으며 무대를 지나다니고 어느샌가 음악은 총이 내뿜는 화약 소리로 바뀌며 무용수들의 소리를 덮어 안는다. 전쟁이 안고 있는 두려움은 늘 예술의 단골 소재로 사용되어 왔다. 설치미술 작가들은 공간 전체를 총알이 빗발치는 민간 주택으로 만들기도 하고, 전쟁으로 폐허가 된 뒤 살아남은 자들의 표정은 사진가와 음악가들의 창작물로 표현되었다. 그리고 지금 그 아픔 속의 사람들은 춤이 되어 슬픈 영혼을 달래주듯이 흐느적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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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세 번째 작품 Stop-Motion은 NDT의 대표작이자, 이 공연의 피날레를 장식한 눈부신 작품이다. 흑인과 백인, 그리고 동양의 무용수들이 서로 엉켜 춤사위를 만들고, 어느샌가 무대엔 커다란 스크린을 통해 깊은 물속으로 빠져들어가는 사람의 슬로 모션과, 밀가루를 흩어 뿌리며 남과 여가 어울어진 춤을 통해 마치 피겨 선수들의 몸놀림처럼 무대 바닥을 빙판처럼 부드럽고도 매끄럽게 지치며 움직인다. 아마도 그것은 첫 번째와 두 번째 작품에서 보여주었던 죽음과 전쟁의 아픔을 사랑으로 어루만지는 마지막 몸놀림이 아니었을까. 특히나 이 작품에 사용된 음악들은 영화 '컨택트'의 아름다운 콰르텟 연주로 유명한 막스 리히터의 작품들로 그 명상적인 연주와 어울려 내면 깊숙이 잠자는 검은 보석들을 끄집어낸다.


공연을 보지 못한 사람들에게 그 공연의 아름다움을 전달하는 것이 무용 비평이라면, NDT의 무대는추상적이지만 무대 연출과 음악, 그리고 무용수들을 통해 삶과 죽음의 경계, 그 사이의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사랑의 키워드로 전달하려 한 공연이었다고 비평하고 싶다.


그토록 침잠해있던 춤이, 이제 내게 말을 걸어온다. 그 대답을 이제 쓰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