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저널 2017 July-August : 퍼블릭 전시회의 진화
‘전시회가 왜 개인에게 눈을 돌렸나’라는 질문에 결론적으로 답을 한다면, 전시회는 원래부터 개인 – 객체로서의 인간 -을 위한 플랫폼이었다. B2B 이건 B2C 이건 이러한 구분은 비즈니스 품목이 산업재이냐 소비재이냐의 문제이지 인간이 필요로 하지 않는 품목을 전시장에서 거래하거나 정보를 교환하는 전시회는 이 세상 어디에도 없는 것이다.
다만 개인들을 위한 소비재 품목 전시회가 늘었다는 점은 지난 10여 년간 변화해온 한국 사회의 2가지 측면에서 발견할 수 있다. 첫 번째는 소비자, 즉 한국인들의 라이프 스타일의 변화에 따른 것이다. 두 번째는 전시회를 공급하는 공급자, 즉 전시 주최자들의 생존을 위한 변화에서 찾을 수 있다.
최근 10년간 한국 사회의 급격한 변화 중 하나는 바로 1인 가구의 증가이다. 국내 1인가구는 전체의 약 27%를 차지하여 4가구 중 1가구가 1인 가구이다. 이런 1인 가구의 증가는 삶의 패턴 역시 바꾸어 놓았다. 혼밥, 혼술을 즐기고 전월세가 증가하며, 여행, 캠핑을 선호하고 YOLO (한번뿐인 인생을 마음껏 즐기다 가겠다는 신조어)족들이 출현했다. ‘나 혼자 산다’ ‘혼술남녀’ ‘미운 우리 새끼’와 같은 TV 프로그램을 보더라도 이러한 트렌드는 앞으로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이는 다시 자신만의 아이템으로 삶을 디자인하려는 세대가 주된 소비층으로 부상하는 결과를 도출하였다. 결국 전시회가 수익을 창출하기 위해서는 이런 트렌드에 부합하는 소비재 전시회를 기획하여야만 했으며 카페쇼, 캠핑전, 베이비페어, 여행/유학박람회, 방송영상기자재전시회 등 최근 10년간 급속히 성장한 소비재 전시회가 바로 이런 세대의 증가와 맥을 같이 한다.
지난 3월 한남동의 디뮤지엄에서 열렸던 '유스-청춘의 열병' 전시회는 아예 처음
부터 인스타그램을 즐기는 20대층을 겨냥하여 전시회를 기획하였다. 젊음의 상징인 타투와 누드를 키워드로, 화려하고 강렬한 색채의 작품을 전시하여 찾는 이의 스마트폰을 겨냥한 전시회로 개막 3주 만에 5만 명이 방문하는 성공을 거두었다.
이뿐 아니라 최근에 개최되는 소비재 전시회들은 단순히 부스 배치나 세미나장 설치만을 고려하지 않는다. 리빙 디자인 페어나 아트페어 등은 아예 기본부스를 옥타늄 소재가 아닌 목재를 사용하여 정서적 느낌을 강조한다. 또한 쇼룸이나 포토월 등의 제작을 통해 전시회를 공유하고자 하는 관람객의 취향을 적극 수용한다. 전시회의 방문 목적이 제품이나 서비스를 구매하는 것도 있지만 최근에는 전시회 방문 자체를 하나의 놀이처럼 생각하기 때문에 인스타그램이나 페이스북 등 SNS 노출에 대한 욕구 역시 트렌디한 소비재 전시회의 확대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소비자 관점의 마지막 변화는 바로 ‘아날로그’가 돌아온다는 것이다. 데이비드 색스는 그의 책 ‘아날로그의 반격’에서 포스트 디지털 세상을 추적하였다. 바로 LP, 필름, 종이, 오프라인 매장의 증가와 같은 디지털과 정 반대되는 아날로그의 반격이 시작되었다고 하는 것이다. 이는 단순히 디지털에 대한 식상함이나 옛것에 대한 그리움으로 과거를 지향하는 것이 아니다. 역설적이게도 지금의 주 소비자인 20대는 태어날 때부터 세상이 디지털이었기 때문에 LP나 필름 카메라, 몰스킨 노트와 같은 물건이 ‘쿨’하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즉 아날로그가 디지털 이후의 세상에 다시 회귀하는 현상이 나타나게 된다.
이에 대한 반증 역시 소비재 전시회의 부활에서 볼 수 있다. 최근 끝난 2017 서울국제도서전은 근래 들어 가장 성공적인 전시회중의 하나로 언론에서 주목받았다. 작년까지만 해도 부족한 참가업체와 출판사들의 외면, 전자책 시장 증대로 출판전은 매우 의기소침한 상태였다. 그러나 올해는 동네서점의 부활, 작지만 특색 있는 전문 출판시장의 확대, 글쓰기 열풍, 전자책의 소멸과 종이책의 영속성이 살아나면서 5일간 20만 명, 지난해의 두 배가 넘는 관람객이 찾는 역대 최대 규모의 흥행을 기록했다.
정부가 경제 인프라를 구축하여 수요를 촉진시키는 한국의 정부 주도형 경제 성장 모델은 전시장 공급을 확대하여 전시 수요를 촉발시키는 전시산업 발전정책에 그대로 적용되었다. 이런 논리를 뒷받침했던 명분, 즉 ‘전시산업의 국제화’는 그러나 불행하게도 전략과 실행의 불일치를 가져왔다. 한국 전시회는 바이어가 오지 않는다. 바이어가 한국에 와서 전시회를 보는데 걸리는 시간은 불과 반나절이 채 안 걸린다. 전시회가 끝나도 제대로 된 비즈니스 투어를 할 프로그램도 없다. 바이어이기 이전에 해외에서 온 손님을 제대로 맞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면서도 10년째 전시회의 국제화를 외치는 건 시야가 좁은 것인지, 별 관심이 없는 것인지 솔직히 파악하기가 힘들다.
전시 주최자는 이제 바이어 유치에 그다지 힘을 쏟지 않는다. 한국 소비자는 전시회에서 좋은 제품을 저렴하게 사려는 목적으로 오는 경향이 강하다. 소비재 전시의 증가는 전시주최자에겐 생존하기 위한 전략이자 내수를 기반으로 참관객 확대를 통해 참가업체의 거래를 활발히 유도하는 좋은 전략이다.
올해 초 정식으로 세계 제1의 전시 그룹 Reed Exhibition의 한국 지사가 설립됐다. Reed는 전 세계적으로 1조 8백억 이상의 매출을 올리며 아시아 시장에서도 30%인 3천억 원 이상을 달성한다. 한국에서 리드코리아는 예상컨대 3년 내 3백억 원 이상을 달성해야 존재의 이유가 있을 것이다. 이상네트웍스는 경향하우징페어의 전국 확대를 비롯하여 이가전람의 인수까지 공격적으로 전시사업을 확장하고 있다. ‘전시 팩토리’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다. 이렇게 민간 전시 주최자의 경쟁이 치열해지고, 한국의 모든 전시장들이 자체 전시회를 개최하는 환경에서는 거래나 계약이 달성되기 힘든 B2B 쇼보다는 베이비페어, 카페쇼, 캠핑쇼 등 현재 트렌드에 어울리는 쇼를 통해 참관객을 모으고 이를 기반으로 참가업체 부스를 확대하여 수익을 창출하는 전략이 어울릴 것이다. 소비재 전시회의 증가는 국내외 주최자의 경쟁, 전시장의 전시사업 확대에 따른 필연적 선택일 수 있다.
콘텐츠 마케팅 서밋, 마이크 임팩트의 청춘 마이크, K-Con 등 최근 핫한 이벤트들은 전통적인 MICE 업계에서 기획한 것이 아니다. 콘텐츠 마케팅 서밋은 LG 연구원 출신 2명이 창업하여 2년 만에 티켓 한 장에 25만 원씩 하는 유료 참가자를 100% 달성하여 700석이 넘는 인터컨티넨털 코엑스 호텔 다이아몬드홀을 꽉 채웠다. 내년은 전시회까지 포함한 행사로 확대할 예정이다. 청춘 마이크로 유명한 강연기업 마이크 임팩트는 보스턴 컨설팅의 29살 컨설턴트가 강연이 좋아 뛰쳐나와 만든 회사이다. K-Con은 CJ E&M이 사내 반대를 무릅쓰고 4-5년 전 기획한 한류 마이스 이벤트인데, 지금은 한국을 대표하는 컨벤션-전시회-이벤트의 복합 글로벌 한류 이벤트로 성장하였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전시컨벤션이라는 매체가 이제는 기존 MICE 업계를 넘어 지식인들의 네트워킹 플랫폼으로 자리 잡고 있다는 방증이다. 기존 PCO PEO들이 대행 사업에만 전념할 때 새로운 비즈니스를 발견한 사람은 외부에 있던 젊은 세대들이었다. 그들은 전시컨벤션 플랫폼을 통해 대중, 바로 개인들과 소통하고 호흡한다. 그들은 지식의 향연에서 즐거워하고 기꺼이 고액의 비용을 지불하며 참가한다. 콘텐츠의 힘으로 승부하는 새로운 기업가들에게 전시컨벤션 플랫폼은 매력적으로 개인과 소통하는 수단으로 자리 잡고 있다.
소비자 트렌드의 변화와 공급자인 주최자 환경의 변화, 우리는 전시회가 개인으로 눈을 돌린 이유를 바로 이 2가지 관점에서 찾아볼 수 있다.
Written by 이형주
VMC (Venue Marketing Consulting) 대표
- 중앙대학교 예술대학원과 한국전시산업진흥회 등에서 Venue(박물관, 미술관, 컨벤션센터 등) 마케팅 및 중소기업의 전시마케팅을 강의하고 있다.
- 킨텍스 1기로 입사, 10년간 전시장 운영과 전시회 유치, 기획 업무를 하고 퇴사하였다. 그 후 창업하여 '별에서 온 그대' 드라마 전시회로 중국 관광객 11만 명을 유치하였다. 2015년 산업통상자원부로부터 '미래 전시 어드벤처' 부문 장관상을 수상하였다.
- 서강대 경영학과와 핀란드 헬싱키 MBA를 졸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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