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미(昏迷)

by 진구

요즘 들어 '칼퇴'의 필요성을 절감한다. 마감이 임박한 일을 처리하는 경우가 아닌 이상 회사에서 일을 오래 붙잡고 있을수록 뇌의 '연비'가 감소한다.




집에 와서 더 일하는 한이 있더라도 직장에서 머무는 시간을 스스로 끊어낼 줄 알아야 한다. 그래야 적절한 타이밍에 업무를 처리하여, 일의 우선순위를 효율적으로 배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동료 직원들에게 내 업무와 관련한 프로그램 참여 독려 메시지를 보낸 적이 있다. 희망하는 직원이 알아서 신청하라고 전달하려 했는데, 마치 내가 다른 사람의 신청까지도 도맡아서 하겠다는 식으로 내용을 작성한 것이었다. 1분이 지나고서야 잘못 보냈음을 알고, 메시지를 즉시 회수해 본래 의도대로 수정하여 다시 보냈다.


이런 류의 업무는 맑은 정신에서는 좀처럼 실수를 안 하는데, 퇴근할 때가 가까워지다 보니 판단력이 흐려진 듯하다. 나이를 먹을수록 이런 현상이 더 심해지고 있다.


비단 업무뿐 아니라 책을 읽을 때도 마찬가지이다. 특히 높은 인지 자원을 투입해야 하는 양서의 경우, 아침과 저녁에 읽을 때 읽는 느낌이 사뭇 다르다. 퇴근 직후 책을 보면 간단한 내용조차 핵심 내용을 추출하는 게 잘 안 될 때가 있다.


밥 먹고 운동하고 명상하는 등 뇌에 에너지를 불어넣는 온갖 노력에도 불구하고 뇌에 낀 '안개'가 좀처럼 개선될 기미가 안 보였다. 그래서 이날 잠을 7시간가량 자고 다음날 새벽에 일어나 책을 읽었더니 전날 읽은 내용을 포함하여 다른 부분도 대체적으로 이해가 잘 됐다.


정확성과 꼼꼼함을 요하는 행정 업무는 머리가 잘 돌아갈 때 처리하는 게 유리하다. '머리가 잘 돌아간다'라는 뜻은 이성적, 논리적 사고가 잘 이루어지는 시간을 뜻한다. 이를테면 내 경우는 이른 아침에 해당한다.





그래서 업무의 중요도뿐 아니라 일의 특성을 고려하여 그날 해야 할 일을 '스케줄링' 한다. 퇴근 후에는 가급적이면 행정업무를 안 하고(일차원적이지만 긴급한 잡무는 예외다.) 대신 이날 회사에서 있었던 일을 되돌아본다. 더 효율적인 업무처리 방식을 생각해 내거나, 조금은 느리더라도 아이디어를 도출하는 데 시간을 쓰는 식이다.


물론 그날 컨디션이나 회사 돌아가는 상황에 따라 오전에 해야 할 업무도 밤늦게 해야 하는 경우가 있을 테다. 중요한 건 '생체 시계'를 고려해 더 적은 노력으로 더 높은 효율을 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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