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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형주 David Lee Aug 23. 2020

일본의 소부장 기업들은 어떻게 전시회를 활용할까?

일본 소재, 부품, 장비 기업들의 전시 마케팅을 파헤치다. 

왜 일본은 한국과 소부장 산업에서 무역 마찰을 일으키는가? 


2019년 일본의 전략물자 수출규제 이후 한국과 일본은 지난 1년간 전에 없던 긴장의 터널을 지나고 있다. 양국 정부 간 실무차원에서 지속적인 협의를 해오고 있지만 소재, 부품, 장비 산업에서의 무역 전쟁은 쉽게 끝날 것 같지 않다. 왜 일본은 소부장(소재, 부품, 장비) 산업에서 한국과의 무역 마찰을 일으키는가? 일본 경제의 핵심 경쟁력은 도요타도 파나소닉도 아닌 소부장 산업에 있기 때문이다. 


일본 경제산업성 자료에 따르면 일본이 세계 시장 점유율 60% 이상을 유지하고 있는 270개 제품 중 212개 제품이 소재, 부품이다. 한국과 중국의 추격으로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등 전자 산업에서 점유율은 다소 하락했지만 편광판, 유리기판, 포토레지스트, 광학 장비 같은 분야에서는 여전히 압도적인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다. 한국 제조업 성장의 이면에는 일본의 소부장 산업이 존재했다. 일본의 소부장 기업들이 한국 공급라인을 끊으면 한국 제조업에도 위기가 닥친다. 일본 정부 입장에서 소부장은 일본 경제뿐 아니라 안보에도 불가결한 핵심 분야인 것이다. 


본 소부장 기업들은 어떻게 전시회를 글로벌 마케팅에 활용했을까?


일본 소부장 기업들이 글로벌 No.1이 된 원인을 특유의 고다와리(こだわる, 집착)나 장인 정신에서만 찾는다면 그런 문화가 없는 한국 기업들은 절대로 그들을 이길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일본의 소부장 기업들 역시 여느 기업들과 마찬가지로 지난한 성공과 실패의 시간들을 겪으며 성장해 왔다. 특히 글로벌 전시회 무대에서 제품이나 기술력의 우수성을 보여주기 위한 다양한 시도들을 통해 세계 시장에서 인정을 받을 수 있었다. 일본의 소부장 기업들은 어떻게 전시회를 활용했을까? 


100만 분의 1g 기어를 선보인 주켄공업


플라스틱 사출 성형업계의 일인자 주켄 공업은 창업 초기 사출 성형 기술로 세상에서 가장 작은 기어를 만들어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하고 싶었다. 그래서 치바에서 열리는 국제 플라스틱 페어에 1만 분의 1g짜리 기어를 만들어 선보였다. 그런데 관람객들의 반응이 미지근했다. 그래서 주켄은 끊임없이 기술 개발에 매달려 10만 분의 1g, 100만 분의 1g짜리 기어를 만들어냈다. 개발비로만 2억 엔이 들었지만 주켄은 기술력을 인정받아 자동차 부품 대기업 덴소, 스위스 시계 브랜드 스와치에서 주문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세상에서 가장 작은 기어를 만든 회사로 소문이 나자 시장 진출의 본격적인 물꼬를 튼 것이다. 

주켄공업은 치바 국제 플라스틱 페어에서 쌀알 위에 올라가는 100만 분의 1g짜리 기어를 선보였다.


세상에서 가장 가는 실을 다룰 줄 아는 아마이케 합섬


데닐은 실의 두께를 표시하는 단위로, 보통의 옷감은 20 데닐이다. 1965년 창업한 아마이케 합섬은 어느 날 대기업으로부터 7 데닐로 직물을 만들어달라는 의뢰를 받고, 직조기를 새로 만드는 노력 끝에 7 데닐로 직물을 짜내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직조를 의뢰한 대기업이 도산하자 아마이케 합섬은 기술개발에 들어간 비용을 감당하지 못해 파산 직전까지 몰리게 된다. 고심 끝에 납품처를 찾지 않고 직접 브랜드를 만들어 생산하기로 한다. 세상에서 가장 얇고 가벼운 옷감이란 의미에서 '천사의 날개옷(天女の羽衣)'이라는 브랜드를 만들어 파리에서 열리는 프레미에르 비죵 파리 'Maison d' Exceptions'에 출전했다. 이 전시회를 통해 아마이케 합섬은 명품 의류 브랜드로부터 주문이 쇄도하기 시작한다. 웨딩복, 스카프용 고급 천으로 알려지게 된 아마이케는 백화점에 입점하는 고급 섬유 기업으로 자리 잡았고, 결국 5 데닐까지 직조할 수 있는 세계에서 가장 가는 실을 다룰 줄 아는 유일한 기업이 되었다. 

파리 패션 전시회에서 자체 브랜드로 도약의 기회를 얻은 아마이케 합섬


단조 휠로 페라리를 감동시킨 와시마이야-BBS


와시마이야는 방적기계에 들어가는 실패를 만드는 회사였다. 실패는 30인치 크기의 대형 금속부품으로 100톤 이상의 당기는 힘을 견뎌야 한다. 경쟁사는 녹인 금속을 틀에 부어 부품을 만드는 주조 방식으로 실패를 만들었는데 와시마이야는 두드려 만드는 단조 방식을 적용하여 더 강하고 가벼운 실패를 만드는 데 성공한다. 


실패를 만들며 얻은 단조기술로 와시마이야는 그 후 독일의 자동차 휠 업체 BBS와 업무 제휴를 맺게 된다. BBS는 와시마이야의 단조기술을 활용해 가볍고 탄성이 좋은 휠을 개발했고 미국 최대의 자동차 박람회인 SEMA Show에서 혁신 대상을 받게 된다. 

와시마이야가 또 한 번 세계적인 휠 제작업체로 명성을 얻게 된 것은 F1덕분이다. 페라리는 F1 자동차 경주대회에 출전하며 마그네슘으로 휠을 만들어 자동차의 무게를 줄이고 싶었다. 기존 기술로 휠 가공이 어렵게 된 페라리는 와시마이야를 통해 당초 10% 감량 목표를 뛰어넘어 휠 무게를 20%까지 줄이게 된다. 1994년 슈마허가 와사마이야의 마그네슘 휠을 장착한 머신으로 우승을 차지하면서 와시마이야도 세계 정상에 섰고 2021년에는 F1에 18인치 휠을 독점으로 공급할 예정이다. 

와시마이야의 단조 기술은 SEAM쇼와 F1 자동차 대회를 통해 세계 시장에서 인정을 받았다.


한국의 소부장 산업은 어떻게 알려질 것인가?


역설적이지만 2019년 일본의 수출 규제는 한국의 소부장 산업에 새로운 기회를 만들어 준 계기가 되었다. 불과 1년 만에 일본의 수출 규제를 피해 자체 경쟁력을 갖춘 한국의 소부장 기업들이 늘어가고 있다. 2000년대 초반 삼성이 CES 전시회를 통해 소니와의 경쟁에서 품질을 넘어 브랜딩의 경쟁에서 이긴 것처럼, 이제는 한국 소부장 기업들이 글로벌 전시회에서 기술뿐 아니라 브랜딩 경쟁에서 일본을 이길 준비를 해야 한다. 우리의 소재, 부품, 장비 기술이 일본을 뛰어넘었다는 것을 전 세계의 바이어가 알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포스트 한일경제전쟁'의 저자 문준선은 디지털이 이끄는 4차 산업혁명과 일본의 수출 규제가 한국 소부장 산업에 추격을 넘어 추월의 주도권을 가져올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했다. 일본의 기업문화에 고다와리와 장인 정신이 있다면, 한국의 기업에겐 유에서 무를 창조하는 도전 정신과 IT 기술이 있다. 글로벌 마케팅 환경이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이동하는 이 시점에 한국의 제조업이 디지털과 만난다면 일본보다 브랜딩의 경쟁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다. 

경험컨대 위기는 늘 새로운 기회를 만나게 해주는 안내자였다. 한국의 소부장 기업들이 일본을 뛰어넘어 전 세계의 히든 챔피언으로 도약할 날이 분명히 오게 될 것이다. 


*참고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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