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터로 가는 길목에 얼음 장수가 손수레 위에 노전을 펴고 있다. 공터는 학교 다니기에는 아직 이른 어린 아이들이 늘 올망졸망 모여 노는 장소이다.
얼음장수는 손수레 바퀴에 앞뒤에 돌을 고이고 양옆으로 성벽을 쌓은 듯이 녹색 얼음통을 쌓아 포개어 놓았다. 길다란 막대에 묶여 있는 커다란 우산은 땡볕에서 얼음장수를 지켜주는 햇볕 가리개이다. 손수레를 다 덮고도 남을 만큼 커다란 합판 위에는 색색의 색소통이 가지런하게 서있다. 몇 겹의 비닐로 싸인 얼음상자의 뚜껑을 열면 허연 냉기를 뿜어져 나온다. 얼음 상자 주변에 몇몇 아이들이 침을 꼴깍거리며 서있다.
“아저씨 얼음사탕 하나 주이소”
흥건히 땀에 젖은 동전을 움켜쥐고 나는 당당하게 큰소리로 주문을 한다. 긴 작대기에 우두커니 매달린 커다란 우산 그늘로 머리를 들이민다. 그늘에서 한 뼘만 나가면 한여름 따가운 땡볕이 이불 바늘을 던지듯 하다. 얼음장수 아저씨는 목에 걸친 수건으로 땀이 흥건한 얼굴을 쓱 닦고서는 “덥제” 하며 씽긋이 반긴다.
두툼한 얼음통 뚜껑을 열고 조막만 한 얼음이 꼽혀있는 막대기 하나를 꺼내어 든다. 이는 극적인 순간에 안개를 헤치며 일순간에 등장하는 주인공을 연상케 한다. 하지만 아직 얼음 덩어리일 뿐이지 얼음사탕이 아니다. 굵은 주름살에 앞니가 빠진 얼음 장수는 얼음덩어리 위에 진한 설탕물을 섞은 빨강 파랑 노란색의 색소를 현란하게 돌려가면서 척척 뿌려댄다.
하얀 얼음덩어리가 순식간에 얼음사탕으로 변하는 마술 같은 순간이다. 색소통을 아래위로 흔들면 손등에 맺힌 땅방울도 함께 떨어져 얼음사탕을 짭짤하게 물들인다. 뿌려지는 알록달록한 색소가 얼음에 스며들자 “야~아” 손수레 앞에 모여 있는 꼬맹이들이 저마다 온몸으로 감탄을 한다. 입안에 가득 고이는 침을 꿀떡 삼킨다. 너울 파도를 타는 듯이 목젖이 울렁한다. 화려하게 물들어 가며 냉기를 뿜어대는 얼음사탕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한 입 먹고 싶은 마음은 색소를 둘러쓴 얼음사탕의 흔들림에 따라 눈이 끌려 다닌다.
빨갛게 파랗게 노랗게 물든 얼음사탕이 건네질 때쯤이면 '땡그랑' 깡통에 동전 떨어지는 소리가 난다. 손에는 원색에 물든 얼음사탕 한 개가 탐스럽게 들려 있다. 혓바닥을 길게 내밀어 빙글빙글 돌려 가면서 핥아먹는 맛은 정신을 못 차리게 얼얼하다. 시원하고 상큼한 게 감미롭기까지 하다.
애들은 한 입만 먹어보자고 따라다니며 보채지만 어림없다며 고개를 휙 돌려 버린다. “이를 사 먹으려고 엄마 치마를 잡고 얼마나 칭얼대며 따라다녔는데 너희들에게 한 입을 준단 말이가” 하며 보란 듯이 색소에 물든 혀를 쑥 내밀고 싹싹 돌려가며 보란 듯이 핥아먹는다.
한 여름 더위에는 숨이 턱턱 막혀 편히 숨쉬기도 어렵고 만사가 귀찮다. 한낮이 되면 가로수 잎들도 축 늘어지고 어른도 지쳐 나무 그늘에 놓인 평상에 앉아 연신 부채질을 한다. 어떤 아저씨는 누가 보든지 말든지 웃옷을 배까지 말아 올려 부채질을 하는데 불룩한 배가 더 볼록볼록거렸다. 그래도 더위가 가셔지지 않으면 이번에는 팔을 들어 올려 반소매 사이로 부채질을 하는데 겨드랑이의 시커먼 속털이 훤히 보이기도 하였다. “이래 더워가지고 사람이 살겠나.” 혼잣말로 독백을 하며 더위를 원망해보지만 정작 옆 사람은 들은 척도 않는다.
대꾸하는 것도 덥다.
아이들은 한여름 무더위에도 뜀박질을 멈추지 않는다. 마치 시동이 꺼지지 않는 자동차처럼 해가 지쳐 떨어질 때까지 팔딱거리며 뛰어다닌다. 까만 고무신이 아스팔트에 쩍쩍 달라붙는 게 재미있어 진득한 곳을 찾아다닌다. 폴짝폴짝 뛰어다니다 고무신이 훌러덩 벗겨지기도 하였다. 멀리서 이를 지켜보던 어른이 더운데 뛰어다니지 말라고 말리면 더 신이 나서 깡충깡충 뛰어다닌다. 한여름 땡볕에도 갓 잡은 생선처럼 팔딱거리면서 돌아다니면 온몸에서 팥죽 같은 땀이 줄줄 흐르고 고무신에 땀이 흥건하게 고여 미끄러워도 이를 놀이로 여겼다. 땀이 고여 미끄러우면 고무신 안에 종이를 깔고서 뛰어다녔다.
온몸에서 땀이 뚝뚝 떨어지고 소나기 온 고랑에 빗물 흐르듯이 몸에 줄을 그으며 타고 내린다. 등과 어깨에는 들러붙은 허연 소금 얼룩을 손톱으로 긁으면 고운 소금가루가 툭툭 떨어진다. 등짝에는 허옇게 말라붙은 소금이 나라 이름도 모르는 얼룩 지도를 희한하게 그려 놓았다.
불덩이 같은 몸을 식히는 최고의 방법이 그늘에서 얼음사탕을 쭉쭉 빨며 시원한 달콤함에 정신줄을 놓는 것이다. 아버지 일을 도와주는 엄마에게 달려가 치맛자락을 잡고 칭얼댄다. “엄마 1원만~” 구정물에 절여진 소금가루를 둘러쓴 채 말똥한 눈빛으로 치맛자락을 잡고 흔들면 “아이고, 니 얼굴에 이 구정물 봐라. 놀다 와서 씻어야 한다.” 하시며 허리춤에 달린 알록달록한 주머니에서 일 원을 꺼내어 주신다. 신이 나서 “예” 하고 대답만 할 뿐이지 돌아볼 틈도 없이 얼음사탕을 파는 손수레로 총알처럼 달려간다. 땀을 소낙비처럼 흘릴 때 얼음사탕을 쭉쭉 빨아먹는 맛은 정말 먹다가 죽어도 모를 만큼이다.
한 입만 달라는 애들을 뿌리치고 얼음사탕을 쭉쭉 빨며 걸어가는데 갑자기 몸이 확 기울어졌다. 얼음사탕에 정신이 팔려 한 눈을 팔다 한쪽 발이 하수구 구멍에 푹 빠진 것이다. 갓 만들어 바꿔 놓은 하수구 뚜껑의 구멍에는 여러 개의 칼날을 이리저리 꽂아 놓은 것과 같았다. 당시에 하수구 뚜껑은 시멘트를 삽으로 비벼 얼기설기 엮은 나무틀에 시멘트를 부어서 만들었다. 이러다 보니 모서리와 바닥에 들어붙어 있는 시멘트가 칼날처럼 삐죽삐죽 나와서 날카롭게 달려 있어도 다듬지 않고 대충 손질하여 하수구를 덮어 놓았다. 이 구멍에 오른발이 빠져 정강이를 칼로 긁어놓았다. 저리는 아픔을 참고 겨우겨우 다리를 빼내니 곳곳마다 길게 살점이 떨어져 나가고 남은 살은 낡은 깃발처럼 너덜하였다.
피가 멈추지 않았다. 쓰리고 아팠지만 이대로 집에 가면 혼날 게 뻔하였다. 워낙 천방지축으로 뛰어다니고 다치기까지 하였으니 꾸중을 들을 게 뻔하였다. 다리를 절뚝이며 미끄럼틀이 있는 언덕으로 올라갔다. 놀이터 구석진 곳에는 바람만 불면 회오리바람이 일어나는 곳이라 한쪽에 고운 흙이 수북이 쌓여 있는 것을 본 적이 있었다. 퍼질고 앉아 이마에 흐르는 땀을 소매 끝으로 쓱 닦고는 때가 낀 시커먼 손톱으로 너들한 살을 뜯어내니 피가 흥건하게 흘러내렸다.
다시 위쪽에 쌓인 고운 흙만 걷어서 상처 위에 살살 뿌렸다. 핏물이 흙에 베어 들고 조금 있으니 피가 멈추었지만 통증은 무척이나 심하였다. 더 많은 흙을 상처 위에 뿌리고 털어내기를 반복하니 피가 멈추었고 상처가 어설프게 감추어졌다. 그제서야 얼음사탕이 퍼뜩 떠올랐지만 이미 얼음사탕은 간 곳이 없다. 아직 절반도 못 먹었는데, 미련과 아쉬움이 가득하였다. 대충 흙을 털어내고 일어나니 그런대로 걸을만하였다. 절뚝거리며 내려오다 보니 하수구 구멍 저만치 시멘트 바닥이 원색으로 물들어 있다. 얼음사탕 막대기가 뜨거운 땡볕에 벌러덩 누워 있었다.
애들이 한 입만 달라고 해도 주지 않은 얼음사탕을 반도 못 먹었는데, 집에 들어가 아무도 모르게 상처부위를 물에 씻고 긴바지를 입어 상처를 감추었다. 쓰리고 아팠지만 워낙 잘 낫는 체질이라 약을 바르지 않아도 덧나는 경우는 없었으니 딱지가 앉기도 전에 또다시 팔팔 거리며 뛰어다녔다.
아득한 역사 속에 사라진 화려한 색소로 물들인 얼음사탕에 대한 추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