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트로 노마드(metro nomad)

기후동행카드의 부수 효과

by 진구

'기후동행카드'는 한 번의 요금 충전으로 사용 기간 동안 대중교통(지하철, 버스), 따릉이를 무제한 이용할 수 있는 통합 정기권이다. 탄소 배출 감소와 교통비 절약을 동시에 실현하는 서울시의 야심찬 공공사업이다.




기후동행카드의 존재는 1년 전부터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동안 쓰지 않았던 건 내가 사는 일산에서 서울까지 3호선 구간에선 기후동행카드가 적용이 안 됐기 때문이다. 게다가 얼마 전까지 일산에 직장이 있어 출퇴근 시 대중교통을 이용할 일도 없었다.


그런데 2024년 11월 30일부로 3호선에서도 기후동행카드 사용이 가능해졌다는 소식을 들었다. 게다가 3월부터 서울로 출퇴근하게 되었다. 지하철과 가까이 지내야 할 이유가 생긴 것이다. 본격적인 업무 시작 전에 새 직장에 몇 번 왔다 갔다 했는데 지하철에서 보내야 하는 시간이 확실히 늘었음을 실감했다.


내 경우, 일산에서 서울에 있는 직장까지 하루 지하철 왕복 비용은 3,400원이다. 주 5일 출근, 한 달을 최소 4주로 잡았을 때 교통비를 계산하면 3,400×5×4=68,000원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출퇴근할 때만 지하철을 타진 않는다. 회사에서 바로 퇴근하지 않고 다른 역에 내려 근처 카페에서 추가 작업을 하거나, 개찰구를 통과했는데 갑자기 계획이 바뀌어 다시 출구로 나가는 등 추가된 교통비를 반영하면 한 달 교통비가 금세 10만 원에 달할 것이다.


그러나 이제 30%~50% 할인된 가격에 대중교통을 무제한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보름 전 발급받은 기후동행카드 덕이다. 한 달 55,000원(청년 할인)에 3호선을 포함한 서울 지역 버스와 지하철을 무제한으로 탈 수 있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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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기후동행카드의 진정한 효용은 교통비 절감을 넘어, 버려지는 시간을 '어떻게든' 활용할 수밖에 없는 물리적 환경으로서 지하철을 '더 자주' 이용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다.


우선 지하철에 있는 동안에는 글쓰기나, 전자책 읽기 같이 꾸준히 해야 하지만 따로 시간 내서 하기 어려운(귀찮은) 일을 처리하는 데 효과적이다. 사람들도 많은 데다 스마트폰 외엔 편하게 사용할 수 있는 도구가 마땅히 없기 때문이다. 반강제적으로 자투리 시간을 생산적으로 활용할 수밖에 없다.




위와 같은 지하철의 장점과 기후동행카드의 무제한 이용 가능성을 결합하면 지하철 안에서의 자투리 시간을 더 자주, 그리고 적재적소에 마음껏 활용할 수 있게 된다.


예를 들어, 집에 있거나 장소를 옮길 때 선뜻 일을 시작할 엄두가 안 날 경우, 내 경우에는 억지로 일을 하려고 아등바등 대는 것보다는 지하철을 타서 위와 같은 작업을 하는 게 편할 때가 많다. 틈틈이 뭐라도 해냈다는 작은 성취가 관련 없는 다른 일을 하는 데 의지를 불어넣는 부수 효과를 유발하기도 한다.




교통비 부담과 작업 공간의 제약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는 물리적 환경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기후동행카드는 임대료 걱정 없는 제3의 작업 공간을 마련해 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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