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딸에 대하여
“군대는 안 보내셔도 되겠어요.”
‘군대를 내가 보내나, 나라가 데려가는 거지. 그걸 멘트라고...’
뱃속 아이의 성별을 듣고 병원을 나서며 센스 없는 의사를 타박하고, 밥 먹으러 들어간 떡갈비집에서는 때늦은 입덧마냥 반찬투정을 해댔다. 그렇게 한 번 튀어나온 주둥이는 들어갈 줄 모르고 싱글거리는 반려인만 괜히 곁눈으로 흘겼다. 정말 못나고 웃긴 얼굴이었겠군.
당시엔 ‘세상이 험해서..’라고 얼버무렸지만, 십 년이 지난 지금도 왜 아들을 바랐는지 명확히는 모르겠다.
아마도 ‘딸’이라는 단어 때문이라고 미루어 핑계를 대어 볼 뿐. 삼키듯 느리게 굴리는 ‘아들’과 달리 똑 떼어내듯 빠르게 뱉는 소리 ‘딸’
나는 딸딸딸 중 두 번째 딸을 담당했다. 막내 남동생이 태어나기 전까지는 ‘딸만 셋’이라는 수식어가 김여사 님과, 우리 집 대문 앞에 엿처럼 늘 붙어있었다. 그때부터 누구 목구멍에서든 딸이라는 단어가 음성이 되어 나오는 게 달갑지 않았던 것 같다.
성별고지 이후 몇 달이 더 지나 아이는 의사 선생님의 능숙한 손길로 세상에 꺼내어졌고, 다시 들어가고 싶다는 듯 목청 터지게 울어 대는 그녀의 우렁찬 소리에 ‘나 엄마가 되어버렸구나’ 했다.
터질 것 같은 젖을 물리고 트림을 시키고 하루에 스무 개가 넘는 기저귀를 가는 쳇바퀴 같은 시간 동안은 머리카락에 붙이는 장신구 정도로 아이의 성별을 상기시킬 뿐, 시기마다 찾아오는 발달과제들을 수행하느라 바빴다.
여느 날 아장아장 걷는 딸을 지그시 바라보며 “넌 세상 편하게 살겠다~예뻐서~”라고 지껄이던 반려인을 오랜만에 눈 흘김으로 응수하고 나는 여자라는 한계를 두지 않고 키울 거라는 일방적 선언을 했다.
그런데 성역할의 한계 없는 육아란 무어란 말인가? 파란 옷을 입히고 숏컷을 하는 것?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은 하고 싶다는 것은 무엇이든 도전하게 하고 도처에 널브러져 있는 여성에 대한 의무와 시선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지 않게 하겠다는 것이었다.
근데 어떻게? 찾은 방법은. 내가 가진 결핍을 채워주는 것. 각종 전시, 공연 관람과 수영, 태권도, 승마, 바둑, 바이올린 등 종합기술인으로의 지원.
딸이기에, 딸이므로, 딸이라서 더 누리게 해 주고픈 것들이라며 차고 넘치게 부어주었다.
녹녹지 않았던 딸의 삶을 너는 모르게 하리라, 시어머님이 내게 제삿날을 알려주지 않으신 것처럼(제사의 종결) 여자를 나아지게 하는 건 여자라고 굳게 믿었다.
아홉 살 봄, 거실에서 티 없이 맑은 목소리로 “난 결혼 안 할 거야. 아이도 안 낳고 엄마랑 백 살까지 살 거야.”라며 해사하게 웃는 너를 보면서 나는 저릿한 신호와 불규칙한 박동을 느꼈다.
무해한 사랑을 받고 자란 아이의 구김 없는 발언에 왜 나는 온화한 지지가 아닌 서늘한 마음이 들었던 걸까? 아내도 엄마도 되지 않을 수 있는 네가 가진 선택지. 당연하게 여기는 너의 모든 것들이 사실은 내가 원하던 것이었다는 자각.
분명 나은 방향으로 가고 있는데, 그 길을 열어준 건 나인데, 수혜자는 내가 아니기에 샘이 난 거다. 언젠가 친정엄마가 “너는 좋겠다. 요즘 같은 시기에 결혼해 살림도 육아도 도와주는 남자랑 살아서...”라고 했던 말을 기억한다. 엄마는 내가 진심으로 부러웠던 거다. 내가 내 딸을 질투하는 것처럼.
오늘의 여자가 자유로워질 때 어제의 여자는 샘이 난다. 수호하는 마음과 다르게 빼앗고 싶은 욕심이 생긴다. 연대해야 하는 여자이지만 그 이전에 우린 여자라는 이유로 저마다의 서러움을 지녔기에. 꿈틀대는 미련을 엄마라는 이름으로 가엽게 질책했다. 고작 샘내는 거냐고, 그것뿐인 거냐고.
말캉한 작은 손을 조물 거리며 30년 만에 품었던 말 “내 딸”
나는 너를 계속 샘나게 키울 거다.
또 샘나게 지킬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