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시밥 무봤나

by 조성식

“무시밥 무봤나.” 해풍에 절여진 고약한 성질머리가 소금을 뱉어내는 듯하는 억센 경상도 사투리다. 이 말의 표준어는 "무밥 먹어 봤니" 하고 묻는 말이면서도 뒷억양에 따라 "너는 무밥도 모르니" 하는 약간 무시하는 어감도 들어 있다. 경상도는 말의 억양이 워낙 강하여 타지방에서 단번에 알아차리고 보리문둥이라고도 한다.


서울 사람이 부산에 와 버스를 탔는데 하도 시끄럽게 떠들어서 좀 조용히 하라고 했더니 “와 이기 니끼가” 해서 일본 사람인 줄 알았다는 우스개 소리가 있다. 지방 사투리는 그 지역 사람이 해야 감칠맛이 있고 사투리를 통해서 그들만의 정감을 나누고 단결을 과시하기도 한다.


쌀이 귀하다는 이야기를 숱하게 했지만 당시에 워낙 쌀 구경하기가 힘들다 보니 가을이 되어 햅쌀이 나와도 쌀 대신 형편에 따라서 무를 몇 포대씩 사놓는다. 무김치 담느냐고 천만의 말씀이고 만만에 콩떡이다. 가을에 포대로 사는 무는 언제나 대용식이다. 끼니때가 되면 식구 수에 맞춰 많은 양의 무를 잘게 채로 썰어 솥에 한가득 깔아 놓는다. 무 위에 미리 삶아놓은 보리를 깔고 다시 쌀을 한 주먹 얹혀서 밥을 하는 데 사실 밥을 한다기보다 채로 썰은 무를 삶는다고 해야 할 정도이다.


무를 생체로는 많이 먹을 수 없으니 이를 삶아서 먹는다고 해야 할까. 어쨌든 밥때가 되었으니 무엇으로든 끼니를 때워야 했다. 무의 파란 윗부분은 약간 달짝지근한 맛이 나서 생으로도 먹지만 꺼억하고 트림을 하면 지독하고 얄궂은 냄새에 어질하다. 그 냄새를 가까이 하는 순간 다들 코를 틀어막고 도망가기 바쁘다. 오죽했으면 무먹고 트림하지 않으면 산삼 먹는 것보다 났다고 할까.


무가 가득한 솥을 불꽃이 이글거리는 연탄 화로 위에 올려놓는다. 잠시 후 열이 오르기 시작하면 솥에서는 하얀 김을 치익하고 내뿜는다. 불마개를 조금 닫아 불을 줄여 뜸을 들인다. 얼마 후 다 익었다 싶으면 김을 완전히 빼내고 밥을 퍼는 데 윗부분에 얹혀진 한 주먹되는 쌀과 보리는 아버지의 몫이다. 한눈에 봐도 하얀 쌀과 보리 알갱이의 절반가량이 아버지 밥그릇에 담긴다. 가족을 위해 힘들게 일하시는 아버지의 노고에 감사하는 마음을 전하는 방법이었다. 엄마는 아버지에 대한 깊은 애정을 보리쌀에 담아 전하셨으리라 생각하면 울컥해지고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형제들은 상에 올라온 아버지의 밥그릇에 시선이 모여진다. 내 밥그릇에는 보리쌀이 얼마나 들어올까하며 눈을 반짝거리지만 아무리 기대를 해도 매일 거기서 거기다. 엄마 밥은 맨 마지막에 퍼기 때문에 순전히 무 뿐이고 보리쌀은 한 톨도 보이지 않고 양도 얼마 되지 않았다. 우리 밥그릇에는 그나마 보리쌀이 듬성듬성 섞여있어 씹는 맛을 느낄 수 있었지만, 말이 밥이지, 어찌 이를 밥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그날 작정을 하고 밥투정 겸해서 반찬투정을 했는데 엄마는 슬그머니 일어나 밖으로 나가셨다. 잠시 후 한 번도 본 적 없는 아이를 데리고 들어와 아이 머리를 한번 쓰다듬으시며 “배 고프제 온나 밥 묵자” 하신다. 아이는 “예 고맙심더” 하고는 곁눈질 한 번 하지 않고 내 밥을 바닥까지 싹싹 긁어먹고 물 한 사발을 마시고서는 “잘 먹었심더” 하고 꾸벅 인사를 하고 가버린다.


이때의 심정은 하늘이 시커멓게 무너지고, 서러워 눈물이 줄줄 쏟아 내렸다. 세상에서 배고픈 서러움이 가장 크다고 하는데, 눈물 콧물이 얼굴에 범벅이 되고 큰 울음소리는 방안에 가득했다. 괜히 밥투정했다는 후회가 울컥 밀려오고, 정말이지 당해보지 않고는 그 억울한 마음을 알 수가 없을 정도로 서러웠다.


상황이 이쯤 되자 아버지는 빙그레 웃으시며 드시던 밥을 슬며시 내 앞으로 밀어주시며 “이 밥 묵어라.” 하신다. 이때 얼른 울음을 그쳐야 한다. 소매 끝으로 얼굴에 맺힌 흥건한 눈물을 쓱 닦고 아버지 밥그릇을 내 앞으로 당겨 놓지 않으면 쌀이 들어 있는 보리밥은 내 밥이 아니다.


아버지께서 드시던 밥그릇을 당겨 오는 순간 엄마와 형제들은 눈길은 거의 동시에 같이 따라온다. 엄마는 아버지께서 못 드시니 안타까워서 눈길이 따라오고 형제들은 제법 쌀이 들어 있는 보리밥을 한 숟가락이라도 먹고 싶어서 눈이 따라온다. 그러거나 말거나 소매 끝에 눈물이 스며들기도 전에 재빠르게 후딱 먹어 치워야 했다. 조금이라도 우물거리면 내 밥이 아니다.


이러니 밥투정을 할 수도 없었다. 그 후부터는 어설프게 밥투정을 해 본 적이 없다. 내 밥을 바닥까지 긁어먹고 간 아이는 끼니때가 되어도 먹을 게 없어 밥 냄새를 맡고 이집저집을 기웃거리던 아이였다. 엄마는 한 술 얻어먹을까 싶어 주변을 얼쩡거리는 아이가 있다는 걸 아시고 내가 투정을 부리자 데리고 온 것이었다.


그 당시에는 먹을 수 있는 것만으로 감사해야 했다. 절대적으로 궁핍한 시절이라 거리에는 거지가 넘쳐 나던 때였으니 배고픈 아이에게는 한 끼가 목숨줄일 만큼 절박하였다.


무밥은 솥바닥까지 박박 긁으며 퍼고 나서도 바닥에는 국물이 조금 고여 있었다. 이렇게 물이 많이 생기는 무밥은 아무리 허겁지겁 먹어도 체하거나 목이 막히지 않지만 헛배가 불러서 먹고나도 배가 고프다. 다른 먹거리가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괜히 부엌을 기웃거리기도 했다. 워낙 먹을 게 귀한 시절의 흔한 풍경이다. 어른들은 무밥 먹고 나면 배가 빨리 꺼진다고 뛰어다니지 말라고 한다.


어디 무밥뿐이겠는가. 감자밥, 고구마밥, 콩나물밥 등으로 주린 배를 채웠다. 고구마밥은 단 맛이 많아 밥이라기보다는 고구마를 잘게 썰어 익혀 먹는다고 해야 했다. 요즈음은 고구마밥이나 감자밥을 하는 식당이 없지만 그 옛날이 생각날 때면 콩나물밥을 하는 식당을 찾아가 잔파를 숭숭 쓸어 넣은 양념장을 한 술 떠넣고 참기름을 살짝 두른 후 쓱쓱 비벼 먹을 때면 그때 먹던 맛이 되살아나니 꿀맛이라 해야 할까. 지금은 이러한 밥을 건강식으로 챙겨 먹고 별미라고 먹지만 그 시절에는 먹거리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 시절의 모든 아버지는 추위도 더위도 잊고 땀방울로 목을 축이며 이 지독한 빈곤을 헤쳐 나왔다. 그러니 지나간 시절이라고 잊기보다 지금의 어려움을 이겨내는 디딤돌로 삼아야 하지 않을까. 지금 세대는 넘쳐나는 풍요를 누리고 있고 시간이 좀 더 지나면 이러한 순간이 아득히 먼 과거의 시간이 됨을 알고 있다. 시간이 흘러간 흔적은 역사에 꿰어진다. 꿰어진 역사를 아는 힘은 성장의 바탕이며 미래를 향한 도약이며 다음 세대의 몫이다.


오늘은 무밥이 먹고 싶다.

"엄마. 무밥 언제 할낌니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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