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에 모인 사람들에게서는 에너지가 느껴졌다.
수많은 인파가 내뿜는 말소리와 움직임이 화창한 날씨와 어우러져 유난히 더 역동적인 에너지가 느껴졌다.
그들은 젊었다.
유독 어려 보이는 사람들이 많았다.
세상살이에 대한 걱정보단 당장 오늘 하루를 어떻게 하면 행복하게 보낼지 고민하는 듯한 표정들이 묻어났다.
사람들 사이에 있을 때는 몰랐다.
내가 오늘 하루를 행복하게 보내는 방법에 대해 함께 고민하고 있던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내가 그 수많은 사람들과 딱히 다른 생각을 하고 있던 것 같지도 않아서였다.
문득 집에 돌아와서 하루를 마무리하는 일기를 쓰는데
'젊음'이란 단어가 낮에 봤던 사람들의 얼굴과 겹쳐 보였다.
'어리다'라는 말과는 달랐다. '젊음'이었다 분명.
커다랗고 까만 테를 가진 안경을 쓰고 아직 앳된 티가 가득한 얼굴인 친구 세 명이 쪼르르 둘러앉아 하늘을 바라보다 벌레 한 마리에 깜짝 놀란 친구의 모습에 웃음이 터지는 것은 젊음이었다. 조금은 나이가 더 들어 친구의 같은 행동에도 웃음이 터지기보다는 점잖게 피식 웃으며 핀잔을 주는 것과는 확연히 달랐다.
잔디밭 위에 돗자리를 넓게 펴곤 어디선가 이성들을 데려와 공원이 떠나가라 술 게임 인트로를 외치는 것도 젊음이었다. 연인끼리 찾은 한강변에서 연인의 무릎을 베고 누워 요즘 유행하는 남자 가수의 음악을 듣는 것도 젊음이었다. 어떠한 한 줄기 두려움도 없이 지금의 짧은 순간만을 좇는 무모함이 젊음이었다.
그곳에는 젊음이 가득했다.
그곳에는 무모함이 가득했다.
나 역시 그곳에서 젊음이었다.
그런데 그날 밤 집에서는 유난히 그 젊음이 낯설었다.
내일에 대한 걱정보다는 당장 이번 주말을 어떻게 보낼지 기대하는 마음이
표정에 가득 드러나 보여 그랬던 것 같다.
거절당해도 괜찮으니 공원 이곳저곳을 다니며 이성들에게 추파를 던지는 모습에
오늘 하루에 대한 생각만 가득해 보여 그랬던 것 같다.
누워 있는 사람들의 얼굴에서 하늘을 보며 떠오른 여유와 행복감이 잔뜩 묻어나 보여서 그랬던 것 같다.
문득, 나의 조금은 더 젊었던 시절도 이와 같은 모습이었을까 시간 여행을 떠나게 되어 그랬던 것 같다.
생각해 보면 나의 젊음도 별반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혼자 찾았든, 누군가와 함께 찾았든 강을 바라볼 때에도 마음이 조금은 더 가벼웠을 것이고 굳이 하늘을 보지 않더라도 얼굴에는 하루에 대한 기대감과 행복감이 조금 더 묻어났던 것 같다. 물론 고민거리를 털어내려 강을 바라보던 순간도 있었을 것이다. 그때의 고민은 지금과는 조금 결이 다른, 조금 더 순진하고 철없는 고민이었을 것이다.
문득 그 '젊음'이라는 단어가, 수많은 사람들의 얼굴에 겹쳐 보인 젊음이 낯설게 느껴진 이유는 아마
문득 한참의 시간을 거슬러 다시 지금의 내 모습을 마주하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젊음 속의 나는 무모했다. 아니, 지금 생각해 보면 무모했던 것이다. 그때는 그저 젊음이었다.
젊음 속의 나는 어리석었다. 아니, 지금 생각해 보면 어리석었던 것이다. 그때는 그저 젊음이었다.
젊음이라는 시간 속에서 젊음을 낭비하곤 했다. 내일보다는 오늘을 샀다. 내일보다는 오늘을 살아갔다.
지금이라는 시간 속에서 그때의 그 젊음이, 그때의 무모함이 부끄럽지는 않다.
나 또한 못지않은 무모함 속에서 오늘만을 열심히 살아가며 미래에 곱씹을 추억들을 많이 쌓아 올렸다.
그 추억들이 없었다면, 머리가 조금 더 굵어져 쓰기도 하고 눅눅하기도 한 인생의 맛들을 느낄 시기에
앞으로 나아갈 동력이 부족했을 것이다. 나는 특히나 추억을 먹고 사는 사람이라 예전의 철없음이 한편으로는 고맙기까지 하다.
물론,
나는 아직 많이 젊다.
누군가는 아직도 가지고 싶어 할 생동감 넘치는 젊음을 가지고 있다.
다만 문득 수많은 사람들로 가득했던 그 여의도의 공원 속에서 조금은 옛날의 나의
젊음과 무모함과 철없음과 순진함이 생각이 났을 뿐이다.
당장 서른 즈음에도 문득 떠오른 서른보다 젊었던 시절의 젊음이 떠오를지도 모른다.
5년쯤의 시간이 지난 후에도, 10년쯤의 시간이 지난 후에도, 살아온 날이 살아갈 날보다 많아질 나이에도, 다시금 문득 떠오를지도 모른다.
어제 마주한 그 젊음에서 후회를 느끼진 않았다. 그렇지만 서른 즈음에, 그리고 5년 후, 10년 후에 마주할 그 젊음의 순간에는 또 다른 모습을 보고 싶다. 또 다른 감정을 느끼고 싶다.
각각 마주하는 젊음의 순간에 다른 모습으로 그때의 무모함과 그때의 철없음과 그때의 순진함을 지녔었구나 생각할 수 있으면 한다. 그 기억들이 나를 때때로 미묘한 감정 속으로 안내하지 않을까.