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티+플레저

혼술에 관하여

by 쉼표


"속상해~ 도통 엄마 말을 안 들어" 이것은 밑밥.

"오늘 강의료 들어왔네!!" 이것은 명분.

"내일도 7km 뛰어야겠다, 오늘처럼" 이것은 합리화.


유행일 때는 언제고 '혼술은 의존증과 중독으로 가는 부정적 영향이' 어쩌고 저쩌고.....

난 그냥... 애 재우고 퇴근길에(아이방에서 부엌을 지나 안방으로) 한 병 챙겨 들고 핑계고 보면서 한 잔 하고 싶을 뿐. 기왕이면 기깔나게 술 돋는 안주도.

이 소소한 소망의 문제는.. 애는 10시가 넘어야 자고, 내 주종은 소주고, 소주를 달래 줄 안주는 보글보글.


늦은 밤 취식이라니

소주랑 국물이라니

칼질에 매운내라니


끝방남자(소속된 Room의 지정학적 위치로 구분해 본 남편의 애.칭.)의 무언의 삼단 눈치를 받으면

떨어져야 할 술맛이 오기와 버무려져 극강으로 끌어 오른다. 'Thanks MAN~'

불룩한 뱃살과 푸석한 피부를 감내하고도 내린 용자의 선택을 양심에 저울질해 죄책감으로 바꾸는 남자

이 밤 '길티'는 길고 '플레저'는 짧다.


나의 행동이 사회적/도의적 기준에서 살짝 쿵 벗어나게 될 때, 잠깐의 일탈만으로도 우린 온전한 플레저가 될 수 없는 서글픈 현실.

_ 욕구를 짓누르며 고행의 길을 걷는 다이어터가 불금에 먹는 분모자와 당면을 추가한 마라탕 2단계

_ 내 손 안의 작은 세상의 유혹으로부터 거진 이겨 온 수험생이 카톡 답장 대신 쇼츠에 응답하는 친절한 소통

_ 맥주 한 캔만 갈증 나서로 시작해 소주 한 병으로 끝나는 고단한 누군가의 혼술

네가 찌른 곳을 내가 한 번 더 찔러주는 솟아라 죄책감이여~

나에게 죄스런 맘이라도 품어야 정당방위로 내일은 훈방될 수 있을 거라 믿는 나약한 뻔뻔함이여~


해야 할 것과 하고 싶은 것 사이에서 '불온한 욕망'을 선택했다면 입장과 동시에 '반성, 후회, 질책'은 입구컷하고 이노센트 플레저가 되어 봄은 어떨는지.

나는 오늘부터 그리하려 한다.

악의 없는 기쁨을 위해 잔을 채우고 찌개 냄비에 "치얼스~"를 외치며 짠!

(짠! 한 김에 짠한형이나 볼까? 저들은 비싼 술을 먹는구나.. 쩝)

김혼비작가는 '아무튼 술'에서 술이 우리를 조금씩 허술하게 만드는 것이 좋다고 당당히 외친다. 그리고 작가는 조금씩 조금씩 조금씩 허술해 지다가 약과를 약통에 넣었다.

마라탕과 쇼츠와 술은 잘 못이 없다. 농도와 빈도와 회복이 문제가 될 뿐..

오늘 나에게 당당하지 못하면 내일은 숨고 숨겨야 한다.

술 마시는 게 부끄러워 자꾸 술을 마시는 어린 왕자의 드렁큰플래닛이 지구였으리라 합리적 의심을 해 보며..


긴 말은 삼키고 움직여라.

이 밤이 얼마 남지 않았다.

냉장고가 비었다면 배달앱을 열어라. 라이더님께는 벨 누르지 말아 주세요를 필히 작성하고(이건 몰래가 아닌 배려)...


오늘

나는

기꺼이

'떳떳지 않아도 괜찮다'는 말이 하고 싶었다.


(가장 아름다운 건배사) 위하여!








keyword
작가의 이전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