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게임 하나 할까?"
"저녁 먹는 동안 오는 모든 걸 공유하는 거야. 전화, 문자, 카톡, 이메일 할 것 없이 싹 다"
"말도 안 되는 짓이지"
"왜? 찔리는 거 있어?"
10초도 안되는 시간 동안 나온 대화만으로 온 국민의 가슴을 철렁이게 만들었던 <완벽한 타인>의 예고편이었다.
2018년 겨울 개봉한 <완벽한 타인>은 오랜만에 모인 3쌍의 부부가 누군가의 제안으로 저녁 먹는 시간 동안 각자의 스마트폰을 식탁 위에 올려두고 울리는 모든 알람을 공유하자는 게임을 하며 벌어지는 사건들을 그린다.
그들은 부부라는 말이 무색하게 오히려 더 남인 것처럼 비밀을 품고 살아가고 있었다. 누구에게도 들켜서는 안되는 비밀을. 그리고 그 비밀이 까발려지는 순간 모임은 익히 예상할 수 있는 파국으로 간다.
내게 일어난다는 상상만으로 아찔해지는 묘한 불편함과 내가 아니어서 다행이라는 헛헛한 웃음으로 보는 내내 웃을 수 있던 작품이다. 특히나 타인보다 더욱 먼 '완벽한 타인'의 관계를 보여주는 부부들의 모습에서 기막힌 아이러니를 느낄 수 있었다.
살을 맞대고 사는 부부란 남보다 가까운 사이일까, 남보다 못한 사이일까.
부부간에도 서로가 말 못 하는 비밀은 있어야만 하는 것일까, 없어야만 하는 것일까.
과연 남편과 아내는 서로를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을까, 그저 똑같은 남처럼 이해하고 행동하는 것일까.
내가 아는 상대방은 과연 진짜 그 사람이 맞을까, 부부라는 관계 속에서 남편과 아내라는 가면을 쓴 사람일까.
스물여섯의 머릿속으로 생각하기엔 어설퍼지는 것들이 많은 복잡계의 관계를 보여주는 영화였다.
지금 보면 또 어떤 생각이 날는지 궁금하기도.
<완벽한 타인>에서 시작된 의문은 문득 꼬리를 지나치게 늘여 내 의문을 저 먼 곳까지 데려간다.
우리는 나의 가족, 연인, 친구, 동료들을 온전히 이해하고 있을까?
그들이 어떤 방식으로 생각하고 대화하는지 온전히 알고 있을까?
첫 번째와 두 번째 질문에 대한 대답이 생각만큼 쉽게 나오진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완벽한 타인'을 온전히 이해하고 있을까?
그렇다면 '완벽한 타인'을 온전히 이해한 것처럼 행동하고 있진 않았을까?
세 번째와 네 번째 질문은 얼핏 아이러니하다고 느껴질 수 있을 것이다.
오늘 처음 만난 '완벽한' 타인을 '이해'한다니. '이해'한 것처럼 행동한다니.
그런데, 문득 내가 낯선 사람들 만났을 때 낯선 사람의 아주 작은 몸짓과 표정, 인상과 말투만으로
낯선 사람을 완벽히 이해한 것처럼 행동하지 않았나 하는 의문이, 너무나 자연스러워 생각조차 해본 적 없던
그 의문이 머릿속을 맴돌 수 있을 것이다.
말콤 글래드웰의 신작 <타인의 해석>은 이처럼 우리가 낯선 사람과의 조우에서 보이는 별생각 없이 자연스러운 가정과 행동들에 대한 이야기를 흥미롭게 풀어내고 있다. <완벽한 타인>을 보며 느꼈던 일상 속 관계에 대한 이질감과 타인이란 과연 무엇인가에 대한 의문은 <타인의 해석>에서 환하게 밝혀진다.
우리가 진실과 거짓을 판단할 때 사람의 외형에서 나오는 몇 가지의 사소한 '전형적' 특징만으로 얼마나 쉬이 잘못된 결정을 내리는지, 그리고 우리는 어찌 그토록 처음 만난 사람의 언어를 쉽게 해석하여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불러오는지에 대해 타인의 해석은 긴 호흡으로 독자라는 '타인'에게 진솔하게 이야기한다.
우리는 과연 낯선 사람을 잘 알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우리는 과연 낯선 사람이 진실을 이야기하는지 단 몇 번의 대화만으로 판단해도 되는 걸까?
<타인의 해석>을 읽어내려가며 전형적인 '첫인상'만으로 사람을 진단하고 말 버벅임과 자꾸만 좌우 허공을 향해 연신 눈동자를 굴리는 모습으로 '믿음직스럽지 않다'라는 판단을 내린 수많은 경험들이 퍼뜩 떠올랐다.
그리고 몇 번 더 나누는 진솔한 대화 속에서 알려지는 그 사람의 진실은 대부분 얼마 전 성급했던 오판을 부끄럽게 만들곤 했다. 그럼에도 그러한 경험론적 증거들을 통해 낯선 사람과의 대화 속에서 어떤 판단을 내리는 것은 인간으로서 자연스럽고 합리적인 행동이기도 하다는 저자는, 그렇기에 우리가 한 번쯤 낯선 이를 해석하는 자동적인 절차를 곰곰이 따져봐야 한다고 한다.
저자는 타인을 해석하는 특별한 방법론에 대한 이야기를 전하진 않는다. 정답은 없을 터이다. 그저 어느덧 개인의 머릿속에 합리적으로 틀이 잡힌 해석 체계에 날카로운 의문을 제시하라고 한다. 겸손과 자제를 통해 타인을 해석하는 미세한 단어들을 놓치지 말라고 한다.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분명 의미 있는 질문들이다.
"우리는 과연 타인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을까?"
"우리는 혹시 타인을 완벽하게 이해한 것처럼 행동했던 것은 아닐까?"
우리의 자연스러운 일상을 쉬이 스쳐갔던 질문을 날카롭게 붙들어둠으로써 우리는 타인에게 좀 더 완벽하게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자칫 낯선 사람에게 저지를 수 있는 최악의 실수들을 막을 수 있는 기회에 한 발 더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