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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 Jun 21. 2020

밤바람이 창으로 넘어와

잠들기 아까운 밤이 깊어질수록 뭔가 샘솟는 마음만 기웃거립니다. 열린 창으로 넘어오는 바람 때문이라고 말하면 바람은 좀 더 헐렁해져서 심쿵하게 파고듭니다. 창 앞으로 나란히 놓인 화초들도 바람이 들어 자잘하게 흔들립니다. 향기 없는 풀내음이 나서 왠지 모를 나무 향기가 타는 밤의 끝에서 바람이 불면 마치 핀란드의 키 큰 침엽수 숲을 몇 바퀴 돌아 여기 온 바람이 맞을지도 모른다며 쓸데없이 바람의 흔적을 더듬기도 합니다.


아직 어두운 창 밖에 서성이는 나무도 잠을 자듯 깨어있습니다. 나무를 생각하며 하루씩 푸르러질 것을 생각합니다. 나무보다 내가 조금 더 푸르도록 초록은 그늘을 만들어주고 햇볕에 말린 바람을 심장 가까이로 불어줍니다. 그런 나무도 깊은 밤을 만나고 숲을 이루나 봅니다. 더 많은 바람이 되고 싶은 나이테는 아침이 오면 해를 향해 더 넓어지겠지요. 대부분 어떤 나무도 사람도 마음도 하늘처럼 바다같이 물들게 할 줄 압니다. 그 사실이 눈물 나게 고마운 밤입니다. 모두 다 이 밤이 하는 일입니다. 내일 첫 아침을 기다리며 내일을 맞이하는 새벽, 세상 모든 하루와의 만남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여하튼 바람이 깨우는 밤에 살아있는 나를 느끼는 일은 은근 매력적입니다.




일렁이다 만

기억이 만져진다

기억이라는 단어에 힘을 빼니

살아지는 기억들


무심하여

설명할 수 없는 공기에

실린 문장


서로

아련하여

스프레이 같다


곧 쏟아지려나

쓰라린 기억의

무너짐 사이 빛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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