팁으로 배려 한 줌

by 진구

저번 달에 서강대 근처, 6호선 대흥역 근처로 이사 왔다. 집을 알아보려고 역까지 몇 번 오가다 보니 자연스럽게 알게 된 식당이 하나 있다. 할머니 한 분이 운영하는 작은 가게다. 할머니는 상당히 연세가 있으신 듯, 항상 등이 굽어 있고 한 발자국 내딛는 속도도 느리다. 카드 결제도 번거로우신지 현금이나 계좌이체만 받는다. 밥그릇을 손에 들고 테이블 위에 내려놓기까지 시간이 좀 걸리는데, 주방에서 먼 자리에 앉으면 괜히 할머니를 고생시키는 것 같아 미안해진다.


이 집의 단골 메뉴는 6,000원짜리 제육비빔밥이다. 콩나물, 깻잎, 상추를 잘게 썰어 넣고 그 위에 제육볶음을 얹어 큰 대접에 담아준다. 공깃밥은 따로 가져다주시기도 하고, 보온함에서 내가 직접 꺼내 먹기도 한다. 가마솥뚜껑만 한 프라이팬에 가득 담겨 있는 제육볶음을 접시에 떠서 주니, 주문하고 5분도 채 지나지 않아 음식이 나온다. 국으로는 육개장 육수가 곁들여진다. 6,000원치고는 구성이 상당히 알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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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얼마 전 여기서 이 가성비 좋은 한 끼를 시키고 기분이 언짢았던 적이 있었다. 식사를 마치고 계산하려는데 할머니께서 빈 그릇을 한데 모아 달라고 하셨다. 공깃밥 그릇과 국그릇, 그리고 대접이 처음 놓였던 자리 그대로 흩어져 있었다. 다른 손님들도 보고 있는 상황에서 마치 뒷정리를 안 한 배려 없는 손님이 된 기분이었다.


나는 그릇을 정리해야 할 의무가 1도 없지만 할머니 입장도 충분히 이해가 됐다. 나는 보통 주방에서 가장 먼 구석 자리에 앉는다. 할머니로서는 음식 하나 내어주기도 버거운 거리다. 밥그릇을 들고 오실 때 손이 파르르 떨리는 걸 본 적이 있다. 혹여나 그릇을 내려놓다가 손을 놓을까 봐 그릇을 받아 들었다. 식기를 한 데 모으는 것조차 할머니에게는 적잖은 에너지가 들어가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날 이후로는 비빔밥 대접에 밥그릇과 국그릇, 수저를 함께 모아놓고 나왔다. 오늘은 식기를 테이블에 두지 않고 할머니께 직접 가져다 드렸다. 음식을 나르실 때 손이 조금 떨리는 모습을 보고 나니 가만히 앉아 있는 게 괜히 마음에 걸렸다. 다음부터는 손님이 많지 않으면 주방과 가까운 자리에 앉을 생각이다. 음식을 옮기시는 동선을 조금이라도 줄여 드리고 싶어서다.




손님이 먹은 자리를 치워야 할 의무는 없다. 돈을 내고 식사하면 그것으로 의무를 다한 것이다. 하지만 음식을 만드는 사람이든 그걸 먹는 사람이든 감정을 가진 인간이다. 조금은 번거로울 순 있어도, 이왕이면 기분 좋은 식사를 하고 나올 수 있지 않을까. 배려를 팁으로 건넨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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