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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 Jul 05. 2020

감자

몇날 며칠 바구니에 담긴 감자를 보고 쪄 먹어야지 했는데 몇날 며칠 이른 아침 집을 나가기 바빴고 돌아오면 저녁바람 가을바람 같이 헐렁한 저녁이어서 쉬어가는 그 자리 그대로 있었다.


요즘의 여름은 7월이 와도 예전 같지 않다. 이 맘때의 열기 못지않게 장마라는 두글자가 들리기 시작할 때면 그때부터 불쾌한 끈적임이 달라 붙었을텐데 지금은 장마라는 이름이 무색하리만큼 서늘하다. 비도 안온다.


오늘 아침은 푹 느려도 좋아서 지나쳤던 감자를 보았다. 그리고 냉큼 씻어서 냄비에 얹혔다. 껍질은 까기 귀찮기도 했지만 자잘한 감자는 그냥 깨끗이 씻어서 까먹는 재미도 맛보고 싶었다. 감자냄새가 좋다. 고구마보다 진하고 달달하진 않치만 어디선가 풀 냄새가 나서 좋다.

문득 나 어릴적에 엄마가 쪄주셨던 보슬보슬 감자냄새가 난다. 표면이 마치 하얀 설탕 가루 같았다. 약간 노릇노릇하게 냄비에 닿은 부분은 유난히 맛있었는데 태우지도 않고도 살짝 카라멜 같이 달콤한 맛이었다.


엄마는 그때도 음식솜씨가 좋으셨다. 뭐든 다 맛있었고 우리를 건강하게 해주었다. 학교를 마치고 골목어귀에 들어서면 온통 엄마냄새가 났다. 나를 맞이하던 포근한 냄새. 그때부터 달렸던 어린소녀의 기쁜 얼굴도 겹친다. 양갈래를 묶은 곱슬머리도 달랑거리고. 등 뒤의 가방이며 손에 든 신발주머니도 이리저리 흔들리고 커다란 사탕같은 빨간 방울소리 아련한 어릴적 그대로.



감자, 설탕 찍어 먹는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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