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인스타그램을 지웠다

by 시누의 서재

방학을 맞이하여 할 일 없이 한량처럼 집에만 있을 때면

까딱 까닥 인스타그램 한 번, 까딱 까닥 페이스북 한 번, 까딱 까닥 유튜브 한 번.

검지만 한 아이콘 3개를 번갈아 누르다 보면 하루가 끝나 있었다. 아니 사실 하루가 끝나지도 않았다.

자야 하는 시간임에도 꾸역꾸역 유튜브에서 뭐 볼 거 없나 영혼 없이 스크롤을 내리면서

'하나만 더 보고 자자'를 외쳤으니까.

하루가 자꾸만 늦춰지는 느낌이기도 했다.


그러다 가끔 내가 얼마나 그 녀석들한테 마음을 빼앗겨 있는지 확인해보면

인스타그램 일간 사용량이 2시간이 넘는 경우도 있었다. 유튜브도 엇비슷했고.


인스타그램은 대단하다. 내가 한 번 클릭한 유형의 게시글들을 왕창 끌어모아서 스크린 속의 수 십 개의 사진이 모두 내 취향인 큐레이션을 제공한다. 누워서 온 세상을 여행할 수 있는 것이다.

아무 사진이나 하나 클릭하면 밑으로 끝없이 넘겨도 다 내가 좋아할 만한 사진들이 가득했다.


아, 나는 유혹에 무척 약간 동물이었다.

한 번 켜면 도무지 10분, 15분 안에 끄고 다시 원래의 일로 돌아오는 것이 쉽지 않았다.


유튜브는 더했다.

유튜브 댓글 창을 보면 가끔


나 : 이제 자야지

유튜브 : 우주에서 온 아르마딜로 안 보고 갈래?

나 : 예전에 봤어

유튜브 : 그럼 햄버거 150개를 먹는 햄스터는 어때?

나 : ...


이런 종류의 댓글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해당 계정이 선호하는 영상뿐만 아니라 안 볼 수 없을 특이한 영상도 가끔씩 추천 영상에 띄워주면서

사람들을 계속 밤늦게까지 유튜브에 머물게 한다.


SNS나 유튜브 같은 어플리케이션을 사용하는 것의 이점은 분명히 많다.

인스타그램에서 팔로우하는 친구들 중 누군가가 열심히 사는 듯한 느낌의 게시글을 올리면

내가 뭐 하고 있는가 하는 자극을 받는다. 무언가에 매진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고

실제로 실행에 옮기기도 한다.

여행 관련 게시글을 보면 한순간 아름다운 풍경에 힐링이 되기도 하고

'돈을 모아서, 성공해서 여행을 많이 다녀야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유튜브에서도 내게 도움이 되는 영상을 많이 찾을 수 있다.

요즘 사람들은 네이버가 아니라 유튜브로 검색한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뭔가를 하는 방법, 뭔가에 대한 설명 등 많은 것들을 유튜브에서 찾아볼 수 있고 많은 도움을 받는다.


하지만 문제는,

해당 플랫폼들이 지나치게 사람들을 유혹한다는 것이다.

정교화된 알고리즘으로 사람들의 관심사를 정확히 파악하고 빠져나갈 수 없게끔 제시한다.

잠깐의 휴식을 위해 방문했지만 어느새 주객이 전도되어 그 세상이 메인이 된다.


아, 물론 나만 그럴 수도 있다.

적어도 나는 자제력이 많이 부족해서인지 쉽게 본래의 목적인 '잠깐의 휴식'만 취하고

다시 일상으로 복귀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5분의 휴식이 5분의 휴식과 5분의 무의식적인 스크롤 내리기가 되었고,

10분의 머무름이 어느새 30분, 1시간이 되었다.

내 삶은 무척이나 파괴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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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편한 마음으로 시간을 보내는 것이 파괴적일 것까지 있겠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지만

내 삶에 대한 통제권을 잃어간다는 것 자체도, 일부 게시물 속 화려한 인물의 외면에 눈이 팔려

시기심, 허무주의 등이 나타나는 것도 나에게는 파괴적인 일이었다.

SNS를 줄이자는 생각을 수도 없이 했었지만

'하루에 딱 5분만 하자, 필요한 것을 검색할 때만 사용하자'

라는 다짐은 해변에 지은 모래성이 파도에 쓸려 나가듯 쉽사리 무너졌다.


파괴적이고 충동적이고 마음을 갉아먹는 일이었지만, 끊어내는 것이 쉽지 않았다.

그래서, 어느 날 아무런 고민도 주저함도 없이 SNS가 모여있는 폴더 자체를 지워버렸다.


웃긴 건 나도 모르게 그 폴더가 위치하던 곳에 엄지를 무의식적으로 깜빡 깜빡 대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나는 말 그대로 그 행위 자체에 중독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인스타그램을 못하는 것은 꽤나 치명적이었다. 분명 좋은 책을 소개해 주는 계정도 있었고 여행지에 대한 글, 맛집에 대한 글 등 '유용하다고 느껴지는' 계정들도 많이 팔로우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러한 계정 이외에 유혹적인 계정에 대한 접근을 내가 주체적으로 하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SNS를 사용할 때 득보다는 실이 훨씬 많았다.


책을 30분이라도 더 읽을 수 있었고, 운동을 더 할 수도 있었다.

부모님과 정답게 전화 통화를 나눌 수도 있는 시간을,

어느새 빼앗기고 있던 것이었다.


심지어 페이스북은 없어지고 나서 별로 영향도 없었다.

그런 어플리케이션이 스마트폰에 존재한다는 이유로, 습관적으로 들여다보고 마음속으로

'오 재밌군, 도움이 되겠는걸.' 하며

현실을 회피할 핑계를 대고 있었던 것이다.


분명 가끔 불편한 경우는 있다.

누군가가 추천해 준 영상, 게시글들을 볼 때 웹을 통해 접속해야 하거나 컴퓨터를 켜야 하는 경우가 발생한다.


그럼에도 SNS 3대장을 지운 후 내 삶은 조금 더 역동적으로 변하고 있다.

내 삶에 대한 통제권을 찾고 있고 정신이 맑아지고 있다. 쓸데없는 것들에 휘둘리지 않고 있다.

책 읽는 시간이 2~3배로 늘었고 운동을 매일 할 수 있게 되었다.

인스타그램을 하루에 1시간 하는 것보다는

힘들어도 운동을 1시간 하는 게 5년 뒤

내 인생을 더 풍성하게 만들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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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의 유혹을 이겨내면 미래의 많은 것들이 변한다.

그런데 매번 유혹을 이겨내는 것은 쉽지 않다.

나를 유혹하는 환경에서 벗어나는 것이 좀 더 현명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인스타그램을 지웠다.


세상을 들여다 볼 수 없어 무너질 것만 같았던 내 세상은 무너지지 않았다.

나는 나라는 세상을 다시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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