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을 제대로 감상하는 법

1 가정 + 1 연주자 매칭 운동을 벌이자.

by 이형주 David Lee

누군가 클래식 음악을 어떻게 듣는 것이 좋은 것인가라고 물어본다면, 나는 주저 없이 이렇게 말하겠다.

"지금 당장 스피커를 끄고, 악기의 진동을 직접 느껴보라."


아무리 수억원 대를 넘나드는 스피커가 있다한들, 실제 눈앞에서 연주하는 악기의 원음을 넘어서는 감동을 줄 수 있는 기계는 없다. 연주자의 표정과 호흡, 그리고 음악에 실려 함께 전달되는 악기의 진동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는 기회가 단 한 번이라도 있다면 스피커 따위는 아무래도 좋은 것이다.


클래식이 소외된 이유


지금 이 시대에 우리가 이런 연주의 감동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왜일까? 그것은 분명 연주자와 객석 간의 거리가 멀어지기 시작한 뒤부터였다. 원래 클래식은 집에서 듣던 가정음악이었다. 과거 유럽의 살롱 음악이란 뜻 자체가 거실에서 듣던 음악이란 의미였으며, 한국의 국악도 집에서 병풍을 치고 듣던 가정 음악이었다. 첼로 건 가야금이건 현의 떨림이 심장을 후벼 파는 그 절절함을 느끼지 못한다면 클래식의 진정한 아름다움을 느끼지 못한 것이다.

800px-Julius_Schmid_Schubertiade.jpg 살롱 음악 (출처: www.hud.ac.uk)
국악과 한옥 (출처: www.theviewers.co.kr)

그러나 이러한 실내악은 산업사회 이후로 공연 시장이 대형화되면서 사라졌다. 대극장 위주의 공연은 실제 클래식의 아름다움을 전달하기에 너무 컸다. 연주자의 표정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나무 악기가 내뿜는 그 울림판의 진동을 전달하기엔 관객과의 거리가 너무 멀다. 악기의 진동은 공기 중에 사라지고 멜로디의 조합만이 귀에 전달될 뿐이다. 그러다 보니 이제 클래식도 마치 아이돌 공연처럼 소위 인기 있는 대형 기획사의 연주자들만 살아남을 뿐 매년 수천 명씩 졸업하는 음대의 연주 전공자들은 소리 없이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대극장에서의 클래식 (출처: 도쿄 산토리홀)


1 가정 + 1 연주자 매칭 운동을 벌이자.


어떻게 하면 진정한 클래식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을까? 그것은 예전 살롱 음악의 본질을 살려 집에서도 클래식 연주를 들을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정부에서 가정마다 연주자를 한 명씩 매칭 해주는 프로그램을 도입한다면 연주자와 가정 모두에게 행복한 기억을 만들어 줄 수 있다. 바이올린, 첼로, 비올라, 피아노, 가야금, 거문고 등 우리나라에는 수십 년간 악기 하나만을 전문으로 공부한 수만 명의 연주자들이 있다. 그리고 매년 수천 명씩 음대를 졸업한 전문 연주자들이 탄생한다. 이러한 연주자를 가정과 연결해줄 수 있다면 연주 시장 활성화 및 경력단절 여성 연주자들의 일자리 창출 등 긍정적인 효과들이 쏟아질 것이다. 뿐만 아니라 가정은 집에서 원하는 시간에 가족, 친구들과 함께 음악의 진정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공연장이 될 것이다.


혹자는 어떻게 집에서 이런 연주회가 가능하겠냐고, 대부분이 아파트 생활인 한국에서 가능하겠냐고 물어보지만 이미 전 세계적으로 하우스 콘서트 비즈니스가 성공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Sofa concerts' 나 'Group muse', 그리고 한국의 '홈콘서트'는 모두 가정 음악 서비스 시장을 탄생시켜 지금도 활발히 운영 중이다. 이른 아침이나 늦은 저녁시간을 피하고 연주 시간을 지정할 수 있으며 에어비앤비 등과 결합해 여행지에서도 지역의 연주자들과 매칭해 연주 콘텐츠를 같이 들을 수 있는 프로그램도 생겨나고 있다.

하우스 콘서트 (출처: www.groupmuse.com)

연주자는 마음의 전담의다.


음악이, 특히 클래식이 소수 계층에게만 관심받았던 이유는 누구나 들을 수 있던 음악이 대형화, 자본화되며 대중에게서 멀어졌기 때문이다. 음악의 역사는 인류의 역사와 더불어 수천 년을 거슬러 올라가지만 대형 공연 시장이 생겨난 건 불과 1-2백 년 전이다. 모차르트가 어떻고, 베토벤이 어떻고 하는 클래식 이야기는 잠시 접어두자. 음악은 머리로, 귀로 듣는 것이 아니라 온몸으로 들을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솔로, 트리오, 콰르텟이 전달하는 연주의 감동을 알게 되고, 자연스레 클래식 시장이 대중화될 것이다.


의사가 내 몸을 치료하는 전담의라면 연주자는 내 마음을 치료하는 전담의다. 이제 가정마다 마음의 전담의를 정해놓고 음악의 본질을 느낄 수 있게 하자. 가정과 사회가 아름답게 변화하는 것은 작은 시작으로부터 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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