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랑

by 최정식

요즘 들어 삶이 하나의 격랑처럼 느껴졌습니다. 회사의 일과 가정의 일이 서로 약속이나 한 듯 한꺼번에 몰려왔고, 어느 하나도 가볍게 넘길 수 없는 파도들이었습니다. 정신을 차릴 새도 없이 하루하루를 건너는 동안, 저는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는 느낌보다 그저 뒤집히지 않기 위해 버티고 있다는 감각에 더 가까이 서 있었습니다.


격랑 속에 있을 때는 이상하리만큼 감정이 무뎌집니다. 불안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불안을 곱씹을 여유조차 허락되지 않습니다. 지금 이 파도를 넘지 못하면 다음 파도가 더 거세질 것이라는 예감만이 몸을 긴장시킬 뿐입니다. 그 시간 동안 삶은 의미나 해석의 대상이 아니라, 균형을 잃지 않기 위한 기술이 됩니다.


그러다 하나씩 일이 풀리기 시작했습니다. 모든 것이 한 번에 해결된 것도 아니고, 완벽한 결말이 찾아온 것도 아니었습니다. 다만 파도의 높이가 조금씩 낮아졌고, 숨을 깊게 들이쉴 수 있는 순간이 찾아왔습니다. 그때 비로소 느껴졌습니다. 마음이 풀린다는 감각은 문제가 사라졌기 때문이 아니라, 긴장이 해제되면서 미뤄두었던 감정이 뒤늦게 돌아온 결과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격랑이 지나간 뒤에 찾아오는 평온은 조용하지만 묵직합니다. 그동안 흩어져 있던 사건들이 다시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 시작하고, 삶은 다시 해석 가능한 세계로 돌아옵니다. 통제력을 회복했다기보다, 의미를 다시 읽어낼 수 있게 된 상태에 가깝습니다.

이 풀림의 감각은 약해졌다는 신호가 아니라, 견뎌냈다는 증거라고 믿고 싶습니다. 격랑 한가운데에서 무너지지 않았고, 이제야 비로소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물가에 도착했기 때문입니다. 만약 지금의 잔잔함이 낯설게 느껴진다 해도, 그것은 공허가 아니라 다음 항해를 준비하는 정박의 시간일 것입니다.


격랑은 삶을 무너뜨리기 위해 오기보다, 삶이 실제로 얼마나 단단한지를 드러내기 위해 옵니다. 그리고 지금 느끼는 이 풀림은, 그 단단함이 생각보다 깊었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작은 확인처럼 다가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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