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 변소

by 조성식

부산은 바다와 맞붙은 긴 해안선을 끼고 있는 작은 포구였다. 산의 굴곡을 따라 마을이 형성되다 보니 지형 특성상 평지가 드물다. 이처럼 산과

산의 골 사이로 도로가 낚시에 걸려 요동치는 갈치 등처럼 뻗어있다. 그러다 보니 타 도시에서는 볼 수 없는 일자형 주도로에 지선이 연결되어 있어 마치 인체의 혈관을 연상케 한다.


부산의 근대사를 보면 일제 강점기에 일본과 가장 가까운 남포동과 광복동에 일본인이 집단으로 거주하면서 도시의 구조를 갖추게 되었다. 이주한 일본인은 막강한 자본력으로 부산과 주변 상권을 장악하고 일제의 비호 아래 갖은 악랄한 수법을 동원하여 우리 백성의 주머니를 털어갔다. 수탈한 공물을 본국으로 보내기 위하여 해안을 매립하여 부두를 만들었고 발전이란 미명 아래 전차를 놓아 동래 일대의 온천지를 자신들의 휴양지로 만들었다.


일제 강점기가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전쟁이 나자 부산은 파병 온 유엔군과 피난민의 집결지가 되었다. 피난민들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쏟아져 들어오자 평지가 절대 부족하여 집 지을 땅이 없었다. 피난민은 맨손으로 산을 깎아 딱 제 누울 만큼만 터를 닦아 널빤지로 숭숭한 벽을 세우고 양철로 지붕을 덮었다.


너도나도 산을 깎아 집 옆에 집을 짓고, 또 집 옆에 집을 짓다 보니, 집과 길이 엉켜 경계조차 명확하지 않았다. 집 사이로 닦은 꼬불꼬불한 길이 간선도로가 되었다. 여기에 연결된 가는 실핏줄 같이 복잡한 골목이 얽혀있어 주소를 들고 집을 찾기란 끝을 알 수 없는 미로를 빠져나가기 만큼이나 힘들었다. 이렇게 산을 깎은 길은 경사가 매우 심하고 곳곳에 계단이 널려있어 처음 오면 헷갈리기 일쑤였다. 밑에서 계단을 올려다보면 길이 마치 하늘과 닿아있는 듯하여 초행자는 천국을 바라보는 아찔함을 느낀다. 아무리 올라가도 끝이 안 보여 다리가 후들거리고 지치면 기어가다시피 하여야 한다.


다닥다닥 붙은 집을 멀리서 보면 장난감 블록을 쌓은 듯 집 위에 집을 얹혀 놓고 또 그 집 위에 집이 얹혀 있어 짜 맞춘 난쟁이 병정집처럼 보인다. 낮에는 마치 소인국에 온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키고 밤에 바닷가에서 보면 불빛만 보여 높은 고층 건물이 밀집되어 있는 것 같다고 한다. 한여름 소나기가 오는 날이면 얼기설기 엮은 양철 지붕을 두드리는 요란한 소리에 귀가 먹먹해질 지경이었다.


이렇게 작은 난장이집에 개별적인 변소가 있을 리가 만무하였다. 하니 몸에 급한 신호가 오면 미리 알아서 움직여야 한다. 변소에 가는 길이 그리 만만치가 않다. 찔레 둥우리 마냥 얽히고설킨 미로를 따라 남의 집 앞을 몇 번이나 이리 돌고 저리 돌아가야 한다.


뱀 허리 같은 산복도로에서 가려면 그야말로 산 중턱에서부터 바쁘게 술래잡기를 해야 한다. 이리 꼬불 저리 꼬불한 헷갈리는 길에 가슴까지 차오르는 가쁜 숨을 쏟으며 괄약근을 바짝 조이고 올라가다 보면 두레박으로 물을 긷는 공동 우물이 나온다. 우물가의 긴 빨래터를 돌아서 왼쪽 골목길을 따라 내려가다 공터를 지나야만 그제야 위풍당당한 공동 변소가 눈앞에 나타난다. 동네에서 가장 큰 건물이라 거인의 집처럼 위용을 자랑하며 작은 쪽문의 아가리를 벌리고 우람한 덩치로 서있다.


뒤가 다급함에도 불구하고 체면을 차리고 여기까지 왔다면 정말 가상하다. 이때쯤이면 몸이 비비 꼬이고 팔자걸음이 땅을 끌고 왔을 테니까. 온몸의 힘을 다 끌어모은 괄약근은 빈틈없이 죄여 있고 이마에서는 식은땀이 줄줄 흐르고 하늘이 노래 정신이 아득할 텐데,


지금 생각하면 기겁할 노릇이지만 이 공동변소에는 개별 칸막이가 없다. 우물터를 비켜난 아래쪽에 산비탈을 깎아 만든 터에 판자를 엮어 벽을 세우고 그 중앙에 다시 칸막이를 세워서 한쪽은 남자 변소, 또 한쪽은 여자 변소로 구분해 놓았다. 남자용과 여자용의 출입문 가운데에 쪼그만 초소가 있고 그 안에는 돈통을 앞에 놓은 주인이 눈을 크게 뜨고 지키고 있다. 아무리 급해도 돈을 내지 않고서는 변소에 들어갈 재간이 없다. 얼마를 주고 들어갔는지는 기억이 없지만,


쪽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면 중앙에 통로가 건물 길이만큼 나 있다. 좌우로는 지면보다 약간 높게 짜 맞춘 판자에 사각 구멍이 쭉 배열되어 있었다. 바지를 내리고 대충 눈짐작으로 구멍에 맞추어 다리를 벌려 앉으면 겨우 옆 사람과 부딪히지 않을 정도이다. 앞에는 손바닥만 한 가리개가 있지만 사실 아무것도 가려주지 못한다. 적당히 자리를 잡고 앉으면 모든 밑천을 자연스레 드러내었다. 쭈그려 앉는 모습을 앞에 마주 앉은 상대가 다 보고 있으니 안 보일 재간도 없고 안 볼 수가 없었다. 잘 아는 사이를 표현할 때 그 집에 숟가락 몇 개인가를 안다고 하지만 여기서는 더 깊이 감추어 놓은 사실까지 적나라하게 보일 수밖에 없었다.


한동안 쌓이고 쌓였던 참고 참았던 굵고 누런 가래떡이 애써 힘을 주지 않아도 세상 밖으로 쭉 빠져나와 아래로 철퍼덕 떨어진다. 건너편에 마주 앉은 상대가 이를 지켜보고 있지만 어느 누구도 민망스러워하지 않는다. 워낙 풀만 먹은 속이라서 크게 힘쓸 필요도 없이 속이 비워지는 상쾌함을 맛본다. 오래 앉아 다리가 저리면 몸을 비틀기도 하고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혀도 좀 더 참고 일을 끝내거나 아니면 일어나 누가 보거나 말거나 밑천을 흔들면서 보건체조로 다리를 풀고 다시 시작하는 사람도 더러 있었다.


이처럼 칸막이가 없다 보니 쭈그려 앉아 용쓰는 표정과 이마에 땀방울 맺히는 모습까지 낱낱이 보여도 아무렇지도 않게 끙끙 거리며 힘준 얼굴로 옆사람과 일상적인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이웃의 안부를 묻기도 하였다. 쭈그리고 한담을 나누다 끼익하고 마찰음과 함께 쪽문이 열리면 모든 눈들이 입구를 바라본다. 친한 사람이 오면 이름을 부르며 옆자리에 오라고 하거나 자기는 일을 다 봤으니 이리로 오라고 손짓을 하고 소리를 지르기도 하였다. 뒤처리할 종이가 부족하면 나누어 쓰자고 하기도 하고 빳빳하고 억센 종이는 양쪽을 잡고 마구 비벼서 부드럽게 만들어 사용하기도 하였다. 다들 공동변소를 사용하는 돈마저 아끼려고 참을 만큼 참고 있다가 한계점에 왔을 때 해결하기 때문에 한꺼번에 쏟아내는 양이 실로 엄청났다.


중앙에 세워진 칸막이벽으로 인해 남자와 여자는 서로를 볼 수 없지만 내부 구조는 동일하였다. 어쩌다 아침에 일찍 가 아무도 없을 때면 칸막이 판자에 옹이가 빠진 구멍에 눈을 대고 여자 화장실을 훔쳐보기도 하지만 기대와 달리 아무도 없을 때는 괜히 실망하기도 하였다. 그러다 들어오는 어른에게 들키면 여지없이 “쪼그만 게 까져서”하고 한 소리를 들으며 꿀밤을 얻어맞지만 흰머리가 듬성듬성한 어른도 옹이구멍에 눈을 대고 여자 변소를 훔쳐보기도 하였다.


그렇다고 모두가 공중변소를 이용하는 것은 아니다. 애들이 집에 있을 때는 요강에 해결하고 밖에 있을 때는 근처의 산에 달려가 해결을 한다. 민둥산 곳곳에는 채 마르지 않은 누런 덩어리가 널려 있어 여간 조심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남의 덩어리가 신발에 묻었을 때의 난감하고 찝찝한 기분이란, 상황이 이러니 급하다고 아무 데나 앉았다가는 자칫 누구 것인지도 모르는 똬리를 밟고 앉거나 뽀얀 엉덩이에 묻을 수도 있어 주변을 잘 둘러보고 빈자리에 골라 앉아야 한다. 어른들도 상황이 여의치 않을 때는 산에 와서 볼일을 다 본 뒤 주변에 있는 돌로 밑을 쓱 닦고서는 그 위에 살짝 얹어 놓고 일어섰다.


이도 저도 여의치 않는 애들은 우물터 근처를 빙빙 돌며 주변의 눈치를 살피다 빨래터 하수구에 앉자마자 쏟아내고는 재빨리 도망을 간다. 망설이거나 동작이 굼뜨면 눈치 빠른 아낙네의 물세례를 받기 일쑤이다.


날이 밝으면 한결 같이 밤을 새운 한가득 찰랑거리는 요강을 들고 나와 빨래터 옆에 있는 배수구에 쏟아붓고 우물을 한 두레박 길어 씻으면서 서로 밤새 있었던 묘한 이야기까지 나누기도 하고 이웃 간에 널부러진 이야기를 늘어놓고 깔깔거리며 시끌한 하루를 시작하였다. 공동 변소와 가까운 주변의 집은 늘 진한 냄새를 맡으며 살아야 하기에 고충이 오죽했으랴마는 그때는 시대상황이 그러했으니 냄새로 다투거나 분쟁을 일으키는 경우는 없었다.


지금은 변소라 부르지 않고 화장실이라 하지만 88 올림픽을 계기로 화장실 문화가 변하기 시작하였다. 지금은 어디를 가나 더없이 깔끔하고 위생적인 문화 공간으로 거듭나 서로 자신의 화장실이 최고임을 자랑하지만 그때는 칸막이 없는 공동변소가 자연스러운 우리의 모습이었다. 생각해보면 그때 그 많은 응가를 어떻게 처리했을지 궁금하지만 알 길이 없다. 벌써 육십 년 전의 거짓말 같은 사실이다.


근데 왜 똥 이야기를 하면 다들 질겁을 할까. 더러우니까 다들 찰랑거릴 때까지 배에 담고 다니나.

모를 일이야. 암. 모를 일이고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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