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니크 베뉴는 은밀한 친교의 공간이다.
무심코 읽다 내려놨던 유홍준 교수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를 다시 책장에서 끄집어냈다. 그는 어떻게 이 많은 답사의 기록들을 한달음으로 써 내려갔을까. 나 역시 한국의 유니크 베뉴 30개를 하나하나 짚어가면서 그처럼 언젠가는 '나의 유니크 베뉴 답사기'를 쓰고 싶다는 희망을 가져보지만, 그 무수히 많은 기억들을 놓치지 않고 잡아내어 글로 풀어내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닌 것이다.
한국관광공사가 선정한 한국을 대표하는 30개의 유니크 베뉴들을 마이스 시설로 활성화하기 위한 컨설팅 작업에 착수한 지 어느덧 한 달이 지나갔다. 전국을 돌며 지난 한 달여간 약 20개의 베뉴들을 방문했고, 아직도 10개의 시설들을 더 둘러보며 베뉴의 경영진과 실무자들을 만나야 한다. 어느덧 전국에서 약 40여 명의 베뉴 운영자들을 쉴 틈 없이 만났고 실제 베뉴 운영에 관한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베뉴를 컨설팅한다는 명목으로 각 분야의 전문가들과 함께 의견을 나누며 솔루션을 도출하고 있지만, 결국 베뉴를 운영하고 있는 경영진과 실무자의 의견을 깊이 청취하고 메모하다 보면 어느새 베뉴에 맞는 진단과 적용 가능한 솔루션들은 정리가 되어 가기 마련이다. 늘 그렇지만, 현업 깊이 발을 담그고 있는 사람들의 생각과 고민을 깊이 듣는 것이 컨설팅의 시작이요, 끝이다.
한국의 유니크 베뉴들은 대략 7가지의 유형을 띠고 있다. 한옥을 기반으로 전통문화의 계승과 확산을 목적으로 하는 Traditional Venue, 한국의 유무형적 역사와 문화 콘텐츠를 품격 있는 공간에서 보여주는 Heritage Venue, 현대 건축과 콘텐츠로 세련미를 갖춘 Modern Venue, K-POP과 영화, 드라마, 자동차 등의 한류 콘텐츠를 공간에 접목시킨 Creative Venue, 자연과의 결합으로 친환경적 특징을 보이는 Natural Venue, 평화와 힐링의 공간으로 사람들을 불러 모으는 Peaceful Venue, 그리고 스포츠 이벤트 공간으로 역동적인 액티비티를 체험할 수 있는 Dynamic Venue가 그것이다.
이처럼 한국의 유니크 베뉴들은 모두 저마다 유형도 다르고, 다른 유형만큼 안고 있는 고민과 문제들도 다 제각각이다. 특히 마이스 시설로서의 활성화를 위해서는 이 베뉴 사업자들의 고민이 무엇인지를 먼저 파악하는 게 중요한데, 그 고민들은 베뉴 별로 다 다르지만 정리하면 결국 4가지의 이슈들로 좁혀진다.
(1) 홍보와 마케팅
유니크 베뉴란 것이 마이스 시설이 아닌 것을 마이스 시설로 쓰이도록 하는 것이기 때문에, 대부분의 베뉴 담당자들에게 우선적으로 필요한 지원이 바로 홍보와 마케팅이다. 베뉴를 마케팅한다는 것은 결국 우리 베뉴에 어울리는 콘텐츠가 무엇인지를 파악하여 그것과 연관된 행사를 주최하는 고객들에게 소구 하는 것을 말한다. 마이스가 무엇인지도 아직 잘 모르는 베뉴의 실무자들에게 왜 마이스 마케팅을 제대로 하지 않느냐고 다그칠 것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무엇이 어울리는 콘텐츠이고 어떤 고객들에게 어떻게 어필해야 하는지를 우선적으로 파악하고 알려주는 노력이 필요하다. 특히나 코로나 팬데믹으로 외국인들의 한국 방문이 중단된 상황에서 베뉴의 마이스 마케팅이 어렵다 보니, 외국인을 위한 공간으로만 알려지기보다 오히려 내국인들에게 더 가까이 다가서려는 홍보와 마케팅을 원하고, 또 그것이 필요한 시점이기도 하다.
(2) 행정규제의 완화
본래의 목적이 아닌 용도로 건축물을 사용하는 데에는 행정당국의 까다로운 심사와 승인을 거쳐야만 하는 경우가 많다. 박물관이나 수상 크루즈 등 특수 목적의 시설을 마이스 행사장으로 사용하려면 마치 미로와 같은 행정규제와 절차를 무사히 통과할 수 있어야 한다. 한강에서 선박을 보유한 베뉴 사업자가 마이스 행사를 하려면 서울시 한강 사업본부와 주변 민원인들의 요구사항을 반드시 처리해야 한다. 또 언덕배기에 있어 대중교통이 닿지 않는 베뉴에는 구청이나 시 단위의 대중교통 지원과 주차 문제 등이 해결되어야 한다. 이러한 이슈들은 대부분 일개 베뉴에서 호소한다고 될 일이 아니기에 마이스를 논하기 이전 마이스를 할 수 있는 인프라 구축의 관점에서 짚어나가야 한다.
(3) 마이스에 대한 체험과 교육
베뉴가 유니크하다는 것은 철저히 마이스 주최자나 지자체 입장에서의 생각이다. 모든 베뉴는 저마다의 근원적이고 본질적인 운영 목표가 있다. 박물관은 박물관대로, 자동차 전시장은 자동차 기업의 입장대로, 또 휴양림은 휴양림 나름의 목적과 운영 방향이 있는 것이다. 유니크 베뉴가 왜 마이스를 제대로 지원하지 않느냐고 묻는 것은 그 본질적 기능보다 부가적 기능을 우선순위에 놓으라는 말에 다름 아니다. 당연하게도 마이스 행사 주최자는 유니크 베뉴가 호텔이나 컨벤션센터보다 훨씬 행사하기에 멀고, 비싸고, 불편하다.
그러므로 이런 베뉴들을 마이스 행사 공간으로 활용하려면 무엇보다 베뉴의 경영진과 실무자들이 마이스가 베뉴에 어떤 혜택과 기여를 할 수 있는지를 알게 해야 한다. 그리고 마이스 유치와 마케팅 방법들을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마이스 유치가 베뉴에 꼭 필요하냐는 질문에 거의 모든 베뉴가 마이스가 꼭 필요하다 답했다. 그 이유가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누구는 베뉴의 품격을 알리는데 마이스가 적합하다고 했고, 또 누구는 생존과 매출 창출을 위해서 필요하다고 했다. 마이스가 베뉴의 이미지 홍보와 수익 창출에 기여하는 중요한 수단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면 굳이 국가나 지자체에서 베뉴를 지원하지 않더라도 스스로 적극적인 마이스 마케팅을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4) 마이스 네트워크 구축
마이스를 유치하고 개최하는 방법에 있어 현재 대부분의 유니크 베뉴들은 단순 대관 문의를 통해 들어온 행사를 개최하는 소극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다. 베뉴의 담당자들이 소극적인 마케팅을 하는 것은 그것이 의지가 없어서라기 보다는 실질적으로 마이스 유치나 마케팅에 관한 지식과 교육을 접하지 못해서가 대부분이다. 더구나 지역별 마이스 얼라이언스나 CVB 등과의 적극적인 네트워킹과 행사 정보 공유 등의 연대 활동은 거의 하지 않거나 가입만 한 정도에 있다. 지역 컨벤션센터와 CVB가 유니크 베뉴와의 네트워킹을 통해 행사의 오프닝과 피날레 등 부대행사장으로의 활용을 유도하기만 해도 지금보다는 훨씬 활발한 마이스 연대가 구축될 것이다. 이것은 결국 도시 내의 체류시간을 늘려 지역의 경제활동에도 마이스가 기여하는 실질적인 효과를 낼 수 있다.
'사람, 장소, 환대'의 저자 김현경은 환대란 타자에게 자리를 내어주는 것이라고 했다. 환대에 해당하는 영어 단어 Hospitality는 '우호'로도 번역되는데, 이런 번역을 통해 이 단어가 낯선 이들과 맺는 관계를 좀 더 분명히 할 수 있다. 도시가 잠재적인 친교의 공간을 만들어 준다고 할 때 누군가를 환대한다는 것은 그를 이 공간으로 들어오게 한다는 것이다. 이에 비추어 컨벤션센터나 호텔이 마이스 참가자들의 공식적인 만남의 장소라면 유니크 베뉴는 그들에게 '잊을 수 없는 체험'을 제공하는 은밀한 친교의 공간이다. 결국 도시가 마이스로 활성화되기를 원한다면 이렇게 독특한 친교의 공간들로 우호적인 친구들을 만들어 낼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유니크 베뉴가 지향해야 할 역할이자, 도시나 국가가 지원해주어야 할 부분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