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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 앙투아네트의 다이아몬드 목걸이

by 최정식

1785년의 프랑스는 거대한 폭풍우가 몰아치기 직전의 고요와도 같았다. 귀족들은 여전히 화려한 연회를 즐겼고, 왕실의 사치는 민중의 불만을 부채질했다. 바로 이 시기에, 한 목걸이가 왕실과 프랑스 혁명의 역사를 뒤흔들게 된다.


루이 15세는 애첩 마담 뒤바리를 위해 약 600개의 다이아몬드로 이루어진 눈부신 목걸이를 주문했다. 그러나 그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목걸이는 새로운 주인을 찾지 못한 채, 보석상들의 손에 남겨졌다. 새 여왕 마리 앙투아네트조차도 목걸이의 가격과 그 사치스러움에 머뭇거리며 이를 거절했다. 그러나 이 아름다운 물건은 곧 왕비의 이름을 둘러싼 음모와 사기의 도구가 될 운명이었다.


잔느 드 라 모트라는 한 야심 찬 여성이 있었다. 귀족 가문에서 태어났으나 몰락한 그녀는 자신의 신분을 회복하기 위해 거짓과 속임수를 능란하게 이용했다. 그녀는 왕비와 친분이 있다는 허위 사실로 로앙 추기경을 속이고, 마리 앙투아네트가 비밀리에 목걸이를 원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꾸며냈다. 추기경은 이를 믿고 자신의 이름으로 목걸이를 구매했다. 그러나 목걸이는 잔느의 손에 들어갔고, 그녀는 이를 해체하여 다이아몬드 하나하나를 팔아넘겼다. 이 사건은 곧 발각되었고, 관련된 이들은 체포되었다. 하지만 그 결과는 예상 밖이었다. 로앙 추기경은 무죄 판결을 받았고, 잔느는 처벌을 받았으나 사법 시스템에 대한 불신은 커져만 갔다. 더 중요한 것은, 민중의 시선이었다. 사건의 중심에 있던 마리 앙투아네트는 사실 이 음모와 무관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사치스러운 이미지는 대중의 분노에 불을 지폈다.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으라"는 그녀의 말이 떠도는 것처럼, 그녀는 민중들에게 탐욕과 무관심의 상징이 되어갔다. 결국, 이 목걸이는 프랑스 혁명을 앞당기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는 단순한 보석이 아니었다. 그것은 민중이 느끼던 억압과 분노, 그리고 변화를 요구하는 목소리를 담고 있었다.


2024년 11월, 이 목걸이의 다이아몬드 일부로 추정되는 보석이 스위스 제네바에서 경매에 부쳐졌다. 약 68억 원이라는 거액에 낙찰된 이 보석은 단순한 장신구가 아니라, 역사의 한 조각이었다. 목걸이는 여전히 빛나지만, 그것이 남긴 교훈은 더욱 강렬하다. 권력의 정점에 서 있는 이들의 행동이 얼마나 중요한지, 그리고 그들의 선택이 민중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마리 앙투아네트의 목걸이는 보석이 아니라, 시대의 거울이었다. 그리고 그 거울은 여전히 우리가 들여다보아야 할 진실을 반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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