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직함은 좋은 성격과 나쁜 성격, 가치관을 결정한다
몇 년 전, 지인과 함께 집에 가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거짓말’에 대한 주제가 나왔다. 그때 지인이 내게 이렇게 물었다.
“너는 왜 정직하게 살려는 거야? 속이는 게 뭐 어때서.”
정직이 중요한 가치라 여겼던 내게 뜻밖의 질문이었다. 일 잘하고, 사교성 좋고, 창의적인 것을 다 떠나서 남을 속이지 않고 겸손할 줄 아는 게 최고의 미덕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법을 어기거나 남을 속이면서 이익을 챙기는 것이 생존 전략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내가 고수하던 있던 정직의 가치를 낮게 보게 되었다. 게다가 지나친 정직과 겸손은 융통성 없다는 평가로 돌아올 수 있다.
하지만 정직이 미덕이냐 아니냐를 떠나서 심리학계에서 말하는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있다. 바로 ‘정직-겸손성(H factor)’이 성격의 선과 악을 가르는 중요한 지표가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성격 심리학을 다룬 책《H 팩터의 심리학》에서 그 단서를 찾았다.
성격의 6가지 요인, HEXACO
최근 성격 심리학자들은 인간의 성격을 여섯 가지 요인(factor)으로 분석한다. 기존 성격 심리학자들이 제시한 5가지 성격 모델, '정서성(Emotionality)', '외향성(eXtraversion)', '원만성(Agreeableness)', '성실성(Conscientiousness)', '경험 개방성(Openness to Experience)'에 '정직-겸손성(Honesty-Humility)'을 추가한다. 그리고 각 성격 요인의 앞의 처음 또는 두 번째 글자를 따서 6가지 성격 모델을 ‘HEXACO’(헥사코)라고 명명한다.
성격의 '선악'을 결정하는 정직성(H 팩터)란?
'정직-겸손성(이하: 정직성)'은 남을 속이거나 조종하지 않고, 타인을 착취하지 않으며, 부나 명품, 사회적 지위를 과도하게 추구하지 않으려는 성향을 뜻한다. 정직성이 높으면 솔직하고 겸손하며 남을 배려하는 태도를 보이고, 반대로 정직성이 낮으면 교활하고 가식적이며, 자기 이익을 위해 남을 이용하려는 모습을 드러낸다.
흥미로운 점은 정직성이 다른 요인과 결합했을 때 성격의 색깔이 크게 달라진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정직성이 낮고 외향성이 높으면 권력을 얻기 위해 남을 조종하는, 이른바 ‘나르시스트’ 성향이 나타난다. 반대로 정직성과 외향성이 모두 낮으면 은둔적이면서도, 동시에 지위와 부를 과시하려는 엘리트적인 성향을 보이기도 한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정직성은 성격의 ‘좋고 나쁨’을 결정하는 요인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나머지 5개의 성격 요인은 성격의 '호불호'를 결정하지 않는다. MBTI가 성격을 16가지로 나눈다고 해서 그것이 좋고 나쁨을 의미하지 않는 것과 같다. 외향적이라고 무조건 좋은 것도, 내향적이라고 해서 반드시 올곧은 것도 아니다. 그러나 정직성은 다른 요인의 효과를 증폭시켜 타인에게 이롭거나 해로운 성격으로 발현된다.
가치관을 결정하는 정직성과 개방성
정직성과 조합하여 가치관을 결정하는 요인이 하나 있는데 바로 개방성이다. 책에서는 가치관에 강하게 직결되는 성격 요인이 '정직성', '개방성' 단 둘 뿐이라고 한다. 여기서 말하는 가치관은 추상적인 개념이 아닌 친밀도라고 생각하면 된다. 정직성과 개방성의 결이 비슷한 사람들과 끼리끼리 어울리려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흔히 “코드가 잘 맞는다”라고 말할 때, 그 코드란 외향성이나 성실성이 아니라 정직성과 개방성을 가리킨다. 정직함과 개방성의 정도가 비슷한 사람끼리 끌리고, 서로에게 자연스럽게 호감을 느끼는 이유다.
예를 들어 주차를 하다 ‘문콕’을 냈다고 해보자. 나는 규범을 지키려는 성향이 강해 차주에게 연락해서 자초지종을 설명하려 하지만, 옆에 있던 지인은 그냥 모른 척하고 넘어가자고 했다 치자. 만약 지인과 같은 입장이었다면 괜찮겠지만 "사고를 냈는데 그냥 넘어가자고? 말이 돼?"라고 생각하며 상대를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또 다른 예로, 나는 새로운 게 궁금하면 일단 시도해 보고, 여유가 있다면 기꺼이 돈을 내고라도 배우려는 쪽이다. 하지만 보수적 성향이 강해 기존의 관습에 머물고자 하는 상대방과 만난다면 역시 어울리기 힘들 것이다. 가치관의 차이는 결국 정직성과 개방성에서 비롯되며, 가치관의 유사성은 친밀도와 비례한다.
그렇다면, 정직성은 어떻게 판단할까?
간단하다. 정직성이 높은 사람들의 성향과 반대되는 지표를 찾으면 된다. 책에서는 정직성이 낮은 사람들의 말과 행동에서 드러나는 몇 가지 징후를 제시한다.
1. 법 위에 있다는 태도, 특정 집단에 대한 경멸
2. 수단적 아부
3. 사치 및 과소비
4. 도박, 투기
5. 문란한 성생활
6. 범과 규범을 준수하지 않으려는 성향 등
위와 같은 성향을 보이는 사람들은 대체로 정직성이 낮다고 의심할 수 있다. 그러니 가진 재산이나 인지 능력에 비해 값비싼 재화와 서비스를 '과시'하려는 사람들은 경계하고 의심해야 한다는 교훈을 주기도 한다.
실제로 유튜브에서 ‘돈 버는 법’을 알려준다는 사람들이 고급 외제차나 한강뷰가 보이는 집 등, 굳이 보여줄 필요 없는 장면을 영상에 끼워 넣는 경우가 있다. 이런 모습이야말로 낮은 정직성을 의심케 하는 신호다. 물론 이러한 단서들이 정직성을 가늠하는 ‘빅데이터’이긴 하지만, 100% 들어맞는다고 보장할 수는 없다는 점에 주의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H팩터(정직성 요인)라는 개념을 통해 성격에도 선과 악이 존재하며, 가치관을 결정하는 데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한다는 교훈을 얻는다. 남을 교묘하게 속이려는 사람이 많아진 요즘 한국 사회에서, 이 책을 통해 정직성을 감별하는 안목을 얻을 필요가 있다. 100%의 정직성을 갖는 건 어려운 일이지만, 타인의 정직성을 가늠할 수 있도록 촉각을 곤두세워야겠다.
※참고 도서: <H팩터의 심리학> (이기범, 마이클 애쉬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