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판

- 행복한 결혼 생활

by 쉼표

국립대 중앙도서관 8열 오픈 테이블, 4시 40분. 연두색 카디건을 입은 그.

손바닥만 한 아이리버 전자사전을 꺼내 노트북마냥 열어 놓고, 주머니에서 사등분으로 곱게 접힌 종이 쪼가리를 꺼내 펼친다. 나는 사냥을 앞둔 맹수의 표정으로 삼십 분째 그를 보고 있다.

‘그래, 바로 너야.’


시간을 거슬러 1998년 광주의 모 공립중학교 1학년 3반 교실.

파란색과 남색의 어디쯤엔가 존재하는 체크무늬 교복 치마에 세일러문 카라 블라우스를 입고 귀밑 3센티 단발머리를 한 내가 맑고 맑은 눈빛으로 그를 흘깃거린다.

이름이 ‘노인균’이라 늙은 균이라는 슬픈 별명으로 불리던 그 사람.

詩가 뭔지도 몰랐던 중학생 소녀에게 세상 모든 시를 읊어 주던 나의 첫 남자.


4년 뒤, 2002년 광주의 모 사립고등학교 2학년 7반 교실.

회색 바탕에 붉은 격자무늬 교복 치마와 짧은 카라 셔츠를 입고 긴 머리를 하나로 질끈 올려 묶은 내가 또 한 남자를 흘깃댄다. (왜 똑바로 보질 못하니)

보길도가 고향이라며 수업 시간의 절반 이상을 ‘내 사랑 보길도’를 노래하는 그 사람.

그 사람과 함께 메밀꽃 필 무렵 어느 운수 좋은 날 떠났던 무진기행.

여기까지였다면 우연으로 믿었을진대 고2에 생긴 새 과목 선생님이 내 눈에만 성시경인 고로 알아채 버린 나의 취향.


나는... 나는, 국어 선생님이라면 일단 좋아하고 본다.


내 눈에 성시경 필터를 씌운 그는 비문학 담당으로 늘 빈폴 옷을 입었고, 수업 시간에는 한 손은 교과서를 말아 쥐고 다른 한 손은 바지 호주머니에 찔러 넣은 채, 책상 사이를 어슬렁 걸으며 사회/과학/역사 등의 들어도 모를 지문들을 세상 나긋한 목소리로 연애편지처럼 읽어 주었다. 고등학교 내내 나를 설레게 했던 그분.

한 번이라도 더 보고 싶어서 시중에 나와 있는 문제집 중에 문법적 오류가 가장 많기로 소문난 것을 구해 질문을 찾고 또 찾아 쉬는 시간이면 교사연구실로 달려갔던 나의 편향적 애정관. 지금은 이름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슬픔에 작명 솜씨를 발휘해 ‘박 철’이나 ‘김 민’ 같은 국어교육과에 한 명쯤은 있음 직한 기억의 명찰을 달아 준다.


그리고 스무 해가 지난 오늘,

나는 대학교 도서관에서 카디건 핏에 반해 내가 먼저 들이대 쟁취한 공대 토목과 출신의 ISTJ 남자와 매일 이성적인 내일을 계획하며 살아가고 있다.

비록 시는 전국 팔도 광역시만 빠삭하게 알고 있고(그의 직장은 도로공사) 1964년 서울의 겨울은 경제 개발 5개년 계획의 중심지로만 알고 있지만(아.. 김승옥작가님~) 문과 남자가 아닌 유일하게 내 마음을 빼앗은 공학 계산기 두드리는 이 남자.

오판이었을까? 운명이었을까?

클래식과 문학을 사랑하고 꽃향기를 맡으면 힘이 솟는 내가, 오와 열 칼 각에 안심하고 법령을 찾으며 지식을 충전하는 그와 함께 하기로 파뿌리의 백년가약을 맺은 건.

대학 입학과 함께 맥이 끊긴 국어쌤들과의 인연 때문에 내린 선택이라면,

남은 내 삶에 단어의 어원 썰을 풀어내는 니트입은 국문과교수님이 부디 나타나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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