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 돈 내 산
“그대여~ 뭘 망설이나요~ 그대 원하고 있죠~ 눈앞에 있는 나알~♪”
ㅇ마트 43번 코너 위에서 세 번째 칸. 보라색 봉지에 담긴 날개 달린 것이 나를 향해 구애의 노래를 부른다. 나는 과감히 고개를 돌려 ‘깨끗하고 맑고 자신 있기까지 한’ 하얗기로 소문난 그것을 한가득 카트에 담는다.
6인 가족 중 4인이 여성이면 한 달 쌀값을 생리대값이 초월하는 현상. 즉 가계지출 중 생리대가 차지하는 비율을 일컫는 ‘매직지수(마법에 빠진다는 관용적인 표현을 빌려 엥겔지수처럼 만들어 봄)’가 상당함은 당연하다. 하여 본인의 어머님은 늘 가장 저렴하고 할인을 많이 하는 제품을 서랍에 아껴 써야 할 만큼씩만 채워두셨고, 날수에 따른 필요 흡수 용량은 무시한 채 묶음 할인 종류(소/중/대형)에 따라 생리대 교체 시간을 결정당해야 했다.
발진은 수시 통풍으로 심한 트러블은 연고로 버티며 5년(15세~19세) 인고의 시간을 보내고, 스무 살. 드디어 내돈내산!
청소년기 바보상자에서 체육복을 입은 소녀가 양팔을 하늘로 쭉 뻗고 활짝 웃더니 뜬금 “깨끗하고 맑고 자신 있게!”를 외치고, 해말갛게 돌아서는 그 아이의 가방에서 삐져나온 그것! (이런 칠칠치 못하게) 프리미엄 전략이었던지 도통 할인이 없어 착용할 기회가 없었던 바로 그것! 동경했던 그 물건을 사이즈별로 한 아름 안고 마트를 나서며 나의 성인식은 시작되었다.
역시 성인식은 고통스러운 의식인 건가?
나는 그 ‘하얀 것’을 통해 더욱 불쾌한 냄새와 부어오르는 통증을 견뎌야 했고, 알바생의 주머니 사정상 남은 한 장까지 뻘겋게 물들인 후 절교를 선언했다.
어엿한 직장인이 되어 스틸레토힐을 또각거리며 당당히 들어선 편의점 여성용품 코너에서 ‘organic’ ‘순면’ ‘유기농’이 큼지막하게 적힌 제품들 중 오직 내 살성만을 기준으로 하나를 고르고, “검은 봉지에 담아 드릴까요?”라고 묻는 직원에게 “아니요, 종량제 봉투 주세요.” 할 때는 잠시 잠깐 성숙에 버무려진 성공의 맛을 머금어 보았던 것도 같다.
여아가 소녀로 그리고 숙녀가 되는 동안 통과의례처럼 맞닥뜨린 장면의 푸르고 붉은 기억에 함께하는 애증의 소품들.
그리고 비로소 여인이 되던 날, 내 인생 최상위급 물건.
건네는 이의 축복이 담긴 표정과 ‘불량이 아니어야 해요.’ 단도리하듯 요리조리 상태를 확인하는 내 손길. 혹시나 하는 마음에 스페어까지 챙기고 약국 문을 밀치는 내 왼손에는 희망과 운명의 기운을 담은 힘이 불끈 솟아오른다.
20대엔 미숙함을 들킬까 조마하며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주문하고 약봉지에 감춰 후다닥 도망치듯 나와 그 웬수놈을 잡으러 빠른 걸음으로 내달리면서도 뒤통수가 뜨거워지는 민망한 경험을 했었는데, 스키니가 정장바지가 되는 시간 동안 둘이 셋이 될 준비를 마치고, 마지막 임신테스트기가 되기를 기도하는 마음으로 실전을 향해 내딛는 걸음에서 이미 엄마가 되어버린 비장함만이 만렙을 찍은 여자의 후광으로 성스럽게 빛이 난다. 그렇게 그것은 나에게 왔고 두 개의 선명한 줄로 벅찬 충만과 견딜만한 고통을 가져다주었다.
이렇듯 나의 시간은 낯선 물건들을 나만의 공식으로 분해하고 해석하며 받아들이는 순서로 흘러왔다. 앞으로 얼마나 더 하드코어 한 것들이 내 파우치에 담길지 몹시 설레고 심히 두렵지만, 정답은 없다는 거. 너의 서툼이 영원하지 않다는 거. 주춤대던 손길로 어느새 나도 노련한 어른이 되었다는 거. 어른 거 별거 아니라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