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텀프타운, Porchlight Coffee, Nouveau Bakery
시애틀에서의 첫 아침이 밝았다.
새벽에 많이 추워서 두 시간마다 깼던 것 같다. 낯선 곳에서 편히 잘 못 자는 타입이라 그런 것도 있고.
처음 방에 들어와서 옷장을 열어보며 왜 담요가 두 개씩이나 있는지 의문이었는데 하룻밤이 지나고 나서야 의문이 풀렸다. 오늘 밤에는 이불 아래쪽에 담요 두 겹을 먼저 덮고, 그 위에 이불을 얹어서 자야겠다.
아침식사를 7시부터 주기 때문에, 6시부터 일어나서 슬슬 준비를 했다. 원래 일찍 일어나는 아침형 인간은 절대 아니지만, 낯선 곳 에서의 첫날밤이다 보니 긴장감과 설렘에 알아서 일찍 정신이 들었다.
7시가 되자마자 잠옷 차림으로 호텔 일층으로 내려갔다. 말이 호텔이지, 시설 좋은 편에 속하는 모텔 정도여서 크게 기대를 하지는 않았다. 대충 토스트에 잼 정도만 있겠지.
생각보다 풍성했다. 냉장고엔 각종 요거트와 우유, 그리고 테이블엔 네다섯 가지의 빵들이 있었다. 그리고 커피와 다양한 티까지 준비되어 있었다. 곰곰이 생각할 겨를도 없이 일단 냉장고에서 블루베리 요거트를 하나 꺼냈고, 크루아상 하나와 머핀을 집었다. 그리고 잉글리시 블랙퍼스트 티백을 하나 꺼내어 뜨거운 물에 담가 두었다.
조금은 허겁지겁 빵을 먹었다. 미국으로 넘어와 아직 식사를 제대로 하지 못해서 뭔가 끝을 알 수 없는 허기의 구덩이에 빠져있는 기분이었다. 벽에 붙어있는 아이패드에서 유유히 흘러나오는 느릿한 음악과는 반대로 허겁지겁 아침을 먹고 방으로 돌아와 오늘 하루의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어느 카페를 가볼까"
스텀프 타운 커피를 가보기로 결정했다. 여기는 한국에도 꽤 알려진 곳이고 서울에서도 마음만 먹으면 이곳의 커피를 찾아 먹어볼 수 있는 로스터리 카페이다. 참고로 미국 3대 스페셜티 커피 중 한 곳이다.
지도를 보니 버스로 두 정거장 정도밖에 안돼서 걸어가기로 결정했다. 가는 길이 내리막길 이어서 생각보다 금방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한 20분 정도 노래를 들으며 천천히 걸어 내려왔다. 생각보다 입구가 작았고, 주변이 조용했다. 그런데도 이미 손님들이 매우 많았고, 주문하려면 줄까지 서야 했다.
Drip Coffee를 하나 주문하고 기다렸다. 여기서 한국 카페와는 다른 점이 있다. 미국에서는 필터로 꽤 많은 양의 커피를 미리 내려놓고, 조금씩 따라서 주는 방식의 커피가 기본 메뉴로서 매우 활성화되어 있다. 스타벅스에서 ‘오늘의 커피’ 도 이런 방식인데, 몇 년 전부터 한국의 몇몇 큰 카페들도 배치 브루(Batch Brew) 방식으로 대용량 미리 필터로 내려놓고, 조금씩 따라서 주는 방식을 도입해 오고 있다. 대표적인 예로 카페 어니언(onion)을 들 수 있다.
그러나 아직도 한국에서 Drip Coffee 라 함은, 바리스타가 주문이 들어옴과 동시에 커피콩을 갈아서, 다양한 드리퍼(Dripper)를 이용하여 뜨거운 물이 든 주전자로 직접 내려주는 커피를 생각한다. 그래서 그런지 대부분의 한국 카페에서 드립 커피는 다소 어려운 영역처럼 보일 수 있어서 일반인들이 관심 갖기가 어려운 분위기인 것 같다. 개인적으로 우리나라에서도 드립 커피라는 인식이 조금 바뀌어 다양한 배치 브루의 드립 커피들을 취급하는 카페가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본론으로 돌아와 음료를 주문하고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여행을 하면서 여행 중이라고 티 내고 싶어 하는 성격이 아니다. 대놓고 관광객처럼 사진을 이리저리 막 찍어대는 스타일도 아니고. 물론 귀국해서 사진을 많이 찍어 놓지 못한 걸 후회하지만 말이다.
시애틀에 위치한 이 스텀프 타운은 특히나 매장이 매우 작고 사람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어서 사진을 거의 찍지 못했다. 어떻게 찍어도 사람들이 항상 앵글 속에 들어왔고, 그들도 썩 내켜하지는 않았으리라. 내가 주문한 커피를 받아서 매장 밖으로 나왔고, 찍은 사진이라곤 간판과 내 음료 사진이 전부였다.
맛은 기본적으로 무난했고, 산미가 있는 그런 커피는 아니었다. 그냥 일반적으로 구수한 느낌의 보리차. 그러나 너무 가볍지 않은 느낌. 분위기 자체가 매우 젊고 힙했다. 일하는 분들도 고객들도 매우 스타일리시하고 화려한 분들도 많았다. 나에게는 조금 불편한 자리였을지도 모른다. 조금 친근하고 아늑한 분위기가 아닌 힙하고 조금 시끄럽고, 주변에 그냥 서서 마시며 대화하는, 약간은 정신없는 분위기였기 때문이다.
근처에 저장해둔 카페가 하나 더 있었다.
Porchlight coffee
여기는 유명하거나 그런 건 아니지만, 그냥 구글 맵에 등록되어 있길래 찾아보다가 올라와 있는 매장 전경이 너무 맘에 들어서 저장해 두었었다. 실제로 가보니까 생각보다 더 작았지만 손님이 많지 않아 자리가 여유 있었다.
특히 여기는 매장 전면이 유리로 되어있어서 햇빛이 정말 잘 들어와 매장 전체를 비추고 있었다. 이게 정말 맘에 들었다. 햇살이 적당히 들어오는 자리에 있는 소파에 앉아서 콜드 브루 한잔을 마셨다. 저 멀리 매장 한편에는 LP들이 진열되어 있었고, 몇 가지 소품과 티셔츠 등 MD 들도 진열되어 있었다.
소파에 앉아서 햇살을 즐기며 여유를 부리고 있는데, 강아지들과 견주들이 들어왔다.
이 동네에서 신기했던 것은 대부분 카페가 애견 출입이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나는 강아지를 너무 좋아하기 때문에 나한테는 정말 좋은 소식이다.
어쩌다 보니 한 견주가 내가 앉은 소파를 공유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강아지는 여기저기 들쑤시고 다니다가 결국에는 주인 옆에 앉아있는 나한테 와서 무릎에 앉기까지 했다. 난 그저 좋았고, 한국말로 놀아주었다.
옆에 앉은 견주는 나에게 말을 걸었다. 어디서 왔고, 학생인지 여행객인지. 어쩌면 그는 단순히 인사치레의 행동이었을지도 모르겠지만, 나에게는 고마운 관심이었다. 카페를 투어 하기 위해 시애틀에 왔고, 포틀랜드로 갈 예정이다 라고 얘기하니까 굉장히 멋지다고 부럽다고 얘기해주었다. 물론 내 무릎에는 여전히 강아지가 앉아 있었고 나는 자연스럽게 머리를 쓰다듬으며 견주와 대화를 했다.
적당히 대화를 나누고 밖으로 나왔다. 아직 햇살이 눈부시게 빛나고 있는 거리.
아침부터 두 카페를 돌아다니며 에너지를 썼더니 조금 피곤함을 느꼈다. 돌아가기로 결정.
돌아가는 길에 유명한 빵집을 하나 들리기로 했다. 왜냐하면 돌아가는 길목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여기는 꽤 유명한 Nouveau Bakery
사람이 매우 많고 정신없다. 자리는 물론 없고.
각종 샌드위치들부터 베이커리, 디저트까지 모든 게 있었다.
빵을 몇 개 포장해서 신나게 들고 가는 중
오늘 길에 날씨도 좋고 기분도 좋아서 거리를 찍어봤다.
드디어 숙소에 도착.
아침 일찍 나와서 돌아다니니까 하루가 길게 느껴지지만, 대낮인데 벌써 피곤함을 느끼다니.
나이는 못 속이나 보다.
잠깐 쉬고 저녁에 다시 나갈 예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