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가 사라지는 베뉴 마케팅
컨벤션 센터와 미술관의 공통점은? 모두 사람들을 불러 모으는 일이 핵심이라는 점에서 같고, 행사가 없으면 갈 일이 없다는 점에서 또한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컨벤션 센터와 미술관이 평소에 잘 만나지 않는 것은 왜일까? 각자의 사업 영역이 다르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컨벤션 센터는 마이스 행사에, 미술관은 문화 예술 행사에 집중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컨벤션 센터와 미술관은 같다. 목적이 있어야 방문하는 Destination Center라는 차원에서 두 개의 공간은 같이 공존할 수 있다. 서로 다르지만 같은 영역에서 존재하는 두 개의 베뉴는 어떻게 같이 살 수 있을까? 아래의 3가지 관점에서 생각해보자.
컨벤션 센터의 성수기는 언제일까? 비즈니스가 가장 활발히 이루어지는 시기이다. 쉽게 생각하면 직장인들의 성수기가 컨벤션 센터의 성수기이고, 직장인들의 휴가 시즌이 컨벤션센터의 비수기이다. 그래서 컨벤션 센터는 3월에서 6월, 9월에서 11월까지가 성수기이고 12월에서 2월, 7월에서 8월까지가 보통 비수기이다.
미술관은 컨벤션 센터와 정반대이다. 미술관의 성수기는 직장인들의 휴가시즌이자 아이들이 방학하는 때이다. 그래서 12월에서 2월, 7월에서 8월이 성수기이다. 이때 미술관에서 열리는 전시회를 보통 '블럭버스터 행사'라고 한다. 가장 흥행이 잘 될 것 같은 행사들이 이 시기에 몰린다. 반대로 미술관의 비수기는 직장인들이 가장 바쁜 3월에서 6월, 9월에서 11월이다. 직장인과 아이들이 모두 회사와 학교에 있으니 미술관으로선 집객이 어려울 수밖에 없다.
이렇게 컨벤션 센터와 미술관의 운영 주기는 정확히 정반대의 사이클을 보이기 때문에, 여름과 겨울 비수기에 컨벤션 센터들이 장기 문화행사_미술전이나 어린이 문화행사를 집중 기획한다. 반대로 미술관은 봄가을 시즌을 활용하여 기업회의와 같은 마이스 행사 유치에 공을 들인다. 테이트 모던이나 구겐하임 뮤지엄 등이 기업 행사 유치를 위한 별도의 프로그램을 이 시즌에 집중적으로 마케팅하는 이유이다.
따라서 서로 정반대 되는 성수기와 비수기의 운영 사이클을 잘 활용한다면 서로의 장점을 살려 비수기뿐 아니라 성수기를 더욱 활성화하는 윈윈 전략을 만들 수 있다.
마이스 행사에 참가하는 바이어나 참가기업들의 동선을 따라가 보면 왜 컨벤션 센터와 미술관이 협력해야 하는지 알 수 있다. 우리가 라스베이거스 무역 전시회에 참가한다고 생각해보자. 보통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는 컨벤션 센터에서 바이어와 상담에 분주하다. 하지만 저녁이 되면 도시의 비즈니스 인프라나 문화 공연장, 관광지로 이동하기 마련이다. 한국에 오는 외국 바이어들도 마찬가지다. 어느 바이어 건 하루 종일 컨벤션센터 안에서만 머물지 않는다. 지역 내 기업이나 비즈니스 인프라를 투어하고 그 도시의 문화 콘텐츠를 즐기기 위해 미술관이나 공연장, 쇼핑몰 등을 방문하게 된다.
따라서 컨벤션 센터가 마이스 행사를 유치하면 마이스 참가자의 동선을 이해하고 3-4일간의 체류 프로그램을 만들어주어야 한다. 전시회-포럼-만찬-비즈니스, 문화 투어 등의 프로그램은 컨벤션 센터와 지역 미술관 등을 연계하여 마이스 방문자의 도시내 체류시간을 늘려준다. 마이스 참가자의 동선을 이해하면 왜 마이스와 관광-문화 콘텐츠의 경계가 사라지는지 이해할 수 있다. 미술관과 컨벤션센터는 마이스 방문자의 유입을 통해 베뉴 활성화뿐 아니라 궁극적으로 도시내 체류시간이 늘면서 지역 활성화에도 도움을 주는 것이다.
컨벤션이나 전시 기획자들은 이제 전형적인 호텔이나 컨벤션 센터만을 선호하지 않는다. 행사 기획자들이 비전형적인 베뉴를 찾는 이유는 크게 보면 두 가지이다. 첫째, 행사 공간_베뉴는 이제 더 이상 단순한 모임 장소가 아니라 행사의 목적을 반영하는 곳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루이비통이 한국에서의 쇼케이스 장소로 한국가구박물관을 선호하는 이유는 그 공간이 보여주는 절제와 헤리티지의 미학이 브랜드와 일치하기 때문이다. 둘째, 베뉴는 더 이상 어메니티_주차장이 편리하고 케이터링 서비스가 훌륭한 것_뿐만 아니라 행사 참가자에게 느껴지는 정서(Feeling)가 중요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높은 곳을 오르는 이유는 힘들지만 도달해야 할 목표를 이루는데서 느끼는 성취감 때문이다. 세계에서 두 번째로 높은 중국 상하이 타워(123층 683m)는 그 높이를 활용하여 베뉴 마케팅의 콘셉트를 '도전과 성취'로 설정했다. 글로벌 기업들의 사업계획이나 비전발표회 등의 공간으로 상하이 타워가 선호되는 이유이다.
같은 음식이라도 어떤 그릇에 담기느냐에 따라 느껴지는 맛조차 달라질 수 있다. 취향이란 그런 것이다. 이제 행사가 열리는 공간_베뉴는 단순히 장소적 기능을 넘어 행사의 목적을 반영하는 정서적 기능까지도 고려해야 한다. 쇼핑몰이 판매 공간을 넘어 휴식과 라이프 스타일의 공간으로 변화하듯 베뉴 역시 시설의 기능적인 면과 함께 참가자의 취향을 반영할 수 있어야 한다. 컨벤션 센터와 미술관은 이제 독자적으로 생존하기보다 행사 참가자의 정서를 반영하여 세분화된 기획에 함께 참여할 수 있다. 그것이 어쩌면 점점 온라인으로 모든 것이 가능한 이 시대에 오프라인의 공간들이 살아남는 방법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