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첫 교통사고
끔벅 끔벅 끔..벅
...
‘귀 아파. 머리가 더 아픈가.’
정신을 차리고 기억해 낸 마지막 장면은
좌회전 신호, 초록, 주황 그리고 반대편에서 돌진하는 검은 차. 끼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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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2학년 때의 일이다. 누구도 피할 수 없었던 IMF라는 국제대부업체가 아빠를 회사원에서 자영업자로 만들었다. 살던 광주를 벗어나 곰탕이 주 종목인 나주에 보성 녹차를 먹인 삼겹살집. 식당 오픈 후, 장사 경험이 전무한 아빠는 가게 안팎의 보조 역할을 맡았고, 종종 잔소리가 담장을 넘긴 했어도 고분히 살림과 육아를 전담했던 엄마는 참이슬이 적힌 빨간 앞치마를 두르고 무쇠 불판을 한 손으로 거뜬히 드는 가장이 되었다.
‘너희 집도? 우리 집도~’ 하던 그 시절 철없는 사남매는 고기는 실컷 먹겠다며 사업자등록증의 업종/업태를 두 손 벌려 환영했다는 후문.
학교는 광역시로 다녀야 한다는 부부의 합치된 의견으로 나와 여동생은 나주에서 광주로 시외통학, 언니는 고등학교 기숙사 생활을 시작했다.
집에서 학교까지는 약 40분, 어린(?) 딸들의 이른 등교가 안쓰럽고, 24시간 엄마 보조를 하는 당신 스스로는 더 안쓰러웠던 아빠는 가끔 출퇴근용이었던 은색 엘란트라로 광주-나주 시외도로를 신나게 달려주었다. 전 좌석 안전띠가 시행되지 않았던 때, 나는 아빠가 차 키를 챙길 때면 드라이기를 멈추고 젖은 머리째로 냉큼 차에 올라탔다. 뒷좌석 창문을 끝까지 내리고 머리칼을 밖으로 꺼내 자연 바람에 스릴 넘치게 드라이~~ 두피까지 시원~~ 해지는 자유함. 지금 생각해 보면 참으로 기이한 모양새에 뒤따라오는 차들은 개일까? 귀신일까? 하다가 어쩌면 한문철의 블랙박스에 외곽도로 민폐녀로 등장했을 듯하다.
무튼 아빠와의 등굣길은 이렇듯 쿵짝쿵짝 합이 잘 맞았다.
그날도 학교 앞 사거리 아슬아슬한 좌회전 주황 신호에서 아빠는 대차게 드래프트를 시전 했고 못지않았던 반대편 직진남은 초록빛에 세차게 액셀을 밟았다. 그리고 블랙아웃.
“엄살 그만 떨고 학교가, 엄마한텐 비밀로 하고.”
“여기랑 여기... 아픈데, 눈물도 나는데,”
“놀라서 그래. 사고도 안 났는데 어디가 아프다고 울기까지 해~ 빨리 들어가. 늦었어.”
‘진짜 아픈데, 사고가 안 났다고? 번쩍 별도 봤고 잠시 잠깐 기억도 안 나는데,’
멀쩡한 아빠와 동생이 쏘아대는 눈빛에 더는 말을 삼키고 스멀스멀 주섬주섬 차에서 내릴 짐을 챙긴다. 날 뻔! 했던 사고는 베스트(?) 드라이버의 순발력으로 무사했다고... 나의 통증엔 관심조차 없는 운전석의 아저씨(이쯤 되면 아빠 아님)가 신나게 무용담을 늘어놓는다.
서운함과 찜찜함을 안고 덜컥 문을 열고 내리는 찰나, 교복 치마에서 툭 떨어지는 크고 둥그런 모과. 설익어 몹시도 딴딴했던 디퓨저용 모과. 왈칵. “이 씨...”
“아프다고!!!! 아프다고!!!! 모과에 맞았다고!!!! 여기 혹 났다고!!!! 엄마한테 다 말할 거야!!!!!”
그날 이후 정기사님 딜리버리는 종료되었고, 본격적으로 시작된 나의 사춘기에 옆 짱구는 다 아빠 때문이라고 돌이킬 수 없는 부녀의 골은 점차 깊어만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