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말해서 질투나!

by 시누의 서재

어릴 때부터 남 잘 되는 꼴은 못 봤다.

땅을 사는 사촌은 없었지만 있었다면 두고두고 속으로 험한 말을 했으리라.

잘나가는 친구들은 많다. 이름만 들으면 '우와' 하는 좋은 직장에 떡 하니 합격하고 대기업을 넘어 꿈의 직장이라 불리는 외국계 컨설팅, 투자은행에 다니며 상상을 초월하는 월급을 받는 친구들도 많다. 경영 학회에 들어가서 사회를 위한 멋진 프로젝트에 공모하여 당당히 입상을 한 친구들도 있었다.

아 역시, 내 친구들이다. 내 친구들은 멋있다. 그리고 보기 싫었다.

나는 아가리 창업가로서 머릿속으로 화성까지 닿는 우주정거장을 만들었지만 현실은 방구석 백수이니까.


dragon-eye-3235673_1920.png 대학교는 용들이 득실대는 무시무시한 곳이었다

어쭙잖게 공부를 잘했다. 꼴랑 서른 명 남짓 한 반에서 일등을 했었다. 아. 한 학년에 서른 명이다. 시골에 흐르는 도랑물 속 미꾸라지는 자신이 있는 곳이 개천은 되는 줄 알았고 어쩌다 원하는 대학교에 붙어 서울 물을 먹으니 용이 된 줄 알았다. 우물 밖은 진짜 용들이 득실거리는 드래곤 월드쯤 됐다. 도랑물에서 놀던 미꾸라지는 용이 날아다니는 모습을 보며 자신이 고등학생 시절 끄적거렸던 것들이 물에 떨어진 조약물이 만든 파동만큼도 안된다는 걸 알았다. 다행인 건, 미꾸라지는 용을 따라가려고 하지 않았다. 슬기롭고 낭비로운 캠퍼스 라이프에 푹 빠져 '친구들이 알고 보니 유명한 외고 출신이더라, 수능이 만점이라던데, 토플도 만점에 아버지는 유명한 누구래'와 같은 이야깃거리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어쭙잖게 도랑물에서 1등만 하다 1등이 득실대는 곳에 와서 C+를 맞는 것에 충격받지 않은 것이 오히려 장했다. 그러나 충격을 받지 않았다 뿐이지 마음 한편에 항상 내가 가장 잘해야 한다는 마음과 주목받아야 한다는 마음, 그리고 원하는 것들을 이루지 못했을 때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는 열등감이 존재했다.


군대 가기 전까지는 그래도 대학 생활에서 만드는 차이는 크게 느껴지지 않는 것 같았다.

말년 병장이 유일하게 경례를 우렁차게 한다는 전역식 이후로 인생의 시계는 저마다 현저히 다른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인턴에 학회에 교환학생에 멋진 복학 라이프를 시작하지만 누군가는 '그곳에 학교가 있어 가고 수업이 끝나 집에 가는구나' 하며 여전히 허송세월하기도 한다. 아, 그게 나다.

무언가를 행동하는 것은 다른 행동을 낳고 그 관성에는 점차 가속도가 붙는다. 무언가를 행동하지 않는다는 것은 똑같이 멈추게 만들고 그 관성의 브레이크는 더욱 강해진다.

KakaoTalk_20200525_005843979.jpg 나는 아무 생각이 없는 방구석 백수다

문득 스물여섯이 되어 친구들을 보니 칼같이 졸업해서 무려 S사, L사, H사 등 좋은 직장을 다니는 친구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한편에서는 항상 꾸물꾸물 무엇인지는 몰라도 손으로 조물딱 조물딱 사업을 만지고 있던 녀석이 어느새 법인 설립에, 1억 매출을 만들기도 한다. 그리고 난 여전히 입으로 세상을 만드는 방구석 백수였다.

그리고 몇 년이 흘렀지만 계속 방구석 백수이다.


그래도 이것저것 많이 끄적이긴 했다. 마냥 하릴없이 노는 게 아닐 때는 그나마 고개를 처박고 있던 열등감이 최근들어 나에 대한 혐오, 회의, 자책, 분노 등과 다시 등장하기 시작했다. 열등감은 타인을 바라볼 때 나타난다.

내 기준에 부합하는 나의 모습이 아닐 때 솔직히 말하면 다른 사람의 잘난 모습은 질투만 나는 일이다. 어려서부터 '친구가 서울대 의대를 가든, 주식으로 1000억을 벌었든, 빌 게이츠 아들로 태어났든 신경 쓸 필요 없는 일이다'라고 배워왔으면 이런 철없는 생각은 들지 않았을까. 어찌 됐든 어려서부터 뭐든 남들보다 잘해야 한다고 배웠고, 우연히 듣게 된 근황 속에서 친구와 나를 견주어 봤을 때 딱히 내가 잘하고 있는 것 같진 않다. 그리고 나는 그런 순간에 열등감을 느낀다.


KakaoTalk_20200525_005804779.jpg 라고 열심히 위안을 삼긴 한다 늘 그렇듯

내가 국어는 잘할 수 있어도 수학은 못할 수 있다는 걸 배웠어야 했고, 음악과 미술 수행 평가에서 반 꼴찌를 해도 그럴 수도 있다는 걸 배웠어야 했다. 그냥 잘하는 것도 나이고 못하는 것도 나이고 이렇게 살아가는 것도 나이고 저렇게 잠깐 살았던 것도 나라는 것을 배웠어야 했다. 못 배웠더니, 못 나갈 때 내 인생이 잘이 아니라 못 나갈 때 마음을 다스리는 방법을 모르겠다.


인스타에선 동그란 스토리 버튼을 꾹 눌러 '숨기기' 버튼으로 상대방을 숨겼다. 잘난 모습을 보지 않으면 괜찮을 것 같아서. 들려오는 친구의 좋은 소식에 마음속으로 흠씬 욕을 두들긴다. 아무 이유 없이. 그래야 맘이 편하니.

내가 가는 길이 맞는 길이라고, 남이 가는 길은 남이 가고 싶은 길이니 그들의 길 위에 황금빛 태양이 있든 시커먼 먹구름이 있든 좋은 일엔 축하를 건네고 나쁜 일엔 진심 어린 위로를 건네라고 스스로 항상 되새긴다.


효과는 분명 있다. 나 자신을 많이 사랑하기도 하고 내가 가고 싶은 길에서 원하는 결과를 분명 얻을 수 있을 거라 믿기에 들려오는 소식들에 최소한 태연한 척은 많이 늘었다. 그럼에도 내가 불분명하고 흔들릴 때는 치기 어린 질투가 고개를 쳐든다. 그렇기에 어떤 상황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나를 가지는 것이 더욱 중요한 것 같다. 나는 나이고 남은 남이다. 그러니 나의 길을 부끄럽지 않게 걸으면 된다는 생각을 되새기는 것도 또한 중요하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나는 아직 사람이 덜 된 것 같다. 마음에 찾아오는 감정을 애써 '성인군자'인척하기 위해 모른 척 외면하는 것도 내 마음에 예의가 아닌 것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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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하게 말해서 질투가 난다.

잘난 사람들을 봤을 때 마음을 다독이는 방법을 익히지 못했다. 열등감이 차오르곤 한다.

내가 조금 못났다는 걸 솔직하게 인정하기로 했다. 그리고 잘나지기로 했다.

모른 척 넘어가면 평생 내가 못난 사람인 걸 받아들이지 않을 것 같았다.

못난 사람이어야 잘난 사람이 될 구석이 있다.

잘난 사람이 될 수 있는 사람이니까 지금은 조금, 질투해도 괜찮다.


질투! 무엇을 의심하란 것일까? 지금 드는 생각은 질투할 자격이 있는 것인지, 그리고 질투하는 것보단

질투에서 벗어날 방법을 궁리할 시점은 아닌지 의심하라는 것 같다.

1년쯤 후에도 여전히 질투와 열등감에서 벗어날 순 없을 것이다.

다만 그때는 지금과는 조금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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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커버 : https://pixabay.com/ko/illustrations/%EC%9A%A9%EC%9D%98-%EB%88%88-%EB%93%9C%EB%9E%98%EA%B3%A4-%ED%94%BC%EB%B6%80-32356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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