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출보다 먼저 줄여야 할 건 에너지
2025년을 돌아보며 ‘잘했다’고 말할 수 있는 소비를 떠올려 보면 다음 세 가지가 떠오른다
1. 헬스 PT
2. 디지털 구독(생성형 AI, 유튜브 프리미엄 등)
3. 데이터 무제한 요금제
이 세 가지의 공통점은 인지적 과부하를 낮춰줬다는 점이다. 쉽게 말해 스트레스와 불필요한 주목에 드는 정신적 에너지를 줄인다는 뜻이다.
1. 헬스 PT
헬스 PT를 시작하기 전, 회당 7만 원이라는 금액 앞에서 망설임이 없었던 건 아니다. 하지만 트레이너 앞에서 내가 알고 있던 스쿼트 자세를 해보는 순간, 그동안 운동을 얼마나 잘못 배웠는지 깨달았다. 혼자서도 잘하고 있다고 믿었던 동작들은 대부분 부정확한 자세였다. ‘PT 없이 어떻게 운동했나’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그보다 PT의 진짜 효용은 자세 교정에서 끝나지 않았다. 기록을 위임했다는 점이 한몫했다. 나는 원래 꾸준히 기록하는 데 서툰 편이다. 다이어리에 운동 기록(예: 하루에 팔굽혀펴기를 00개 했다.)을 적어보기도 했지만, 100일을 채 넘기지 못했다.
그러나 트레이너가 아이패드로 매 수업마다 훈련 기록을 남기기 시작하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성장 과정이 숫자로 기록되기 시작했고, 내 에너지는 오롯이 운동 그 자체에만 쓰이면 되었다.
2. 디지털 구독(디지털 월세)
디지털 구독, 이른바 ‘디지털 월세’도 같은 맥락에 있다. 생성형 AI에 매달 25달러(약 35,000원)에 달하는 비용을 지불하는 일은 겉으로 보면 사치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인지적 피로를 크게 줄여준다. 누군가는 생산성을 획기적으로 높여준다고 말하지만, 내가 느낀 생성형 AI의 최대 효용은 ‘일단 결과물을 완성한’ 상태를 경험하게 해 준다는 점이다.
일례로, 나는 글을 쓸 때 어떤 내용을 쓸지 아이디어를 짜내고, 그것들을 엮어 초안을 만든 뒤 다시 뜯어고치는 과정을 유난히 귀찮아한다. 한 번 퇴고를 하고 나면 진이 빠져서, 퇴고를 두 번 이상 하면 그날은 체력이 남아도는 날이라고 생각해도 될 정도이다. 대개는 쓰던 글을 퇴고하는 도중에 덮어두는 경우가 더 많았다.
그런데 챗지피티를 이용하면서 글을 쓰는 접근법이 달라졌다. 초안을 바로 쓰는 대신, 개조식으로 먼저 글의 흐름을 잡았다. 그리고 그 뼈대를 이용해 문단을 쓰는 일을 AI에게 맡겼다. 물론 처음부터 ‘내가 의도한’ 글을 AI가 단번에 완성해주지는 않는다. 다만 어색한 부분을 고치고, 보완이 필요한 지점을 찾아 AI에게 보완해 달라고 요청하는 과정을 몇 차례 거치면 점점 완성된 글에 가까워진다.
글 쓰는 속도가 획기적으로 빨라진 것은 아니지만, 실행력을 높여준다는 점에서 이 방식은 충분히 유효하다고 느꼈다.
덧붙이자면 시각 자료를 제작하는 데에도 생성형 AI를 많이 활용한다. 특히 노트북 LM의 인포그래픽 기능은 가히 사기적이다. 텍스트를 이해하는 데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한 장의 이미지로 정리하는 거라 생각한다. 텍스트를 소스로 넣었을 때 가장 시각화를 잘해주는 도구는 노트북 LM이라고 본다. 책을 읽을 때에도 얘 덕분에 이해 속도가 빨라졌다.
유튜브 프리미엄도 마찬가지다. 광고로 인해 끊기는 흐름, 보행 중 화면이 꺼질 때 함께 음악이 꺼지는 현상은 생각보다 많은 스트레스를 유발한다. 요즘 유튜브를 잘 안 봐서 얼마 전에 구독을 끊었는데, 백그라운드 재생이 안 되는 게 답답해서 즉시 구독을 재개했다. 한 달 1만 5천 원으로 스트레스를 없애는 병원에 다녀왔다고 생각하면, 꽤 합리적인 선택이다.
3. 데이터 무제한 요금제
휴대폰 데이터 무제한 역시 탁월한 선택이었다. 예전에는 카페에 앉자마자 와이파이 비번을 입력했으나, 요즘은 와이파이 기능을 거의 꺼 놓는다. 비밀번호 입력하는 시간도 아깝고 데이터가 속도가 제일 빠르기 때문이다. 와이파이가 중간에 데이터로 전환되거나, 장소에 따라 속도가 들쭉날쭉해질 때 생기던 짜증도 사라졌다.
요금제 어플을 잘 찾아보면 월 100GB를 2만 원 이내로 사용할 수 있는 상품도 많다. 예전처럼 데이터 무제한이 사치처럼 느껴지던 시절은 지났다. 비용 대비 체감 효용은 오히려 더 높아졌다.
2025년에 내가 잘했다고 생각하는 소비들은 결국 얼마나 많은 인지적 부담을 줄이느냐에 달렸다. 앞으로도 내 월급이 감당할 수 있는 선에서 스트레스를 최대한 덜 수 있는 소비는 최대한 늘릴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