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말서

by 최정식

말투를 바꾸지 않기로 했습니다.
잘못을 인정하는 자리에서까지 목소리를 낮추거나, 문장을 둥글게 만들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시말서를 제출하는 순간, 사람은 자신을 설명하고 싶어집니다. 이유를 말하고, 맥락을 붙이고, 사정을 덧붙이고 싶어집니다. 그러나 그 욕망을 따르지 않기로 했습니다. 과도한 자기연민은 책임을 흐리고, 설명은 변명으로 오해되기 때문입니다.


팀장이라는 자리는 실수를 하지 않는 위치가 아닙니다. 대신 실수가 발생했을 때 그것을 어떻게 감당하는지를 보여야 하는 자리입니다. 그래서 평소와 같은 말투를 유지하려 했습니다. 업무 지시는 업무 지시로, 회의는 회의로 이어가며, 기준을 낮추지 않으려 애썼습니다. 분위기를 가볍게 만들지도, 반대로 지나치게 무겁게 만들지도 않았습니다.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으려 했습니다.


사람들은 책임을 인정하면 권위가 무너진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조직에서 권위는 완벽함에서 나오지 않습니다. 일관성에서 나옵니다. 잘못을 인정한 뒤에도 태도가 흔들리지 않는 사람, 감정을 앞세우지 않고 관계의 온도를 유지하는 사람에게서 오히려 신뢰는 축적됩니다. 팀을 향한 기준을 낮추지 않는다는 것은, 스스로를 방어하기 위해 조직의 수준을 낮추지 않겠다는 선언이기도 합니다.


이 장면이 어떻게 기억될지는 알 수 없습니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합니다. 그 자리를 피하지 않고, 평소와 같은 말투로, 과도한 자기연민 없이, 팀을 향한 기준을 낮추지 않은 채 서 있었다는 사실 자체가 리더십의 한 형태라는 점입니다. 시말은 종이에 남지만, 태도는 사람에게 남습니다. 그리고 그 평가는 생각보다 늦게, 그러나 분명하게 돌아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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