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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환성

by 최정식

인생이 빗나갈 때 역전은 거창한 각오에서 오지 않고, 조용한 전환에서 옵니다. 그 작은 전환을 굳이 이름 붙이자면 전환성이라 부를 수 있겠습니다. 방향을 바꾸기보다 리듬을 고쳐 잡는 일, 그 미세한 조정이 흐름을 바꿉니다.


이를 가장 단순하게 보여 주는 장면이 아침의 실수입니다. 커피를 쏟는 순간, 서두르기보다 얼룩을 물수건으로 가볍게 두드리고, 남은 커피를 작은 머그잔에 옮겨 천천히 마십니다. 그러면 하루의 속도가 먼저 바뀝니다. 속도가 달라지면 마음도 따라가고, 마음이 따라가면 계획도 자연히 자리를 찾아갑니다.


비슷한 전환은 길 위에서도 일어납니다. 버스를 놓친 날, 다음 차만 노려보지 않고 한 정거장을 걸어 봅니다. 가로수 아래 부서지는 낙엽 소리가 호흡을 고르게 만들고, 목적지는 같아도 도착한 표정은 달라집니다. 크게 돌아선 것이 아니라, 걸음의 박자를 고쳐 잡았을 뿐인데 장면이 잔잔히 교체됩니다.


책상 위 시든 화분도 같은 말을 건넵니다. 비료를 찾기 전에 창가로 30센티미터 옮기고 물 한 컵을 더했을 뿐인데, 다음 날 잎이 다시 하늘을 향합니다. 삶도 그 정도의 이동과 한 컵의 여유로 살아날 때가 많습니다. 복잡한 해법 대신 자리의 미세한 이동이 숨을 틔웁니다.

이 감각은 관계에서도 유효합니다. 실수가 있었던 오후, 길게 설명하기보다 “제가 바로 고치겠습니다.” 한 줄을 보내고 실제로 고쳐 보냅니다. 돌아오는 답장은 짧지만 충분합니다. 화려한 설득이 아닌 짧은 책임의 실천이 신뢰를 되돌립니다. 말의 길이를 줄이자 마음의 거리가 줄어듭니다.


그렇게 전환성은 멀리 있지 않습니다. 얼룩을 닦고, 한 정거장을 걷고, 화분을 창가로 옮기고, 한 문장을 책임지는 일에 스며 있습니다. 한 번의 이동, 한 모금의 여유, 한 줄의 결심이 이어지면 하루가 달라지고, 달라진 하루가 모이면 결국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역전은 그렇게 천천히, 그러나 분명하게 모습을 드러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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