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ick!!
사람들은 정치와 신,
사랑에 대해 지루한 거짓말을 늘어놓지.
어떤 사람에 관해 알아야 할 모든 것은
한 가지만 물어보면 알 수 있어.
‘가장 좋아하는 책은 무엇입니까?’ 「섬에 있는 서점」
“음.. 내가 좋아하는 책은~~ 감보다는 달고 배보다는 덜 하면서 비가 올 듯 물기를 잔뜩 머금은 공기에 꽃은 필락 말락. 성시경의 부드러움에 손석희의 날카로움, 와인보다는 소주에 가깝고 다큐멘터리인 줄 알았는데 예능이었던, 조소보다는 실소를 일으키는.. 그래서 말문이 막히기보다 수다쟁이가 되어버리는 뭐,, 그런 거.”
“난 어떤 사람이야?”
책 한 권으로 인생 MRI를 하려는 사람을 만나면 부러 심통을 부리고 싶어진다. 삐져나 온 벨트처럼 순순히 바지 구멍에 끼워지고 싶지 않은 마음.
최근 자신의 두 번째 직업이 ‘책 처방사’라는 서점지기 정지혜작가의 책을 읽었다. 책 처방 신청이 오면, 신청자가 작성한 ‘책 문진표’를 꼼꼼히 살펴 취향을 파악한 후 책을 처방한다. 책에 관한 지식과 통찰의 내공이 퍽 부러웠다. 그리고 두려웠다. 혹여 오진으로 처방된 책이 있을까 봐. 벼랑 끝에서 읽는 책 한 권의 기대를 너무나 잘 알아서 그 힘을 더 잘 알아서..
나도 책이 구원이 되리라 믿었던 시절이 있었다. 10대의 교과서가 20대의 연애소설이 30대의 자기 계발서와 육아서가.. 돌아보니 늘 섬기고 따랐다는 말이 맞겠다. 필사적으로 읽고 들춰보고 답을 구하려 애쓰던 시간들.. 술 한잔이 근심을 잊게 해 주리라 믿으며 한 잔 더 채우고 한 잔 더 채워보는 느슨한 간절함이 묻어나는 반복적인 행위처럼 한 장 더, 한 권 더 스스로에게 거는 최면으로 쌓아 온 책의 기억들.
그 지난한 경험을 통해 이젠 안다. 어떤 책도 인생의 답을 담고 있지 않음을. 원대한 질문을 품고 뒤적이는 손일수록 모래처럼 지나쳐 버린다는 것을. 그럼에도 나는 매일 책을 읽는다. 책으로서 즐긴다. 호모루덴스의 본능을 유튜브, 멜론 그리고 책으로 충실히 지킨다.
서점에서 도서관에서 책장에서 “코카콜라 맛있다. 맛있으면 또 먹지, 딩동댕동 척척박사님이 알아맞혀 보세요~”를 부르면서 어느 책을 읽을지 고르며 맘껏 설레고, 페이지가 더디 넘어가는 책은 과감하게 던져버리고, “야 너도?”를 외치며 실컷 책 이야기만 하기도 한다. 즐기는 자가 승자라는 깨달음 이후 손주 바라보듯 책을 사랑하게 되었고 만오천 원 안짝으로 즐기는 유희에 어느 밤엔 하늘을 올려다보며 구텐베르크 님께 감사 인사를 구시렁거리기도 한다. (맨 정신에)
나에게 책은 놀이다.
그러므로 인생영화 한 편으로 그 사람의 상황을 스캔하려 하지 않듯 책 제목만으로 무르팍 도사가 되려는 시도는 넣어두시길. 김밥천국에서 제일 맛있는 김밥을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메뉴판에 있는 모든 김밥을 먹어 본 사람이다. 난 아직 모든 책을 읽어보지 못했으므로 원픽은 어렵겠다고 핑계를 대어 본다. 오늘 기준 가장 좋은 책을 말하기도 조심스러운 건 내일 최애를 갱신할 것 같은 책통사고를 기다리는 마음. 내가 좋아하는 책은 머물러있지 않다. 흐른다. 날씨에 따라 수면의 질에 따라 만난 이에 따라 바뀐다.
내가 읽기를 관두지 않는 한, 수많은 라이터들이 글쓰기를 멈추지 않은 한, 배보다는 덜 달지만 감보다는 단 성시경도 손석희도 담겨있는 소주 같은 취향 저격 책을 계속 만나겠지?
그리고 나의 코카콜라도 다시 시작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