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수히 많은 시간이 흘렀다. 알 수 없이 휘청거리는 계절마다 해가 뜨고 달이지는 걸 보았을 것이다. 깊은 밤에 잠들지 못한 상념들, 태양이 지면 저 너머에서 새로 태어나서 그중에 얼마 큼의 태양은 잠들지 못했을 것이다.
찬바람이 지나갔다. 약간 너그러운 봄이 오면 가물거리는 것들, 겨우내 기억되는 시간이 먼지처럼 먼지를 털고 나면 멀어진다. 하루로부터 하루씩 멀어지면 가까워지는 하루만큼 돋아났다. 잠들지 못한 태양이 하는 일이었다.
닿을 듯 말 듯, 도시의 가장자리에서 빛 사이를 열었다. 익숙한 기억으로 낯선 기억은 겨우 움트는 숨결로 온다. 비스듬히 떠 다니며 오로지 반사된다. 갈수록 어떤 빛은 눈부셨고 도무지 눈을 뜨면 곧 눈을 감겨 버렸다. 남쪽의 하늘은 이미 넓어졌고 타올랐다. 굳어질 수 없는 내 등 뒤로 더듬는 질감, 오로지 반짝이는 것들, 일시적이지만 영원한 시간을 통과하는 기억
빛으로부터 연두의 시간이 돋아나기 시작했다. 차갑고 어두운 시간의 기억이 품고 살았을 침묵, 침묵 대신 손 내미는 생명, 한 계절을 벗어도 기억하는 어떤 연민처럼 퍼진다. 어딘가 어제와는 달리 더 뜨거워지고 높아졌다. 곧 꽃이 필 거라는 기억도 있다.
만지면 부서져도 가리면 가려져서 태양은 저 멀리 있다. 그래서 타 들어갈 수 없는 거리에서 뜨거워질 뿐이다.
그 빛으로 잎이 기억하는 순간이 지나간다. 보이지 않는 세상의 모든 기억이 자라는 시간이 흐른다. 어떤 봄처럼 기억되었다 봄처럼 살아나는 무수한 빛 사이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