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뉴의 경쟁력을 브랜딩 하라.
Our Space, Your Canvas
좋은 글은 첫 문장만 읽어도 느낌이 온다. 좋은 공간도 그러하다. 테이트 모던이 바로 그런 공간이다.
우연히 테이트 모던의 홈페이지에서 비즈니스 이벤트 공간을 찾던 중, 저 문장이 눈에 들어왔다. Our Space, Your Canvas - 우리의 공간이 당신의 캔버스라는 단 한 줄의 메시지에서 난 바로 화면을 덮었다. 더 이상 무슨 설명이 필요하겠는가.
런던의 화력발전소를 현대적 미술관으로 재탄생시킨, 도시 재생의 상징과도 같은 이곳은 단순히 미술관을 넘어 기업행사나 신제품 발표회 같은 비즈니스 이벤트 공간으로도 유명하다. 미술관이라는 우리의 공간을 당신의 캔버스처럼 무한한 상상력으로 자유롭게 색칠하라는 저 문장은, 베뉴가 비즈니스 이벤트 공간으로 어떻게 브랜딩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너무나도 명확한 사례이다.
얼핏 보기엔 간단해 보여도 테이트 모던처럼 간결하고도 명확한 슬로건을 만들기 위해선 지난한 노력이 필요하다. 그러나 일견 복잡해 보이는 슬로건 만들기도 베뉴의 경쟁력을 파악하면 쉽게 만들 수 있다. 그렇다면 베뉴의 경쟁력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베뉴 경쟁력을 파악하는 방법은 고객이 우리 베뉴를 좋아하는 이유를 파악하면 된다. 어떤 공간이건 사람들이 몰리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행사가 열리는 베뉴 역시도 마찬가지다. 그 이유를 알지 못하면 대게 아래와 같이 어떤 공간에 대입을 해도 다 말이 되는, 그야말로 식상한 슬로건이 나올 수밖에 없다.
"잊을 수 없는 경험을 선사합니다."
"특별한 순간을 만들어드립니다."
"여기서 꿈이 이루어집니다."
위와 같이 어느 베뉴에 대입해도 다 말이 되는 슬로건은 베뉴만의 경쟁력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그저 회의 테이블에서 만들어질 경우 생겨난다. 어느 베뉴가 잊을 수 없는 경험을 선사하여 특별한 순간을 만들어 꿈이 이루어지도록 돕지 않겠는가? 이런 실수를 막기 위해선 반드시 베뉴만의 경쟁력, 즉 고객이 좋아하는 이유를 파악해야 하는데 그 경쟁력은 대게 아래의 3가지 범주(S-E-R)로 분석된다.
⓵ S(Subject): 베뉴 창업자의 경영철학, 조직 운영 노하우 등 경영 주체 관점
베뉴 경영자가 수십 년간 공간을 일구고 가꾸어 방문자들이 베뉴의 조성 스토리나 운영 철학 등에 깊은 호감과 관심을 표현하는 경우가 있다. 이러한 베뉴들은 대게 창업자가 직접 베뉴 가이드를 한다거나 교육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관련 포럼을 만드는 등 그 경영 주체(Subject)의 경쟁력을 '확장'하는 프로그램을 만드는 경우가 많다.
제주의 생각하는 정원이 이런 S적 관점의 베뉴이다. 생각하는 정원은 성범영 원장이 약 40년 전 서울에서 내려와 돌하나, 나무하나를 정성스레 옮겨 심으며 아무것도 없는 황무지를 개척하여 만든 정원이다. 지금 이곳은 중국 국가 주석이나 외국 대사 등 글로벌 VIP들이 가장 최애 하는 공간으로 연로하신 성범영 원장이 지금도 직접 베뉴 곳곳을 안내하며 베뉴만의 스토리와 운영 철학 등을 전파한다. 또한 직접 운영 철학을 책으로 발간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베뉴의 생각을 콘텐츠로 확산하였다.
이곳의 슬로건은 '생각하는 정원 - Spirited Garden', 베뉴 브랜드 그 자체이다. 베뉴 곳곳에 창조와 예술, 철학이 융합된 정원에서의 깨달음과 생각을 정리한 설명글이 붙어 있는데, 방문객들은 이러한 메시지를 보며 고요한 정원에서 사색의 기쁨을 누린다. 따라서 방문객들은 왜 이곳의 이름이 생각하는 정원인지를 자연스레 깨닫는다. 생각하는 정원은 베뉴의 브랜드 그 자체가 슬로건으로서 명확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사례이다.
⓶ E(Environment): 베뉴를 둘러싼 자연, 지역 관광, 산업 단지 등 환경적 관점
베뉴 그 자체보다 베뉴를 둘러싼 자연이나 지역 관광 인프라, 산업 단지 등 외부 환경의 도움을 받아 베뉴가 경쟁력을 확보한 경우이다. 이러한 E 관점의 경쟁력은 베뉴를 주변 환경과 더불어 더욱 빛이 나게 만들어 준다. 대표적인 곳이 시카고 뮤지엄 캠퍼스이다.
시카고 뮤지엄 캠퍼스는 Field Museum, Shedd Aquarium, Adler Planetarium 등 자연사 박물관, 아쿠아리움, 천문대를 함께 묶은 곳으로 이곳의 슬로건은 Intelligent Entertainment_지적(知的) 즐거움이다. 왜 이곳을 지적 즐거움의 공간이라 부를까? 그 이유는 시카고 뮤지엄 캠퍼스를 둘러싼 환경을 보면 알 수 있다.
위 그림은 시카고 뮤지엄 캠퍼스와 인접한 주요 베뉴들을 표시한 것이다. 자동차로 불과 3-5분 거리 내에 시카고 베어스 야구팀의 홈구장인 솔저필드 스타디움과 미국 최대의 무역 전시장인 맥코믹 플레이스가 있다. 솔저필드 스타디움은 다양한 스포츠 이벤트가 열려 역동적인 체험을 줄 수 있고 맥코믹 플레이스는 다양한 전시회와 컨벤션이 열리는 곳으로 총 전시 면적이 약 25만 sqm로 킨텍스의 2.5배에 달한다. 치열한 비즈니스 이벤트가 열리는 베뉴는 늘 긴장의 끈을 놓쳐서는 안 될 경쟁의 공간이다. 이렇듯 역동적 체험과 긴장이 감도는 비즈니스 공간이 주변을 둘러싼 환경임을 감안할 때 시카고 뮤지엄 캠퍼스는 다른 공간에서는 줄 수 없는 고유의 영감과 지혜를 경험하는 지적 즐거움을 주는 공간, 즉 Intelligent Entertainment가 가능한 것이다.
이렇게 주변 환경에 비추어 차별적 경쟁력을 보유한 베뉴라면 주변 베뉴와의 '패키지' 프로그램을 기획하여 지역의 다양한 공간을 함께 느낄 수 있도록 하는 기획이 필요하다. 시카고 뮤지엄 캠퍼스 역시 시카고의 맥코믹 플레이스와 솔저필드 스타디움, 공연장 등 주변 베뉴와의 협력을 통해 방문자들에게 잊지 못할 경험을 제공하고 있다.
⓷ R(Resource): 베뉴가 보유하고 있는 건축물, 전시 콘텐츠, F&B 등 자원적 관점
세 번째 베뉴의 경쟁력은 그 베뉴가 보유하고 있는 건축물이나 전시 콘텐츠 또는 F&B등 보유 자원을 고객들이 좋아할 경우이다. 이 때는 그 자원을 직접 '체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가동하면 된다. 베뉴의 자원을 활용하여 슬로건을 만든 대표적 베뉴는 이태리의 럭셔리 스포츠카 브랜드인 페라리 뮤지엄이다.
페라리 뮤지엄은 이태리 마라넬로에 위치한 페라리의 박물관이다. 이곳은 페라리의 역사와 현재, 미래를 볼 수 있는 공간인데 역시 이곳도 다양한 비즈니스 이벤트를 위한 베뉴로도 활용되고 있다. 특히 비즈니스 이벤트 공간으로서 페라리 뮤지엄의 슬로건은 Turn Every Meeting into an Event - 모든 비즈니스 미팅을 이벤트로 바꾸는 곳이다.
이 슬로건이 가능한 이유는 페라리 뮤지엄에서 열리는 비즈니스 미팅의 참가자들은 페라리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체험할 수 있는 다양한 자동차 콘텐츠와 개인화된 가이드 투어 등 오직 참가자들만을 위한 특별한 체험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곳에서의 미팅은 모두 잊지 못할 특별한 이벤트가 되는 것이다. 이것은 페라리만의 자동차 콘텐츠 자원을 활용하여 베뉴 경쟁력으로 활용한 사례이다.
서두에서 설명한 테이트 모던의 슬로건 Our Space, Your Canvas 역시 베뉴의 공간, 즉 건축적 자원을 경쟁력으로 활용한 사례이다. 미술관이란 공간을 캔버스에 비유하여 비즈니스 이벤트 참가자들이 창조적 미팅을 할 수 있는 곳이란 것을 명료하게 표현했다.
위에서 보여준 슬로건 만들기는 모두 베뉴의 경쟁력을 활용한 사례들이다. S(경영 주체)-E(외부 환경)-R(보유 자원) 등 경쟁력의 원천이 무엇인가를 잘 파악한다면 슬로건을 통해 그 경쟁력의 의미를 확장할 수 있다.
모든 공간이 고객의 여가 시간을 뺏는 경쟁임을 감안할 때, 베뉴의 브랜드를 살리는 슬로건은 매우 중요하다. 단 하나의 문장으로 그 공간을 말할 수 있다면, 이는 그 어떤 홍보 자료나 영상보다도 명확하게 고객들의 마음속을 파고들 것이다. 때론 한 문장이 두꺼운 홍보 브로셔보다 나을 때가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