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틀리지 않았어, 잘 살고 있어

by 너그러운 빛

가끔은 세상이 내게 '너 틀렸어, 너 잘못 살고 있어'라고 말하는 것 처럼 느껴진다.


그것도 인터넷 상에 누군가 올려둔 글이, 그 문자의 나열들이 내게 그런 중대한 인식을 심어주고, 강렬한 적개심과 좌절감, 분노의 감정까지 일렁이게 만든다. 물리적인 실체도 없는 글이 누군가의 정서와 신체를 후벼팔 수 있다는 게, 그게 나일 수도 있다는 게 신기하기까지 하다.


나는 커뮤니티나 SNS를 거의 하지 않는 편인데도, 종종 인터넷 상의 어떤 논조의 글들을 보고서는 심하게 상처를 입을 때가 있다. '빨리 상급지로 가야한다, 이제 길이 막혔다'는 주장이나 '나는 이렇게 투자를 잘 하고 있고, 이 나이에 큰 돈을 굴리고 있다'라는 정보들이 그렇다. 내가 이런 글들에 열등감을 느낀다는 사실은 비루하게 느껴져서 입 밖으로 꺼내고 싶지 않다.


하지만 곰곰히 생각해보면 인터넷의 발달로 나와 관계 없는 누군가의 성공과 이상적인 삶, 성공적인 삶에 대한 규범이 너무나 쉽게 개인에게 전달되는 것이, 많은 사람들의 정서에 해를 끼친다는 생각이 든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평범하게 살아가는데, 특별하게 여겨지는 소수, 인정받는 소수의 삶 그 단면은 내 삶을 상대적으로 작아보이게 만든다.


돈과 성공은 좋은 것이지만, 그것이 모두에게 일률적인 경험을 주는 것은 아니다. 사람마다 기준도 다르고 의미와 체험의 방식도 다르다. 모두가 추앙받는 누군가 처럼 상급지로 가야하고, 한강변에 살아야하고, 계좌에 얼마가 있어야 하는 의무를 지는 것이 아니다. 각자 자기의 방식 안에서 열정을 갖고 최선을 다하고 성취를 느끼면서 삶을 영위하면 되는 것이다.


SNS가 10대 소녀들의 자살율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는 뉴스가 한 동안 떠들썩했다. 정확한 인과 관계를 밝힐 수 없겠지만, 경험적으로 SNS를 많이 할수록 우울에 빠질 수 있다는 주장이 타당하게 느껴진다.


그래서 개인이 더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는 내가 접속하는 매체를 신중히 선택할 필요가 있다. 좋은 삶에 대해서 하나의 기준만을 고수하는 곳, 가진 것에 대한 과시와 열망이 뒤섞인 곳은 피해야 한다. 그래서 나는 블라인드를 탈퇴했고, 네이버, 인스타그램을 삭제했고, 유튜브의 알고리즘을 껐다. 댓글창을 안 보이게 닫아두는 것 만으로도 도파민이 줄어들어 덜 보게 된다. (그럼에도 끈질기게 이러한 콘텐츠를 소비자에게 보여주려 노력하는 플랫폼의 의도가 역겨울 때가 있다, 진심으로)


이러한 플랫폼을 의도적으로 외면했을 때 내 삶에서 어떤 문제도 나타나지 않았다. 유행을 몰라서? 정보를 몰라서? 일어나는 문제점은 단 하나도 없었다. 대신 내 시간을 더 잘 쓸 수만 있었다.


대신 그 빈 공간을 채우는 것은 가끔 보는 브런치, 밀리의 서재이다. 삶의 다양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곳, 비극도 아름다움이 되고 삶을 삶 자체로 받아들일 수 있는 곳이 좋다. 그리고 걷고, 달리고, 실제로 사람을 만나고, 전화 통화를 한다.


세상이 내게 '너 틀렸어, 잘못 살고 있어'라고 말한다면, 그건 그저 허상의 뭉게구름이다. 내가 생각 속에만 머무르지 않고, 이 한 몸으로 실제의 세상을 살아가는 감각을 느낀다면 나는 잘 살고 있는 것이다.


20250911_120657.png 스위스에서, 시원한 공기, 아이스크림, 맥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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