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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형주 David Lee Jan 30. 2020

그 미술관은 어떻게 국제회의를 유치했을까?

유니크 베뉴의 마이스(MICE) 행사 유치 노하우

환대(Hospitality)란 타자에게 자리를 주는 행위이다.
-김현경, <사람, 장소, 환대 中>-

지역별로 마이스 시설에 대한 관심이 높다. 최근 들어 컨벤션센터가 아닌 공연장이나 미술관, 박물관 같은 곳에서 마이스 시설로서의 마케팅을 문의하는 요청들을 자주 받는다. 이것은 미술관이나 공연장이 본래의 기능 이외 추가적인 시설 활성화의 필요성 때문에 나타난 현상으로 보인다. 더구나 정부에서는 지역별로 컨벤션센터뿐 아니라 이런 복합 문화시설을 '유니크 베뉴'로 지정하여 마이스 도시로서의 활성화를 돕고 있다.


하지만 미술관이나 공연장이 '유니크 베뉴'로 지정되었다고 곧바로 마이스 행사가 유치되지는 않는다. 예술 공간은 본질적으로 예술 행위의 발현을 위한 장소이지 비즈니스 행사를 위한 곳이 아니기 때문이다. 예술공간에서 마이스 행사를 개최하면 불편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정부가, 또는 도시가 상업공간이나 예술공간을 유니크 베뉴로 지정하여 활성화하고 싶다면 단순 지정이나 홍보에서 그칠 것이 아니라 우리 공간에 실제로 어떻게 마이스 행사를 유치해야 하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가이드가 필요하다.


행사 기획자들이 컨벤션센터를 선택하지 않는 이유


전통적으로 국제회의나 포럼 등의 행사를 위한 장소로는 컨벤션 센터나 호텔 등이 선호되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스타트업 포럼이나 문화와 결합한 트렌디한 행사가 많아지면서 행사 기획자들이 베뉴를 선택하는 기준이 바뀌고 있다. 행사 기획자들은 왜 컨벤션 센터를 벗어나 유니크한 베뉴를 찾아 나설까? 크게 두 가지 이유에서 행사 장소 선택의 기준이 기존과 달라지고 있다.


(1) 베뉴의 이미지가 행사의 개최 목적을 반영해야 한다.

삼성전자는 QLED TV 런칭쇼의 장소로 파리 루브르 박물관을 선택했다. TV가 하나의 예술작품이라는 콘셉트를 표현하기 위해서였다. 현대자동차는 런던 테이트 모던을 11년간 후원하며 각종 브랜드 마케팅의 장소로 활용한다. 왜 기업은 호텔이나 컨벤션센터가 아닌 박물관이나 미술관을 마케팅의 장소로 활용할까? 제품의 이미지나 브랜드를 가장 극적으로 표현하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베뉴는 단순 개최 장소로서의 시설이 아니라 콘텐츠를 가장 잘 드러내는 그릇의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이다.  


(2) 임대료 할인보다 공간이 참가자에게 던지는 정서가 더 중요하다.

전시회가 단순 부스 임대료 할인만으로 참가 기업을 유치할 수 없듯이, 베뉴도 단순 장소 할인이나 주변 숙박, 식음시설의 유무로 경쟁력을 갖는 시대는 지나갔다. 행사가 어디서 개최되느냐는 행사 참석의 중요한 결정 요인이 되고 있다.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DDP)가 루이뷔통, 샤넬, 티파니 등 명품 기업들의 전시회 메카로 각광받는 이유도 마찬가지이다. DDP는 베뉴 그 자체의 경쟁력에 더해 동대문의 아우라 - 아시아의 뷰티, 패션의 중심이라는 - 를 흡수하여 서울의 전통과 모던함의 공존을 가장 극적으로 표현하는 공간으로 포지셔닝했기 때문이다.


유니크 베뉴의 국제회의 유치 노하우


베뉴의 대관 담당자는 단순히 장소 임대 견적서를 발급하는 사람이 아니다. 베뉴 마케터로서의 제일 중요한 업무는 적합한 행사를 발굴하여 행사의 개최 목적을 반영하는 최적의 동선과 장소를 추천, 제안하는 일이다. 따라서 미술관, 공연장, 박물관 등의 베뉴 마케터가 국제회의를 유치하기 위해서는 유치 프로세스를 이해하고 있는 것이 우선이다. 아래의 5가지 절차를 알고 나면 어떤 마이스 행사라도 자신 있게 제안하고 유치할 수 있다.


(1) 행사 정보를 파악하라.


-네트워크 활용하기

국제행사를 유치하기 위해 우선적으로 할 일은 유치 대상을 찾는 일이다. 하지만 이 세상에 수많은 국제회의와 행사가 있는데 도대체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찾는단 말인가? 어떤 일이나 마찬가지겠지만 가장 쉬운 방법은 주변 네트워크를 활용하는 것이다. 베뉴와 관련 있는 단체나 기업을 활용하여 관련 행사 정보를 찾는 방법이다. 베뉴를 후원하고 있는 기업이나, 운영 주체인 정부, 지자체, 또는 협회를 활용하여 매년 열리는 관련 국제 행사가 무엇이 있는지 파악한다. 또는 후원이나 멤버십 활동을 하고 있는 기업, 단체를 통해 우리 베뉴에 적합한 국제회의가 어떤 것이 있는지 탐색한다.

 

-ICCA, CVB 가입을 통해 국제 행사의 RFP를 확보하기

행사 정보를 적극적으로 찾으려면 관련 정보의 허브로 들어가야 한다. ICCA(Int'l Congress and Convention Association)는 전 세계 컨벤션, 전시, 포럼 등의 정보를 보유하고 있는 협회인데, 여기에 가입하면 전 세계에서 행사 유치를 원하는 도시에 RFP(Request For Proposal:제안요청서)를 제공한다. 대륙별, 개최 주기별, 행사별 등으로 구분되어 있어 유치 제안의 가능 여부를 바로 확인할 수 있다.

ICCA 웹사이트 : 회원들에게 국제 행사 유치 제안을 위한 RFP를 제공한다.

또는 국내 지자체 별로 CVB에 가입하여 그 지역 개최가 확정된 행사나, 도시와 함께 공동으로 유치 제안을 할 수 있는 정보를 탐색할 수 있다. CVB는 Convention & Visitors Bureau의 약자로 마이스 행사를 통해 도시 마케팅을 하기 위한 기구를 말한다. 현재 우리나라는 서울, 경기, 인천, 고양, 대구, 부산 등 거의 대부분의 지자체가 자체 CVB를 운영하며 국제 행사 유치를 하고 있다. CVB 멤버는 대부분 그 지역에 기반을 두기 때문에 비단 행사 유치뿐 아니라 협력과 마케팅 등에서도 많은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장점이 있다.


(2) 제안을 위한 얼라이언스 구축하기 : 잊을 수 없는 경험을 제공하라.


우리나라가 유치한 국제 행사 중 가장 드라마틱한 행사라면 아마도 평창 동계 올림픽이 아닐까 싶다. 평창 동계 올림픽은 세 번의 도전 끝에 유치한 스포츠 이벤트였다. 그 행사 유치를 위해 과연 몇 개 기관이 나섰을까? 대기업 총수, 장관, 도지사, 스포츠 스타에 대통령까지 나선, 그야말로 가능한 역량을 총동원한 매머드급 행사였다. 이렇게 큰 대형 행사뿐 아니라 소규모의 국제회의 유치라도 베뉴 단독으로는 제안을 하기 힘들다. 유치 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그리고 참가자들에게 잊을 수 없는 경험을 제공해주기 위한 전략적 제휴 구축이 필요하다.


국제 행사 유치를 위해 필요한 협력관계는 기본적으로 '행사 베뉴+행사 관련 국내 협단체+지자체+지역 호텔'이다. 이러한 협력이 필요한 이유는 국제 행사 참가자들이 평균 3-4일을 해당 지역에서 체류할 때의 이동 동선에 따른 프로그램 구축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행사 베뉴는 최적의 공간 제안을, 국내 협단체는 관련 VIP 및 관계자와의 행사 운영 등 지원 업무를, 지자체와 지역 호텔은 참가자의 체류시간을 늘리기 위한 다양한 관광, 숙박, 쇼핑 등의 체험 프로그램과 참가자의 교통, 안전 등 지원 방안을 마련하여 입체적인 제안서를 작성해야 한다. 마이스 행사 참가자들은 행사 자체뿐 아니라 개최지의 문화, 관광 등 체험을 원하기 때문에 베뉴뿐 아니라 우리 도시의 매력을 극대화할 수 있는 제안이 들어가야 한다. 다시 말해 잊을 수 없는 경험을 제공하는 것, 그것이 성공적 제안을 위한 협력 관계 구축의 이유이다.

MICE 참가자는 체류기간 중 바이어로, 비즈니스맨으로, 투어리스트로 성격을 바꿔가며 그 도시를 체험한다.


(3) 행사 특성에 맞는 공간을 제안하라.


유치 제안서의 내용 중 가장 핵심적인 부분은 바로 개최 장소의 적합성이다. 아무리 도시가 아름답고 매력적이라 하더라도 개최 장소가 행사 성격과 맞지 않다면 유치에 불리할 수밖에 없다. 베뉴 제안에서 쉽게 실수하는 부분이 행사 장소를 마치 식당의 메뉴판을 보여주듯 행사 주최자가 알아서 골라 쓰라고 하는 것이다. 베뉴의 마케터는 유치 대상 행사의 내용을 완전히 이해하고, 어느 공간이 최적의 행사 장소인지를 행사 프로그램별로 제안할 수 있어야 한다. 주차장은 어디를 써야 할지, 개막식은 어디서 하며 만찬이나 부대 이벤트의 공간은 어디가 최적인지 등 행사에 최적화된 맞춤형 제안을 하는 것이 유치 성공 가능성을 높여 준다.

킨텍스에서 2016년 개최된 로터리 국제대회는 총인원 5만 6천 명에 해외 참가자가 50%가 넘는 국내 최대의 국제 행사였다. 이 제안을 위해 난 전차 대회 답사로 행사를 이해하고, 킨텍스 전관을 로터리 대회에 최적화된 장소로 제안했다.

로터리 대회 장소 제안 - 킨텍스 전관을 로터리 대회 맞춤형으로 제안했다.
킨텍스 1, 2전시장 사이 보행축을 야외 음식문화축제 공간으로 제안하여 전세계 참가자의 Food Street으로 활용했다.


(4) 개최 도시의 역할 : 참가자의 체류시간을 늘려야 도시 경제가 살아난다.


마이스 산업으로 도시를 살리겠다는 지자체가 많지만, 마이스로 도시가 얼마나 살아났는지를 구체적으로 증명한 도시를 찾기는 힘들다. 마이스를 유치하면 경제 파급효과가 얼마라느니, 고용창출 효과가 얼마라느니 하는 장밋빛 수치는 행사가 끝남과 동시에 증명되어야 하나 애석하게도 그 효과를 측정하는 기관도, 베뉴도 없다. 경험컨대 마이스 참가자가 연간 몇백만 명이 왔다 갔다는 숫자는 도시 경제 활성화에 큰 도움을 주지 못한다. 우리는 평창 올림픽이 강원도 경제에 어떤 효과를 거뒀는지 알지 못한다. 안타깝지만 로터리 국제대회도 5만 6천 명이 고양시에 무슨 경제효과를 가져다주었는지 확인할 방법이 없다. 'Circus Maximus'의 저자  Zimbalist는 올림픽과 월드컵 이벤트가 끝나고 도시에 남는 것은 텅 빈 경기장과 그 경기장 건설로 남은 막대한 빚뿐이라고 했다. 마이스로 도시가 살아나려면 참가자의 숫자보다 참가자의 체류시간을 측정해야 한다. 체류시간이 늘어나면 지출은 자연스레 발생한다. 따라서 베뉴가 마이스를 유치하여 참관객을 도시로 끌어들이는 최전방의 공격수라면 도시는 그 참가자들이 오래 머물면서 도시를 즐길 수 있는 인프라와 프로그램을 구축해 놓아야 한다. 도시는 마이스 이벤트의 화려한 조명에 취할 것이 아니라, 그 참가자들의 체류시간을 늘려 도시 경제를 살리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5)  온라인과 연결하라 : 좋은 경험은 좋은 기억을 유도한다.


마지막으로, 베뉴가 국제행사를 유치하여 잘 치렀다면, 그 성과는 다른 행사의 유치를 위한 콘텐츠로 기록되어 온라인과 연결되어야 한다. 성공적인 행사의 좋은 경험은 참가자와 행사 주최자에게 좋은 기억을 남긴다. 베뉴는 마케팅을 스스로 할 것이 아니라 행사 주최자들이 베뉴를 타인에게 추천하는 변호인(Advocate)으로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어떤 행사가 적합한지에 대한 해답은 행사를 실제로 개최한 기획자가 제일 정확히 안다. 베뉴 마케터의 역할은 행사 기획자가 생각하는 베뉴의 장점을 파악하여 이를 포장하고 온라인을 통해 확대해 나가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2017년 구겐하임 뮤지엄, 퐁피두센터, 아시아 문화의 전당 관계자들이 한자리에 모인 '문화기관과 소셜미디어' 포럼에서는 SNS가 기관이 아닌 개인의 정서를 담고 있어야 한다고 했다. 회사 계정처럼 딱딱한 소식 전달이 아니라 인간의 감정을 드러낸 교감이 이루어지도록 해야 한다고 역설했는데, 이것은 마이스가 가진 특징, 즉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오프라인 이벤트의 정서를 온라인을 통해 드러내는 데 있어 중요한 방향을 제시해 주었다.

'문화기관과 소셜미디어' 포럼 : 개인의 정서를 담은 교감이 온라인에서도 이루어져야 한다.


환대(Hospitality)란 타자에게 자리를 주는 행위이다.


'사람, 장소, 환대'의 저자 김현경은 환대(Hospitality)란 타자에게 자리를 주는 것이라고 했다. 자리를 준다는 것은 친교의 공간을 마련해 준다는 것이고, 그 안에서 머물 수 있는 공간을 주는 의미라고 했다. 환대에 대한 해석에 있어 이보다 명쾌한 정의는 없다고 생각한다. 베뉴와 도시가 마이스를 유치한다는 것은 낯선이들에게 머물 공간과 시간을 주어 교류하고 체험할 수 있도록 환대한다는 뜻 이리라. 


이렇게 미술관, 박물관, 공연장이 마이스 행사를 유치할 수 있다면, 그 베뉴는 더 이상 미술관도, 박물관도, 공연장도 아닐 수 있다. 오히려 베뉴는 하나의 '아이디어 박스'로서 온 오프라인을 넘나들며 다양한 콘텐츠를 담아내는 그릇으로 활용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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