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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형주 David Lee Apr 22. 2021

이건희 컬렉션으로 한국의 아트바젤을 만들자.

문화콘텐츠는 관람보다 교류의 수단이어야 한다.

감정가액만 1조 원이 넘는 고(故)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이건희 컬렉션'이 화제다. 모네, 피카소, 샤갈을 비롯한 세계적인 미술품과 문화재가 곧 국립현대미술관과 국립중앙박물관 등에 기증될 예정이라고 한다. 기업인의 문화 사랑이 어제오늘 일이 아니지만, '이건희 컬렉션'이 이토록 주목을 받는 이유는 소장하고 있는 예술품이 루브르나 테이트 모던의 그것과 비교해도 손색없기 때문이다. 


해외로 유출되지 않고 국내에 기증되어 보존되는 것은 매우 다행스러운 일이지만, 그저 간직하고 관람하는 작품이 아니라 이를 문화 교류의 수단이자 또 다른 경제 가치 창출 수단으로 활용하면 어떨까? 나는 '이건희 컬렉션'을 활용하여 한국의 아트바젤을 만들어 볼 것을 제안한다. 


아트바젤의 기원


각국의 수많은 아트페어가 있지만, 유독 아트바젤이 각광받는 것은 한 도시의 미술 전시회를 넘어 세계적 문화 예술 콘텐츠의 거래가 일어나고 도시가 전시회를 통해 경제적 파급효과를 창출하기 때문이다. 아트바젤은 1970년 피카소가 스위스 바젤에 남긴 두 점의 작품을 기반으로 시작된 아트페어이다. 세계적 작품들이 사고팔리는 예술 무역전시회로 발전하였으며 바젤을 넘어 마이애미, 홍콩 등 세계 시장으로 진출한 독보적인 전시회이다. 최근에는 온라인 전시회 OVR(Online Viewing Room)을 통해 예술 전시회의 새로운 디지털 플랫폼 모델을 제시하기도 하였다. 

아트바젤 in 홍콩 (출처: theartnewspaper.com)

'이건희 컬렉션'으로 아트페어를 만드는 4가지 방법


아트페어를 기획함에 있어 '이건희 컬렉션'이 매력적인 이유는 그야말로 앵커(anchor) 콘텐츠로 그 역할을 톡톡히 하기 때문이다. 그 어디서도 볼 수 없었던 국내 유수의 작가들과 함께 세계적 작품들을 감상하고 거래할 수 있는 아트페어라면 그 누구라도 가보고 싶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건희 컬렉션'으로 한국의 아트바젤을 만드는 방법은 무엇일까? 아래의 4가지 방법을 통해 기존과는 차원이 다른 아트페어를 한국에서도 만들 수 있다. 


1. 새로운 아트페어 기획

새로운 콘텐츠에 대한 야망이 있는 전시기획자라면 '이건희 컬렉션'으로 세상에 없던 새로운 아트페어를 만들어보고 싶지 않을까? 모네의 수련과 겸재 정선의 인왕제색도를 비롯하여 단 한 번도 공개된 적 없던 작품들을 아트페어를 통해 선보이고, 국내외 작가들의 전시와 포럼, 어워드, 네트워크 이벤트가 어우러진 글로벌 아트페어가 개최된다면 기존의 그 어떤 마이스 행사보다 엄청난 파급력을 지닌 이벤트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 


2. 기존 아트페어 확대

이미 한국에는 다양한 아트페어가 개최되고 있다. 대표적으로 코엑스에서 매년 10월에 열리는 KIAF가 있는데, 이 행사 역시 한국을 넘어 세계적인 예술 무역 전시회로 발전하였다. 그러나 최근 들어 외국계 아트페어 관련 기업들이 정치적으로 불안한 홍콩 시장을 대신할 아시아 시장으로 한국을 꼽고 있기 때문에 KIAF가 도약이냐 쇠퇴냐의 기로에 놓여 있는 실정이다. '이건희 컬렉션'과 결합한 KIAF는 기존 전시회를 넘어 새로운 예술가 및 예술 플랫폼 기반 스타트업, 그리고 VC 투자자들의 네트워킹의 장이자 디지털과 결합한 아트테인먼트 세대들을 위한 또 다른 놀이터로 도약할 수 있을 것이다.  


3. 아트바젤 in 코리아 유치

어설프게 아트바젤을 따라 할 거라면 차라리 아트바젤을 한국으로 가져오자.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홍콩은 중국과의 갈등으로 정치적으로 매우 불안한 상황이다. 이미 외국계 전시업체들이 홍콩을 대신할 시장을 찾고 있으며 한국은 문화 수준이나 경제적 수준으로 볼 때 매우 유력한 아시아의 핵심 예술 시장이다. 이미 수년 전부터 아트바젤을 한국으로 유치하려는 움직임이 있었지만 무산되었다. 지금이야말로 홍콩에서 개최되고 있는 아트바젤을 한국으로 유치하기에 매우 좋은 시점이다. 무작정 아트바젤을 유치하는 것이 아니라 '이건희 컬렉션'을 통해 기존과는 다른 한국만의 독창적인 '아트바젤 in 코리아'를 기획, 개최할 수 있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문화예술 관련 정부/지자체나 예술단체, 컨벤션센터 관계자가 있다면 적극적으로 아트바젤측에 제안할 것을 바라는 바이다. 


4. 전국 로컬 미술관에 아트페어 분산 개최

삼성이 기증할 '이건희 컬렉션'은 한 곳에 모두 기부하는 것이 아니라 미술품과 문화재를 작가의 출신 지역이나 출토 지역에 따라 지방별로 배분한다고 한다. 경주 지역에서 발견된 문화재는 경주 박물관에 기증하는 식이다. 국립현대미술관이나 국립중앙박물관이 중심이 되어 전국의 로컬 미술관에 작품들을 분산하여 동시에 아트페어를 개최한다면 어떨까? 또는 한 도시의 컨벤션센터와 박물관, 미술관 같은 유니크 베뉴가 서로 협업하여 메인 전시회와 전야제, 오찬, 포럼 같은 행사를 분산 개최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아트페어를 보기 위해 반드시 그 도시에 방문해야 하고, 방문자는 2-3일을 체류하며 다양한 공간에서 경제 문화활동을 펼치게 된다. 이는 결국 방문자의 체류시간을 늘리면서 자연스레 지출을 유도하는 경제효과를 창출할 수 있다. 도시가 마이스 산업을 육성하는 목적이 바로 여기에 있다. 매년 도시를 순회하며 아트페어를 한 곳이 아니라 여러 베뉴를 연결하여 분산 개최한다면 침체된 로컬 문화와 경제 활성화에 도움을 줄 수 있다. 


문화콘텐츠는 관람이 아니라 교류의 수단이어야 한다.


사람들이 전시회에 참가하는 목적은 이제 더 이상 거래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온라인으로 모든 것이 가능한 시대에, 전시회는 반드시 그곳에 가야만 하는 이유를 만들어야 한다. '이건희 컬렉션'은 단순히 보전되고 관람되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 도시, 기업 간 교류와 경제발전의 수단으로 활용되어야 한다. 그 어디서도 볼 수 없었던 모네의 수련이 이건희 컬렉션을 통해, 그리고 그 컬렉션을 품은 전시회를 통해 공개된다면 사람들은 반드시, 그곳을 가야만 한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오프라인 공간은 독특한 경험의 공간으로 진화되어야만 온라인과의 경쟁에서 차별화할 수 있다. 그저 잘 간직하는 콘텐츠가 아니라 사람들에게 경험과 교류의 수단으로 활용되어 새로운 영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을 때, 그 문화 콘텐츠는 생명력을 잃지 않을 것이다. 이것이 '이건희 컬렉션'으로 한국의 아트바젤을 만들어야 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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