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의 일이다. 일하고 있는 곳에서 동료분들과 이야기를 나눌 때였다.
내가 오는 길에 어디선가 조금 오묘한 체취가 느껴진다고 먼저 말을 꺼냈다.
그 말을 듣자마자 동료분들이 착각이 아니라 본인들도 느꼈다고 하셨다.
날이 슬슬 더워지니 마주치는 사람들 중에 체취가 강한 사람이 있었을 수도 있겠다고 가벼운 이야기들을 꺼내기 시작했다. '자기는 어떤 냄새를 싫어한다.', '체취가 고약하게 느껴지는 건 유전적으로 거리가 가까워서 그런 거다', '아 그래서 나도 내 동생 체취는 학을 뗀다.' 같은 어디선가 들었던 이야기와 경험들이 메꿔져 5분여 동안 웃음소리가 가득했다. 같은 공간에서 일을 하고 있는 동료분들이지만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없어 오갈 때마다 서먹하곤 했었는데 한결 이야기를 많이 나눈 것 같아 다행스러웠다.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 지난 후, 다시 그분들을 만나 뵙게 되었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흥분한 말투로 나를 불렀다.
무슨 일인가 하니 문제의 체취의 진원을 알아낸 것 같다는 것이었다.
잠깐 다시 마주칠 일이 있었는데 단번에 알아차렸다는 것이었다.
'맞다! 이 사람이다!'
그러면서 지금 마침 어디에 있으니 슬쩍 한 번 다녀와 보라고 쿡쿡 찌르기도 하셨다.
바로 알 수 있을 것이라면서.
순간 많은 감정이 머릿속을 지나갔다. 선뜻 움직이기가 망설여졌다.
'문제의 체취'의 근원지가 맞는지 아닌지를 확인하러 수고스럽게 움직이고 싶지도 않았고 무엇보다도,
이미 잠깐 전의 대화에서 우리는 최소한 나는 양심적으로 나쁜 사람이 된 것만 같았다.
타인을 입에 올리며 이야깃거리로 삼지 않았던가.
특정 인물인지 확인은 되지 않았지만 어쨌거나 서로가 생각하는 그 인물을 우리의 입으로 불러냈다.
그리고 하하호호 깔깔껄껄 웃음꽃을 만개했다. 과연 누군가 나를 그런 방식으로 입에 올렸을 때 똑같이 웃어 넘길 수 있었을까?
그 짧은 대화 직후에 이미 아차 싶은 생각이 들었던 찰나였다.
많은 고민이 있었지만 난 결국 그곳으로 향했다.
동료분들의 그 확신에 찬 눈빛을 이겨내지 못했다. 다들 나를 쳐다보는 그 분위기를 이겨내지 못했다.
확인해보니 내가 느꼈던 그런 체취는 확실히 아니었다. 강하긴 했지만 아까와는 확실히 달랐다.
그런데 나는 맞는 것 같다는 표정을 지으며 동료분들 곁으로 돌아왔다.
마지막 순간에 모든 것을 되돌릴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지만 끝까지 양심적이지 못한 늑대를 택한 것이다.
'맞다! 그 사람이다!'라고 이야기하진 않았다. 그렇다고 '아니다'라는 나의 진심을 입 밖으로 꺼내지도 않았다.
확신에서 생긴 동료분들의 그 '흥'을 깨뜨릴 수가 없어, 겨우 '흥'따위를 깨지 못하여 끝까지 아니라는 말을 꺼내지 못한 채 다른 이야기를 꺼내며 대화를 얼버무리고 말았다.
수치스러웠다. 이 날의 사건과 경험을 잊지 않기 위해 곧바로 메모에 적기까지 했다.
더불어 많이 알려진 솔로몬 애쉬(Solomon Asch)의 집단 압력에 의한 동조 실험이 문득 생각났다.
선분의 길이를 통해, 개인이 집단 속에서 개인의 신념, 믿음 등을 얼마나 쉽게 져버리게 되는지 알려줬던 애쉬의 실험은 그날 나에게서 다시 한번 실현되었다.
평소 그다지 친하지 않았던 동료분들과 친밀해질 수 있는 기회라는 이유로 나는 내 마음에도 없는 선택지를 선택하고 동료들이 원하는 선택지를 만들어냈다. '아닌 것 같은데'라는 내 안의 음성은 문제의 그 사람 곁에서 다시 동료들 곁으로 돌아오는 동안 한없이 작아져 결국엔 '맞는 것 같아요'로 변이했다. 무엇이 거짓을 불러왔나.
생각해보면 나는 사회적인 움직임에 민감한 모습을 자주 보였던 것 같다. 대외활동이나 학교 팀플에서 함께 하는 팀원들을 골고루 쳐다보며 눈알을 이리저리 굴리다가 '대세'에 맞는 의견을 내비치곤 했다. 팀장을 맡거나 경험이 쌓이면서 조금 성격이 변하긴 했지만 뭔가 팀 안에서 느껴지는 커다란 흐름을 이겨내는 것이 늘 쉽지 않았다.
그 잠깐의 사건은 나에게 너무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팀의 중요한 사안을 결정하는 일과 타인을 통해 사회적 친밀감을 얻으려고 한 일은 같은 것으로 볼 수 있을까?
대화를 나눌 기회는 얼마든지 만들 수 있었고, 또 설령 친해지지 않으면 어떻냐는 의문이 마음속에서 소용돌이쳤다.
남의 이야기를 쉬이 입에 올리는 것 자체가 언젠가는 나에게 부메랑이 되어 날아오는 날카로운 일인데,
단지 누군가와 함께 하기 위해 마음에도 없는 이야기를 만든 것은 도덕적으로 옳지 못한 일이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사회 속에서 타인과 함께 살아왔기에 수백만 년을 넘어 여기까지 올 수 있었고 타인과 함께 생활하도록 진화해왔다. 하지만 이런 면에서 타인의 시선, 기분, 분위기를 신경 쓰는 것은 때로는 무척이나 위험한 일인 것 같다. 누군가와의 관계를 위해 내 감정을 거짓으로 꾸며내는 일은 경계해야 함을 느꼈다. 조심스럽게 다가가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인간관계 속에서도 쉽사리 큰 흐름에 흘러가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물결에 휩쓸려 나를 잃어버리면 후회하는 순간은 분명 오기 마련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의 비겁함에 때로는 나 자신이 몸서리치게 소름 돋기도 할 것이다.
세계 최고의 지성인 중 하나인 조던 피터슨 박사는 저서 <12가지 인생의 법칙>에서 이렇게 말한다.
"무엇인가 조금이라도 잘못된 것 같으면 당장 그만두어라. 배의 안쪽이 요동치는 느낌이 든다면 그때는 그 일을 하지 않아야 하는 순간이다."
분위기에 휘말려 나도 모르게 평소 하지 않던 일을 하고 있을 땐 무엇인가 조금이라도 잘못된 기분을 느끼곤 한다. 그럴 땐 당장 그만두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쉽진 않겠지만 타인의 시선과 묘하게 깔린 분위기를 이겨내고 내 안의 목소리를 들을 때 후에 찾아올 양심통을 예방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솔로몬 애쉬의 실험
세 개의 각기 길이가 다른 선분을 제시한 후, 기준이 되는 선분과 길이가 같은 선분이 무엇임을 묻는 질문에서
개인이 답변을 할 때와 달리, 앞선 피실험자들이 모두 특정 오답을 이야기할 때 마지막에 선택을 하게 되는 피실험자가 해당 오답으로 동조하는 경향을 보인다는 실험.
이미지 출처 :
1) 상단 향기 이미지 : https://www.piqsels.com/ko/public-domain-photo-zkmha/download
2) 하단 선분 이미지 :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Exp%C3%A9rience_de_Solomon_Ash.p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