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내가 여기에 있게 된 경로를 생각해보다.
영어영문학과 진학 후, 전공에 대한 탐구보다는 연애를 하며 사랑과 실전 인문학에 집중했고 군대를 다녀오고 나서는 건축과 미술에 대한 관심으로, 학교에서도 이례적으로 영문학과 건축을 복수전공 허락을 받아냈다. 그 흥미는 1년으로 마무리되었지만 말이다.
그러고 나서 졸업 직전까지 완전히 빠져있던 것은 바로 브랜딩(Branding).
사랑과 이별을 통해 끝없이 공부했던 심리학, 그리고 보이지 않은 힘들과 문화에 관심이 많던 나는 서점을 가서 둘러 보다가 유니타스브랜드라는 회사에서 출판된 BRAND, B자 배우기라는 책을 우연히 읽게 됐다.
아 이거다. 계속 읽고 싶은 책.
집에 가서 그 날 단순히 읽어 버렸고, 그날부터 내 뇌와 시야는 변화하기 시작했다. 다른 눈 하나가 더 생겼다고 해야 할까.
유니타스 브랜드의 다른 볼륨들을 구매해서 읽기 시작했고, 당시 용돈 생활을 하는 나에게는 책의 가격이 조금 부담스러웠기 때문에 도서관에 없다면 서점에서 다 읽어버리기도 했다. 전부는 아니지만 많은 볼륨들을 구매하거나 빌려서 읽었고, 권민 대표님이 진행하는 일종의 강연 같은 것도 들으러 갔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브랜드로 이루어져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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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드.
어릴 때까지만 해도 브랜드라는 용어보다는 메이커라는 단어를 자주 쓰곤 했다. 유명한 회사에서 만든 제품을 보며 메이커라고 부르며 떠오로는 이미지는 비싼 가격이었다. 그리고 그 메이커라는 단어는 아무나 살 수 없다는 느낌과 메이커를 사용하지 않는 사람들과 차별화까지. 지금 생각해보니 어릴 때부터 우리는 우리가 사용하는 물건을 통해 우리를 표현하려 했었고, 타인과 구별하려고 했었던 것 같다.
이건 겨우 중학생 때의 기억이다. 리복이라는 스포츠 브랜드가 아무나 살 수 없는 비싼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고, 아식스나 프로스펙스 신발보다 비싼 고급의 신발이라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다. 당시 메이커에는 전혀 관심 없었는데 어느 날 비싼 신발을 보고 애들이 모여서 구경하고, 친해지려고 하는 모습을 보고 처음으로 이런 생각을 했었다.
"내가 리복 신발을 사 오면 애들이 부러워하고 나랑 친해지고 싶어 하겠지"
결국 이때 엄마를 졸라 흰색 리복 운동화를 약 8만 원이라는 거금을 내고 살 수 있었고, 그걸 신고 등교하는 날에는 내 콧대가 높아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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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졸업을 한 학기 남겨두고 진로를 한참 고민하고 있을 당시, 브랜딩을 하는 회사에서 카페를 오픈한다는 소식을 듣고, 회사 자체에 관심이 생겨 면접을 보게 되었다. 그렇게 첫 카페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당시 4학년 2학기를 준비하고 있던 나는 학교에서 배우는 영어 번역보다는 회사에서 느낄 수 있는 실무와 카페 창업과 브랜딩을 훈련하는 것이 훨씬 좋겠다 싶어 졸업 조건 정도만 채우고 일에 집중하게 되었다. 그렇게 나는 커피를 시작하게 었던 것이었고, 그렇게 시간이 흘러 흔히 커피 쟁이라 불리는 사람 중 한 명이 되었다.
처음부터 이렇게 커피를 깊게 파고 들 생각은 아니었다. 브랜딩과 창업에 관심이 많았던 나는, 사람과 공간을 만들어가는 커피라는 매개체가 굉장히 매력적으로 느껴졌고, 간단히 이용해야 할 소재 정도로만 커피를 생각했었다. 그러나 업으로서 바리스타의 일을 하다 보니 대충을 할 수 없겠더라.
진지하게 실력을 쌓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여전히 많은 경험을 하려고 노력 중이다.
이렇게 과거를 적어보게 된 계기는 우연히 컴퓨터 메모장에 과거에 내가 쓴 브랜딩에 관한 글 때문이었다. 내가 이렇게 글을 잘 썼었나 싶을 정도로 재밌게 읽었다.
그리고 다시 잊고 살았던 브랜딩과 마케팅에 빠지려고 한다. 그냥 커피 하나에만 집중하며 살다 보니 자연스레 시야가 좁아지는 것 같다. 예전에 보이던 것들이 이제는 잘 안 보인다.
브랜딩 : 커피 = 5 : 5
앞으로 내 인생을 이렇게 나눠보려고 한다. 지금까지 약 4년 동안 커피만 보고 살았다.
커피를 만나기 전의 나와, 커피를 접하고 나서의 나와 이제는 합쳐져야 할 시기인 것 같다.
다시 브랜딩에 빠지기 전, 나름 다짐의 글을 짧게 적어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