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시선 사이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루 Jun 24. 2020

웅크린 하늘도 설레겠지

맘껏 창을 열 수 있는 하루여서 좋다. 잔뜩 흐린 하늘이 자욱하기만 해서 어쩌면 비예보가 빗나갔나 했는데 이윽고 비가 온다. 비는 내린다는 표현보다 온다.라는 말이 좋다. 그 말에는 알 수 없는 오랜 기다림이 있다. 그것은 때론 자욱한 그리움 같아서 비를 타고 문득 아득해진다. 온종일 하늘이 흐렸다. 비 소식을 듣고 비를 기다리는 일은 자주 하늘을 볼 수 있어서 선물 같다. 알고도 기다리는 선물 같아서 모르는 척 있기 힘들 때도 있지만 그 힘듬이 자꾸 들켜서 좋다. 난 들켜도 아무도 알 수 없으니까 설렌다.


아침부터 하늘은 맑은 얼굴로 서늘한 바람을 가져와 물기를 먹여버렸다. 어쩐지 두배로 투명해졌다. 점점 낮아진 하늘에 구름이 들어도 푸른빛을 감출 수 없었다. 오래 외로웠을까. 아무것도 없이 텅 비어 있다가 문득 외롭다는 것은 어떤 것을 만나 거부하지 못하는 저항을 가지는 걸까. 습관처럼 외롭지 않아도 텅 비어 허전하고 무언가 쏟아낼 말들을 품은 어떤 감정이 밀려올 때를 기다렸을까. 오래 끌어안고 산 미세한 고통을 느낀다. 울고 싶다는 감정이 이유 없이 파고드는 어떤 기억들로 하여금 때때로 단절된 세상에 사는 빛. 그것에 대한 어떤 구체적인 이름을 부여받지 못한 체 덩그러니 빠져나오지 못한 숱한 기억들로부터 웅크렸을까. 때때로 어둠이 내린 터널 안에 남겨진 존재에 대해 약간의 연민일 수도 있겠다. 다행히 때가 되면 따뜻하고 조금씩 뜨거워지면 식혀준다. 그들만의 공감은 언제나 모호하지 않다. 더불어 숨길을 열어준다. 어떤 방식으로 던.


떠나지 못한 웅크린 하늘은 갇혀서 운다. 자주 아려온다. 참아낸 그리움이 사무치면 쏟아낸다. 흐린 하늘이 회색이어도 무거운 물을 담고 있어도 저 너머 불가능을 너머 자주 가볍고 환해진다. 그리움을 품고도 우호적인 하늘은 의미 있는 꿈을 꾸고 꿈을 짓는다. 가라앉은 하늘에게 쓴다. 어쩌면 가벼운 몸살처럼 지나갈 우리의 자화상일지도 모르지만 그대로 드러내 주어 아름답다. 어떤 슬픔은 희석되고 그날의 하늘도 잠드는 밤이 지나면 가벼워진 하루가 온다는 평범한 사실에 설레겠지 하고. 그것이 뭐든. 걱정 없이 비가 오면 걱정 없이 세상이 씻기면 좋겠다. 웅크리고 있던 그림자도 표 나지 않게 나와서 비를 맞고 사라지면 좋겠다. 마침 갈증 나게 사위였을 텐데. 비에 씻긴 먼지들도 숨 쉰다. 그 어디로 부유하던 먼지의 기억마저 빗 속에선 잠잠해진다. 이상하지. 잠시 세상의 모든 순간이 정지된 듯 빗소리가 크게 들릴수록 세상은 더 고요해진다. 가만가만 오늘은 빗 속에 오래 갇혀도 좋겠다. 창 너머 오는 바람도 고요히 숨 쉬는 곁에 오래 숨 쉴 수 있으니까.


산속의 나무들이 팡팡하게 부풀어서 숲을 이루고 숲은 점차 짙어졌다. 가끔 산 위로 가라앉은 하얀색은 아득히 연기 같았다. 간혹 저 멀리 천둥소리 울리는 순간 어떤 빗 방울이 더 크고 많아지면 좋겠어서 와르락 쏟아져라 그랬다. 어딘가 나무 끝자락이 흔들릴 때 바람은 마음을 일으켰고. 내가 여기 있다고 알려주는 전령처럼 우리는 기억으로부터 이상하게 닮았다는 생각도 했다. 빛 하나 없이 빛이 되는 건 아무것도 없는 마음으로 마음이 하는 일 같다. 비 오는 창가에 앉아 종일 책을 읽었다. 어둠이 내리고 나서야 나는 마지막 장면처럼 자발적 은둔을 풀고 푹 갇힌 고립을 풀고 비를 스친 풍경에 불이 들어온 저녁을 켰다. 비에 잠겨서 유영중인 하늘이 기대하는 내일은 파랗게 높아져서 그치겠지 하고. 덧붙여 지금 같아선 며칠 더 웅크려서 비가 오면 좋겠다. 이 저녁 비가 막 쏟아지면 좋겠다. 오래 기다렸거든.


참, 어쩌다 보니 커피 한잔도 못 마신 하루는 애석하기도 하다. 마침 비도 왔는데. 커피 물 올려야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밤바람이 창으로 넘어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