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이다. 친구가 꿀 한통을 선물이라며 건네준다. 캐나다 록키 산에서만 채취할 수 있는 아이스 허니이라고 하며 주의 사항을 일러 준다.
반드시 냉장 보관하여야 하고 쇠 숟가락으로 떠서는 절대 안 된고 당부를 한다. 무슨 꿀인데 이렇게 주의 사항이 많으냐 하니 무조건 그렇게 해야 한다고 한다. 알았고 하며 냉장고에 넣어 두었다. 며칠이 지난 후 뚜껑을 열어보니 흔히 알고 있는 진득한 꿀이 아니라 하얀 게 꽁꽁 언 아이스크림 같았다. 인척도 많을 텐데 나에게 까지 신경을 써 준 친구의 마음이 고마웠다. 나무 숟가락으로 윗부분을 조금 떠 보니 영락없이 아이스크림처럼 돌돌 말리며 떠진다. 참 이상한 꿀도 다 있다며 조금 먹어 보니 이~야 이런 꿀도 있네 하고 탄성이 절로 나왔다. 달고 쫀득한 맛이 이게 꿀이 맞나 할 만큼 묘하여 감이 잡히지 않았다.
한 입을 먹고 햇살에 기대어 있으니 옛 기억 하나가 스쳐 지나간다.
좋게 보면 입담 좋은 할머니 꿀장수이고 나쁘게 보면 완전히 사기꾼이었다. 봉이 김선달의 수제자라고 하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딱 들어맞는다. 꿀장수 할머니가 우리 모두를 속였으니 멍청하게 당한 기분은 이루 말할 수 없지만 뻔히 알면서도 속았으니 기가 차고 어안이 벙벙할 뿐이다. 어릴 때 겪은 생생한 꿀 장수 이야기이다.
어릴 때는 누구나 안에서 솟구치는 힘을 밖으로 분출해야 하기에 잠시도 가만있지 못하고 폴짝거리고 다닌다. 나도 그러할 때이라 밖에서 구정물 같은 땀을 흥건하게 흘리며 놀다가 집에 들어가니 처음 보는 할머니가 따라 들어와 목이 마르니 물 한 잔을 달라고 한다.
그때는 목이 마르면 아무 집에나 스스럼없이 들어가 물을 달라고 해도 경계를 하지 않았다. 물 한 그릇을 가득 담아 드리니 시원하게 벌컥벌컥 마시고는 부모님이 어디에 계시냐고 묻고는 집안을 기웃거린다. 부모님과 서로 아는 할머니인가 싶어 엄마를 모시고 오자 그때부터 할머니는 상대의 마음을 흔드는 어눌한 장광설을 시작했다.
시골에서만 살다가 오늘 부산에 왔는데 자식이 글을 몰라서 잘못 적었는지 집을 못 찾겠다며 주소가 적힌 편지 겉봉을 보여준다. 알지 못하는 이상한 동네 주소이다. 근방의 주소를 내밀면 어른들 대부분이 인근 동네 거의를 손바닥의 손금 보듯이 알고 있어 곧바로 들통이 나므로 전혀 다른 동네의 엉뚱한 주소를 들고 다닌다. 그때는 주소만 들고 집을 찾아다니는 일이 흔히 있었기에 주소가 적힌 겉봉을 보여주면 측은하다고 생각할 뿐이지 누구도 의심하지 않았다.
할머니는 시골에서 농사만 짓고 살다 보니 부산에는 처음이라 자식 집을 못 찾겠다고 한숨을 쏟아낸다. 그때는 어려운 이웃을 보면 다들 자신의 일을 제쳐놓고 힘을 모아 돌봐 드렸다. 힘들어도 인정이 넘치는 시대였으니까. 자식 얼굴 한 번 보려고 힘들게 여기까지 왔는데 주소가 틀려 찾지를 못하니 이제 어디로 가야 할지도 모르겠다고 넋두리를 늘어놓는다. 마땅히 갈 곳도 없으니 시골로 내려가야겠는데 짐이 무거워 들고 갈 수 없다고 푸념을 하다 짐꾸러미를 풀어 꿀 병을 쑥 내민다. 요즘은 보기 드물지만 그 시대는 흔한 큰 됫병이다.
“젊은 새댁! 내가 물 한 잔 신세도 졌고 새댁이 예뻐서 그러는데 아무 말하지 말고 그냥 싸게 줄 테니 사.” 하며 떠맡기듯이 사라고 한다. 자식 주려고 애지중지하며 귀하게 모은 것이라며 은근히 사람을 끌어당기고 추겨 세우다 어려운 자신의 처지를 양념으로 곁들여 인정에 여린 마음을 살짝살짝 건드린다.
진짜 꿀이 맞는지 의심을 하면서도 “얼만데요” 하고 묻는 순간부터 할머니가 던진 낚싯바늘에 덜컥 걸린 것이다. 처음에는 받아들일 수 없는 높은 금액을 툭 던진다. 안 산다고 하면 그때부터 꿀 값은 계단을 내려오듯이 조금씩 깍인다. 시간을 끌어가며 눈치를 보다 회심의 결정타를 날린다. “아따 새댁처럼 곱상한 아줌마가 영 물건을 볼 줄 모르네. 그라모 오늘 내가 팍 선심 쓸 테니 반값만 주소 됐능교.” 하며 밀치듯이 꿀병을 건네주고 손을 쑥 내민다. 진짜 꿀이 맞는지 긴가민가하다 반값이라는 말에 얼떨떨해진다.
이게 웬 떡인가 하며 주섬주섬 주머니를 열고 꿀 값을 건네준다. 할머니는 한 건 했다며 회심의 미소로 한 방을 더 날리고 간다. “새댁 오늘 진짜 꿀을 잘 샀는지 아소.” 하고는 돈을 챙겨 사라진다.
할머니가 가고 나서 꿀을 쏟아 보자 밑에는 모두 진한 설탕물이다. 할머니 술수에 완전히 속은 것이다. 설탕물을 진하게 하여 색을 낸 뒤 병을 채우고 윗부분에만 진짜 꿀을 조금 넣고 봉한 것이다. 그러니 젓가락으로 아무리 찍어 먹어봐도 윗부분의 꿀만 찍혀 올라오니 진짜 꿀이라고 믿을 수밖에 없지 않은가.
꿀을 사기 전에 꿀이 맞는지 쏟아보자고 하면 사람을 그렇게 못 믿고 어찌 사느냐며 싸울 듯이 역정을 내고 가버린다. 또 쏟아서 확인한들 원래대로 병에 담기가 어려워 그렇게 할 수는 없다는 것을 훤히 알고 있다. 할머니가 이를 이용하여 어리숙한 체하며 이 동네 저 동네를 돌아다니며 꿀 장사를 하는 것이다.
속이 상하지만 설탕꿀을 버릴 수도 없어 어떻게든 먹을 수밖에 없지만 다 먹는 동안 기분이 찝찝하고 밀쳐오는 불쾌함 또한 어쩔 수가 없었다. 다시는 안 산다고 하지만 파는 수법이 달라지면 뻔히 알면서도 당할 수밖에 없었다. 사람의 마음을 훤히 꿰뚫어 보며 살살 녹는 말을 하는데 넘어가지 않고 버틸 방법도 재간도 없다.
이웃 어른들이 모이는 자리에서 나누는 이야기를 들어보면 할머니의 어리숙한 수법에 당한 어른이 제법 많았다. 처음부터 단호하게 접근을 막아 버리지 않은 다음에야 안 사고는 버틸 수 없게 만드는 말재주가 보통이 아니었다고 한다. 때로는 가짜 꿀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당한다. 박절하지 못한 탓이다. 딱한 사정에 끌려 어설프게 밀어내면 그 틈을 비집고 다가와서는 자꾸 말을 붙여와 결국 사게 만들었다. 그래도 안 산다고 하면 이것도 하나 살 형편도 안 되느냐면서 바쁜 사람 잡고 왜 값을 물어보느냐며 에이 재수 없어하고 역정을 내며 혼자서 궁시렁거리다 가지만 얼굴에는 팔지 못한 암울함이 역력히 그려져 있었다.
시대를 살아가기 위한 수단이었을까, 아니면 순진함을 이용하는 탁월한 장사꾼이었을까.
이러한 기억을 나눌 때면 깔깔거리며 맞장구를 치고 박장대소를 하며 배를 잡고 뒹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