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성 문화예술회관은 어떻게 행사 유치의 신이 되었나?
동네 할머님들이 5일장 보고, 문화충전시키러 잠시 들러서 유키 구라모토 공연 보고 그래요.
국회의원 선거철이 다가오자 역시나 집으로 두툼한 우편물이 배달되었다. 국회의원 후보들의 공약집이었다. 사실 지금껏 이 우편물을 제대로 펼쳐본 적은 없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이름조차 헷갈릴 정도로 많은 정당이 나열되길래 도대체 누가 무슨 얘기를 하는지 알고나 투표장에 가야 할 것 같아 공약집을 하나하나 읽어 보았다.
업이 그런지라 자연스레 후보들의 문화정책들에 눈이 가게 되었는데, 음, 역시나, 허무한 공약들이 너무나도 많다. 그 허무함의 공통점은 첫째, 이미 예정 중인 지역 정책사업들을 마치 자신들이 생각한 것인 양 내세우거나 둘째, 지역 콘텐츠와는 전혀 상관없는 그 뜬금없는 '4차 산업혁명'과 '복합 문화 중심지' 공약들이라는 것이다. 특히나 지역마다 내세우는 문화예술 공간 건립은 사후 운영 방안에 대한 고민은 전혀 상관없는 임기 내 건립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을 뿐이라는 점에서 평창 올림픽 이후 유휴 스포츠 시설의 악몽을 떠올리게 할 뿐이었다.
이런 이유에서인지 서랍 속에 묶어 두었던 예전 자료를 하나 꺼내보게 되었다. 그것은 국내 지자체가 건립한 문화예술공간 중 눈에 띄는 마케팅으로 주목을 받았던 음성 문화예술회관의 사례이다. 음성 문화예술회관은 충북 음성군에서 건립한 작은 문화예술회관이다. 인구 10만여 명의 이 작은 지방 문화예술회관이 서울에서도 유치하기 힘든 유키 구라모토, 백건우, 금난새, 조수미, 조지 윈스턴, 이은미 등 유명 예술가들의 공연을 계속 유치하여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음성군에 미스터리 한 섭외의 신이 있다고 소문이 날 정도였다. 또 공연 티켓을 고작 2만 원대에 판매를 하여 온라인상에서 '음성군 동네 할머니들이 5일장 보고 문화 충전하러 유키 구라모토 공연 보러 간다'라는 소문이 날 정도로 관람객 유치에 성공한 곳이다.
어떻게 이 작은 문화예술회관이 그토록 유명한 공연들을 섭외할 수 있었을까? 더구나 2만 원대의 가격으로 과연 수지를 맞출 수 있었을까? 관련 기사와 인터뷰 자료 등을 토대로 정리해 봤더니 크게 3가지가 이 음성 문화예술회관 마케팅의 성공 요인이었다.
1. 음성군의 재정적, 행정적 지원
음성군은 음성 문화예술회관이 좋은 공연을 선보일 수 있도록 매년 예산을 지원해 오고 있다. 매년 평균 약 4억 원 정도의 예산을 책정하며, 공연 섭외비를 포함한 전체 비용의 100%를 군비로 지불한 뒤 수지타산을 따지지 않고 티켓 가격을 정한다. 음성 문화예술 관계자는 "지역 주민들이 서울을 찾지 않아도 문화생활을 누릴 수 있도록 좋은 공연을 섭외하려 한다"라고 말했다.
이런 재정적 지원 이외에도 음성군은 건립 당시 문화, 예술 공연과 전시로 한정했던 운영 조례를 개관 이후 개정하면서 음성군의 각종 행사와 공연, 전시, 회의, 집회 등 MICE 행사까지 운영을 확대했다. 이런 조례 개정은 음성 문화예술회관을 종합적인 복합 문화공간으로 재탄생시키는 행정적 뒷받침이 되었던 것이다.
2. 행사 유치 담당자의 유치 마케팅 노하우
아무리 지자체의 적극적인 지원이 있더라도 실제 행사를 유치하는 마케팅 담당자의 노력이 없다면 행사 유치는 헛수고일 수밖에 없다. 실제 유키 구라모토의 공연을 유치하고 600석 전석을 30분 만에 매진시킨 성공사례의 뒤에 나온 관심사는 도대체 누가 세계적 피아노 거장을 이 작은 마을에 유치했냐는 것이었다. 이 역대급 섭외력을 발휘한 주인공은 음성군 문화홍보과의 문화예술회관 프로그램 기획 주무관이었다. 이 주무관은 유키 구라모토 이외에도 금난새, 백건우, 장사익, 김범수, 조수미 등의 유명 아티스트를 직접 섭외하였는데 결국 이 노하우는 알고 보면 간단하다. ▶첫째, 전 연령층이 공유할 수 있는 대상을 찾았다. ▶둘째, 시기에 맞는 공연 대상을 찾았다. ▶셋째, 기획사 관계자를 직접 만났다. ▶넷째, 음성군의 낮은 인지도와 지역 문화 활성화에 대한 효과를 피력했다. ▶다섯째, 공연 티켓값을 낮게 책정하고 지역 주민을 배려한 티켓 예매 방법을 도입했다.
이러한 5가지 방법이 특별한 노하우는 아니지만, 굴지의 공연 기획사를 상대로 쉽게 제안할 수 있는 방법도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작은 지방 담당자의 열정적인 제안은 결국 세계 유수의 아티스트가 음성을 찾게 만든 핵심 이유였다.
3. 지역 예술문화 단체와의 협력
음성 문화예술회관에는 음성군 문화체육과 문화예술회관 운영팀이 상근하고 있다. 여기에 음성 예총도 입주해 다양한 강좌로 '문화예술아카데미'를 운영한다. 음성예총 산하 문화예술단체들 공연과 전시 역시 대부분 음성 문화예술회관에서 진행한다.
이렇게 문화예술 전문가들과 문화예술회관 마케팅 담당자들이 함께 상주하며 머리를 맞대다 보니 공연 기획 능력은 전국에서 손꼽을 정도로 유명해졌다. 국내뿐 아니라 세계 정상급의 예술행사를 유치하면서 음성군민들에게 자부심을 주고 있다. 더구나 이렇게 작은 지역의 문화 예술에 대한 인식이 지역의 한계를 이미 벗어났다는 것은 담당자의 인터뷰에서도 나타난다. "온라인을 통해 접하는 정보가 많아지면서 음성군민들의 문화적 욕구 역시 점점 높아지고 있다. 지역의 한계를 벗어나 세계 수준의 공연을 유치하기 위해 항상 고민한다."
음성군은 음성 문화예술회관에 세계적 공연을 유치하여 지역주민뿐 아니라 타 지역의 사람을 불러 모으는 데 성공했다. 이러한 노하우는 결국 음성군 지역 활성화와 연관된 다른 사업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음성군은 지역 내 의약품 및 화장품 제조 공장들과 함께 산업 관광활성화에서도 타 지역을 리드하고 있다. 총 10개의 기업과 산업관광협의체를 구성하고 산업단지와 관광자원을 결합한 '흥미진진한 팩토리 투어' 사업으로 2018년 문화체육관광부의 산업관광 육성 공모사업에 선정된 것이다.
국회의원 후보들의 지역 문화예술사업 관련 공약들을 지켜보며 과연 지속 가능한 사업들이 얼마나 될지 걱정하는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닐 것이다. 해외의 멋진 성공 사례들을 거론하며 우리 지역의 발전을 외치는 주장이 공허하게 들리는 것은 우리의 땅에서 이룰 수 있는 것들을 돌아보지 않고 그저 누군가를, 무언가를 막연히 닮고 싶어서이기 때문이 아닐까. 음성군은 한 작은 지역이 어떻게 문화예술을 살리고, 그것이 어떻게 산업관광에까지 이어져 사람들을 불러 모으고 지역을 활성화시키는지에 대한 하나의 답을 제시했다.
그리하여 베뉴를, 공간을 지을 때부터 어떻게 사람을 불러 모을지 생각하고, 모인 사람들이 어떻게 도시에 오래 머무르게 할까를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주저 없이 그를 선택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