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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누의 서재 Jan 07. 2021

일본의 모든 것을 담은 그 이름, 사무라이

서평시리즈 #87 : <메이지유신을 설계한 최후의 사무라이들> 박훈

자신만의 독특한 개성과 문화를 중시하는 일본. 폐쇄적이면서도 개방적이라는 특별한 속성을 바탕으로 전 세계에 걸쳐 두터운 마니아층을 확보하고 있을 만큼 '일본다움'은 형언할 수 없는 아우라를 풍긴다. 그중에서도 '사무라이'는 일본을 대표하는 단어라고 할 수 있다. 이제는 옛이야기가 되어버리긴 했지만, 다양한 매체 속에서 전형적인 모습으로 끊임없이 등장한 사무라이는 심지어는 고흐, 조지 루카스와 같은 인물들에게 영감을 불어넣는 등 시대를 가리지 않고 일본을 대표해왔다. 그런데 무시무시한 칼을 차고 다니는 무사인 줄만 알았던 사무라이가 실은 일본의 '개방적인' 흐름을 만든 장본인이라면 어떨까? 세계적인 강대국 일본의 기틀을 다닌 메이지 유신을 만든 것도 사무라이라는 사실 또한 쉽게 믿기지 않는다. 놀랍게도 일본다운 일본을 만든 세력은 바로 사무라이가 분명했다. 


<메이지유신을 설계한 최후의 사무라이들>은 도쿠가와 막부 시대의 주류 세력이자 동시에 변방 세력이었던 사무라이가 보수적인 중앙 정부와 맞서 싸우며 근대화라는 파격적인 변화를 이끈 과정을 다루고 있다. 그 생생하고도 감동적인 이야기를 4명의 개성 넘치는 '사무라이'를 통해 그려낸다. 여행 아니면 죽음이라는 생각으로 일본 전역을 넘어 전 세계를 직접 눈에 담았던 사무라이, 막부를 전복시키려 했던 거침없는 개혁가 사무라이, 강직한 기개로 자신만의 길을 열어갔던 '라스트' 사무라이, 메이지유신 이후의 일본을 설계한 철혈재상의 사무라이 등 굵직굵직한 선을 지닌 사무라이가 한바탕 가슴속을 휩쓸고 지나간다. 

다 펼쳐낸 손보다도 살짝 작은 책 한 권이 끝난 후에도 사무라이라는 이름이 지닌 무게감을 온전히 표현하지는 못하겠다. '사무라이'는 특히나, 한국인들에게 각인되어 있는 것처럼 단순한 무사 계급이라기보다는 일본 정신의 중요한 원류 중 하나이다. 칼을 들지 않아도, 중앙 정부에 강력한 반기를 들어도, 전투보다는 유람을 사랑해도, 자그마한 방에 제자들과 둘러앉아 학문에 대한 심도 있는 이야기를 논의해도 그들은 모두 사무라이였다. 도요토미 히데요시 이후 들어선 도쿠가와 막부의 기나긴 통치 기간 동안에도 일본에는 '번'이라는 지역이 존재했다. 그 번에 속하여 번을 위해 충성하고 목숨을 바쳤던, 나아가 더 나은 '일본'을 위해 기개를 드세웠던 인물들이 바로 사무라이였다. 

작은 편견이라도 가지고 있었던 것이 부끄러워질 만큼 사무라이의 깊이는 풍부했다. 드넓은 바다 가운데에 위치했기에 침략이라곤 모르던 수백 년의 시간이 끝나고 이양선이 나타나자 발 빠르게 미래를 내다본 것은 오히려 사무라이였다. 후대에 급진적인 개혁을 이끈 사무라이들의 스승인 '이시다 쇼인'은 어릴 적부터 드넓은 세상을 마음에 품고 싶어 했다. 바닷사람이라곤 작은 어선을 운영하는 어부밖에 없던 일본의 입장에서 서양의 거대한 군함은 두려움의 대상이었을 것이다. 이시다 쇼인은 거침없이 서양의 배에 올라탔다. 나중에는 외국으로의 출국을 엄격히 통제하는 정부의 눈을 피해 머나먼 타국으로 도항을 시도했을 정도이다. 그렇게 '다른 세상'을 알게 된 이시다는 생각을 바꾸었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다른 세상의 문물을 받아들여 다른 세상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는 수많은 후학을 양성하여 더 나은 일본을 위한 첫걸음을 떼게 만드는 계기가 된다. 

천황이라는 존재가 존재하며, 동시에 막부라는 중앙 정부가 굳건히 자리를 잡고 있던 일본. 그럼에도 각 지역에는 '번'이라는 세력이 실질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하나의 일본으로서 힘을 합치기 힘들었던 정치 체계와 보수적인 중앙 정부를 전복하기 위해 사무라이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움직였다. 서남 지역의 거대한 '번'이라는 의미의 서남웅번 중 제일 가는 두 세력을 규합시켜 막부에 대항하는 것도 계획 중 하나였다. 정치적으로 치열한 경쟁 상대였던 '번'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는 것 자체가 위험한 일이었다. '번'을 견제하기 위해 중앙 정부가 토벌군을 보내는 것 또한 감수해야 하는 일이었다. 용감한 사무라이 '료마'는 그렇게 결국 목숨을 잃기도 했다. 

자신만의 신념을 바탕으로 '번'에도 얽매이지 않고 근대화를 위해 걸어갔던 '라스트 사무라이', 사이고 다카모리 또한 일본인의 마음속에 깊이 남았다. 굵직한 선의 인상만큼이나 흔들리지 않는 기개는 서양을 배격하기 위해 서양을 더욱 닮아야 한다는 파격적인 생각을 삶의 끝까지 지킬 수 있도록 도왔다. 비록 그 열망이 너무나 강하여 그의 생명을 일찍 거두어갔지만 덕분에 그의 삶은 '라스트 사무라이'라는 영화로까지 제작될 수 있었다. 

사무라이들이 모여 마침내 이루어낸 메이지유신의 거대한 변화를 주도한 것도 결국 '사무라이'였다. 정치 체제를 바꾸고 서민들의 생활 방식을 바꾸고 개방과 통제를 적절히 조절하여 놀라운 변화를 만들었던 재상 '오쿠보 도시미치' 또한 우리 머릿속의 박힌 사무라이는 단어를 완전히 깨부수는 인물이 될 것이다. 


일본과의 미묘하고도 불편한 관계 때문에 일본의 모습을 지나치게 단편적으로 보는 경향이 있는 한국이다. 허나 그토록 열망하는 일본보다 강한 우리나라를 위해서는 일본의 모든 면을 다채롭게 알아가야 할 것이다. 그 중심에는 사무라이가 있어야 한다. 칼 대신 책을 들고, 전쟁 대신 유랑을 통해 메이지유신이라는 결정적인 '역사'를 이끈 사람들. 그들의 신념과 기개, 그리고 지혜 속에서 우리는 일본이라는 나라 깊이 박혀 있는 본질적 정신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일본의 모든 것을 알려주는 그 이름 사무라이, <메이지유신을 설계한 최후의 사무라이들>이었습니다.




* 본 리뷰는 21세기북스의 도서 지원을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되었음을 밝힙니다. 


* 출처 : 

1) https://unsplash.com/photos/N4DbvTUDikw?utm_source=naversmarteditor&utm_medium=referral&utm_campaign=api-credit

2) https://unsplash.com/photos/9Qwbfa_RM94?utm_source=naversmarteditor&utm_medium=referral&utm_campaign=api-cred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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