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 마리나 베이와 아코르 호텔의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만나다.
지난 9월 22일 한국마이스협회가 주최한 '아태 마이스 비즈니스 페스티벌'의 네 번째 세션 주제는 '뉴 노멀 시대의 마이스 베뉴 변화'였다. 여기서 나는 뜻하지 않은 좌장을 맡아 세션을 진행하게 되었는데, 싱가포르 마리나 베이(이하 마리나 베이)와 아코르 호텔 아시아(이하 아코르 호텔)의 VP들과 함께 코로나 팬데믹 이후 베뉴의 비즈니스 모델에 대해 깊이 있는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 비록 온라인 화상 회의로 진행되었지만 그들이 제시한 비즈니스 모델은 한국의 컨벤션센터나 복합리조트, 호텔 등에도 똑같이 적용될 수 있는 주제였기에 현장에서도 많은 질문들이 오고 갔다. 마리나 베이와 아코르 호텔이 제시한 새로운 베뉴 비즈니스 모델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마리나 베이는 VR, AR, 홀로그램 등의 기술을 활용해 가상공간을 구현할 수 있는 스튜디오(Hybrid Broadcast Studio)를 구축하였다. 오프라인과 온라인 공간을 동시에 활용하여 마이스 참가자들에게 시공간을 넘어선 극도의 몰입감을 제공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마리나 베이의 목적이었다. 설치 비용만 한화로 약 20억 원이 소요된 이 스튜디오가 과연 그 값어치를 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순간적으로 들었지만, 베뉴가 제공하는 새로운 플랫폼은 결국 마이스 주최자들에게 새로운 형태의 창조적인 이벤트를 기획할 수 있는 장을 제공할 것이라는 생각이 바로 뒤를 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온라인으로 접속만 하면 참가자들을 내 방으로 불러들일 수 있는 시대에, 단순히 정보전달이나 네트워크 구축에만 머무르는 마이스 행사로는 더 이상 비즈니스를 할 수 없다는 판단이 마리나 베이에게도 들었던 것이고, 이런 변화된 환경에 대응하기 위해 베뉴가 선제적으로 창조적 플랫폼을 구축함으로써 마이스 기획자들의 경쟁력을 함께 끌어올릴 수 있는 전략을 수립, 실행한 것이다.
마리나 베이의 뒤를 이어 아코르 호텔은 변화된 환경에 맞추어 베뉴의 수익 모델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를 공유했다. 아코르 호텔 역시 가상공간과 같은 온라인 플랫폼이 호텔 운영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갖고 있었고, 결국 마이스 참가자들에게 '그곳'에 가야만 하는 특별한 경험 (Unique Experience)를 주지 않으면 베뉴 비즈니스가 위기를 맞을 것이라고 했다.
또한 코로나 팬데믹이 비즈니스 여행의 감소를 촉발하여 앞으로 글로벌 행사보다 small & local events (작은 로컬 이벤트들)이 더욱 활발해질 것이라는 예측과 함께, 여기에 대응하기 위한 베뉴의 가격 정책 이슈를 제시했다. 기존의 대형 호텔이나 컨벤션센터들의 대관 방식이나 대관료 책정 방식은 코로나 이후의 변화된 환경에 맞지 않을 것이기에, 새롭게 출현하는 로컬 행사의 형태나 규모에 맞추어 베뉴의 대관 방식 및 Pricing Model이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베뉴 그 자체의 생존을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마이스 기획자들과의 지속 가능한 협력과 공존을 위해서도 필요한 것이라는 점에서 특히 깊은 시사점을 제공한다.
마리나 베이의 가상공간 구축과 아코르 호텔이 제시한 새로운 가격 모델은 코로나 이후 변화된 마이스 환경에 대응하기 위한 경쟁 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 한 가지 고민해야 할 부분이 생긴다. 베뉴가 기존의 오프라인 공간이라는 '제품'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가상공간이란 '신제품'을 판매하는 것은 기존 제품에 더해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는 파괴적 혁신(Disruptive innovation)인가, 아니면 기존 시장을 빼앗는 자기 잠식(Cannibalization)인가 하는 문제이다.
코로나 이후에도 온라인과 결합된 마이스 비즈니스가 지속될 것이라는 가정이 맞다면 베뉴의 가상공간 구축은 분명 이 두 가지 화두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파괴적 혁신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가상공간은 분명 기존 오프라인 공간 판매를 넘어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게 될 것이다. 마리나 베이의 하이브리드 스튜디오는 비단 마이스 주최자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글로벌 기업들의 자체 콘퍼런스나 직원 교육, 또는 제품 쇼케이스나 방송 촬영, 하이브리드 콘서트 등의 또 다른 수익모델을 창출할 수 있다. 더구나 VR, AR 테크놀로지와 결합하여 IT 기업들이 신기술을 시험하는 테스트 베드로서의 역할도 가능하다. 이 모델이 성공한다면 마리나 베이는 더 이상 마이스 시설이 아니라 앞서 미래를 체험케 하는 경험적 베뉴로서 포지셔닝하게 될 것이다.
반면 자기 잠식이란 관점에서 보면 가상공간은 오프라인 공간을 대체하는 수단으로 존재하기 때문에 기존 비즈니스를 빼앗는 현상이 일어날 수 있다. 테크놀로지와 결합된 마이스는 기존의 오프라인 행사를 촌스럽게 만들 수 있고, 새로운 마이스 기업들은 더 이상 오프라인 공간을 쓰지 않게 된다. 이럴 경우 기존의 오프라인 공간이 유휴화 되고, 이 공간들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하는 또 다른 문제점들이 생길 수 있다. 나는 이번 아태 마이스 페스티벌의 행사 장소가 SETEC 1 전시장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온라인으로 전환됨에 따라 전시장의 30%만 사용하는 생경한 광경을 몸소 체험했다.
가상공간의 구현은 분명 베뉴에게 새로운 비즈니스를 가능케 할 것이다. 한국의 컨벤션센터들도 이미 온라인 화상회의 솔루션을 대부분 구축하고 있으며 나아가 마리나 베이와 같은 가상공간 구축도 염두에 둘 것이다. 그러나 새로운 모델은 새로운 이슈를 던질 수밖에 없다. 오프라인 공간이 온라인과 결합할 때 기존 시장과 어떻게 조화롭게 균형을 맞추고 또 거기에 맞는 가격정책과 수익 모델을 만들 수 있느냐가 새로운 베뉴 비즈니스 모델 성공에 관건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